보나르와 퀘벡 출신 캐나다인
나는 이렇게 살면 안되는 것인가. 이 곳, 파리에 살면 안되는 것인가. 이 곳이 너무 춥다. 살갗에 와닿는 냉기는 단지 차갑다는 느낌을 넘어 마음에 잔뜩 생채기를 낼 정도로 날카롭고 무심하며, 준비할 새도 없이 예측 불가능하다.
이 냉기를 잠깐이나마 모면해보고자, 나는 또 의미없을 지도 모르는 '벙개'를 했다. 그래봤자, 상대는 누구 말마따나 나를 '시간 때우기용'으로만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미술관이 무료인 날이라, 몇일 전부터 오르세 미술관에 갈 생각이었고, 누가 동행하던 아니던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거의 일주일 내내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던 하늘이 맑게 개이고, 해가 얼굴을 잠깐이나마 내민 날이었기 때문에 인파가 파도같이 많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 속에 모래알이 하나이던, 둘이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단시 상대방이 그림 앞에서 쏟아질 나의 감상평을 고깝게 듣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무튼 아침에 가볍게 헬스클럽에서 운동과 샤워를 마치고, 첫데이트가 될 지도 모를 날에는 어룰리지 않겠지만 백팩을 메고 나름 설레이는 기분으로 지하철을 탔다. 미술관을 가기 위해 튈르리 정원을 가로지르면서, 심상치 않은 인파의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미술관 앞에 도착하니 상상 이상으로 줄이 길었고, 또아리를 길게 튼 보아뱀처럼 그 줄의 끝을 찾는 데에도 한참이나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사진 한장으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평소에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데, 외국인 특히 코카서스인종을 구별하는 데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친구나 가족, 연인끼리 삼삼오오 줄을 서있는 데 외톨이로 홀로 우뚝 서있는 이 상황에서 창피한 것은 둘째 문제고, 이렇게 된 이상그냥 혼자서 후딱 관람하고 갈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아예 집에 갈까 했지만, 다른 작가 전시라면 그랬을 테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PIERRE BONNARD" 이기에, 이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조금씩 줄이 줄어들었다. 햇빛이 날 때는 그나마 나았지만 여전히 찬바람에 손발이 얼어든다. 사실 나는 그를 본 것 같다. 아니, 보았다. 하지만, 내가 불과 10여미터 앞에 서있는 그를 보고 아는 체를 하면 이 주변을 가득 둘러싸고 있는 뭇사람들이 구경거리 보듯 할 시선에 먼저 아는 체 하기를 머뭇거렸다. 그리고 애써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었다. 거의 1시간 가량 라디오를 들으면서 있다가, 이대로 들어가서 아는 체를 하지 않고 각자 구경을 하다 나오면 되겠다는 혼자 생각도 하였다.
문득 내 어깨를 누군가 툭 치는 느낌을 받았다. 다름아닌, 그였다... 나의 '그림자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캐나다 퀘벡 출신인 그는 불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점차 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차례가 다가왔다. 보나르, 불멸의 그의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
그는 위대하다, 보나르. 적어도 나는 당대 인상주의 화가로서 더 알려진 마네, 모네, 고갱, 르누아르 보다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햇살을 곱게 흩뿌려 놓은 것 같은 순간에도 그는 가슴 속 깊은 어둠 한 줌을 토해놓고 있다. 그 어둠으로부터 나는 위안을 받는다. 이소라의 따뜻하고 깊으면서 우울한 목소리로부터 받는 위안과도 비슷하다. 그에게는, 4월의 나른하도록 맑은 날 문득 느껴지는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가 화폭에 펼치는 색채; 에메랄드 그린, 스카이 블루, 페일 존, 라벤다 바이올렛, 로즈핑크 는 원색이 아니다. 그래서 뿌연 잔상을 많이 남긴다. 그리고 인물들의 표정도 모호하다. 주로 역광을 받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은 토기 인형처럼 무뚝뚝하게 말이 없다. 주변으로부터 시선을 차단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그런 인물들의 윤곽선이나 형태도 기존의 아카데미적 질서에서 벗어나 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기 보다 심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변형된 크기나 어긋나 있는 위치는 보다 내밀한 그 무엇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렇게 나와 그 퀘벡출신 캐나다인은 기다린 지 2시간 반만에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가 1시간 가량 전시를 보고 나왔다. 여전히 찬바람이 옷깃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눈이 머리높이만큼 쌓이도록 오는 캐다나의 겨울 날씨에 익숙해 이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그와 나는 미술관을 나와 팔레 로와얄까지 걸었다. 카페에 들어가 나는 카푸치노를, 그는 카페오레를 마신다.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자리값 안나오게 왜 왔느냐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한 서빙 갸르송의 따가운 눈총을 뒷통수로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다시 이 캐나다인과 무정한 프랑스인, 아니 파리지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다시 한국 식당에서 일하는 거에 대해 또 지나치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다 문득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거울을 굳이 보지 않아도,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의 표정이 예상되었다. 잔뜩 먹구름을 낀채 이야기를 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그 캐나다인은 방금 전 미술관에 벽에 걸렸던 그림자 속 얼굴과 내 얼굴이 겹치며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나의 짙고 뿌리깊은 우울을 보았을 것이다...
한 시간 여가 지나고, 나는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다. 춥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문득 그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이 옷입고 식당에서 일하는 거냐고 묻는다. 내가 화들짝 놀라서 물으니, 음식 냄새가 난다고 답한다. 젠장, 손빨래를 했는데도 불판의 고기냄새는 내 옷자락을 붙들고 그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나 보다. 창피하고 민망함에 쥐구멍이라도 숨고싶었다. 그 캐나다인은 배가 고파졌다면서 해맑게 말했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오후 4시라 아직 햇살이 따뜻하다. 그리고 그 햇살을 맞으며 지나가는, 나를 뺀 타인들은 뭉뚱그려서 행복해보인다.
그와 나는 안녕을 고하고, 다시 연락할 것을 인사로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지하로, 그는 그저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