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정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점점 거풀이 벗겨지는 것인가. 이곳, 유럽사람들은 무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아는 동생은 지금 어학원의 선생님과 미묘한 감정선을 타고 있다.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가벼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아는 동생 K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어학원 선생님에게 애착심을 가지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학원- 집, 집-일터, 학원-일터-학원 (각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4,50분가량 걸린다 )라는 숨가쁘게 오가면서, 만날 수 있는 친구란 극히 제한되고, 이렇게 좁은 인간 관계 속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느냐 아니냐와는 상관없이, 그 좁은 울타리 안의 인간에게 감정이 집중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루에 그나마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뿐이고, 하루에 매일 웃으며 인사를 나눌 사람이 '그 사람' 뿐이고, 하루에 나의 외국어를 고쳐 주며 도움을 줄 사람이 '그 사람' 뿐이라면, 어찌 정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여기에 그 어학원 선생님의 특이한 취향, 예를 들면 일본에서 몇년간 체류를 했었다던지, 파리의 한인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사람이기에 아시아 학생들, 특히 일본이나 한국 학생들과 조금 더 가까운 거리감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기에, 가벼운 뒷풀이에서 무언가 미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을 지도 모른다. 뒷풀이로 간 클럽에서 다들 알딸딸하게 취해있었고, 우연히 일본과 한국 사이의 '독도' 문제가 누군가에 의해서 불거져나왔고, 다소 '일본의 입장'이었던 선생님에 맞서서 아는 동생 K는 발끈하여 방언이 터지듯, 불어로 맞대응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불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자리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서 그 어학원 선생님은 '선생'이란 직함은 잠시 뒤로 접고, 동생 K의 등을 어루만지며 '괜찮아'라고 사뭇 다정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 이 대목이 동생 K가 차마 잊지 못하고 치를 떠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 어린 양이 겪었을 '순간의 스킨십'이 주는 뒷목 짜릿한 느낌과, 동시에 그에게 가졌던 '독도 문제로 인해 가졌던 애국심에 기초한 반감 때문에 그녀가 매우 혼란스러웠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무례하고 개념없는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품었던 '호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진정 괴로워 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등을 허락없이 다정하게 만지며 끼를 부렸다는 불쾌감보다, 그 순간에 자신이 느꼈을 '만족감'과 '남녀 간 설레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절대로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객관적인 3자의 입장으로 보기에, 그녀는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살짝 그 자신의 마음을 감지하였음에도 인정하기 싫었음이리라.
왜냐면 그 선생님은 자신이 '호감'을 갖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그렇게 되기에 바라지 않았기에.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일'이 대체 있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