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ème période/en cours

점점 보호색을 띄어가는 것 ; 된장과 치즈 사이

zamsoobu 2014. 10. 12. 22:23



[ 동역 Gare de L'est ; 2014 

 어딘가로 떠나는 이의 뒷모습에서 나도 부질없이 어딘가로 훌쩍 떠날 것을 꿈군다.  

이미 나는 떠나있는데, 떠나있는 곳에서 또 다시 떠나고 싶은 것이다  ]


그동안 특별히 김치를 찾지 않았건만, 유독 요즘같이 코끝이 알싸한 바람이 불때면 따뜻하고 매콤한 국물이 생각난다. 물론, 다른 유학생들이나 여기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이 때마다 주기적으로 케이마트로 김치나 고추장이나 된장을 사로 갈때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한시간여를 가야되는 수고로움을 겪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맛에 대해 특별히 고집하는 게 없고 느끼하고 기름진 음식 (하지만 잡채는 먹지 않는다 ; 왠지 당면이 기름에 쩔어있다 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 을 잘 먹기 때문에, 이곳 슈퍼에서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골라담아 내방식대로 해먹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식사'는 아직 '배고픔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 이면 족하다.

다만, 적응하기 힘든 건 조금 허세스럽다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옷에 대한 고집이다. 나는 빛바래거나 찢어져있거나, 주름져있지 않은 옷을 입으면 어딘가 두드러기가 날 것같이 불편하다. 

자켓이나 바지, 아니면 신발 이라도 어느 하나 내 반항심이나 청개구리같은 마음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숨이 막힌다. 그런데 이런 옷차림에 대한 취향이 점점 더 얌전해지는 것을 문득문득 느낀다. 물론, 식당 여사장이 "옷차림이 칙칙해보인다, 나이에 맞게 입어야 되지 않느냐"  

라고 핀잔을 주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때문이라면 나는 더욱, 그렇지만 지나치지는 않게, 적당히 상대의 비위를 거슬릴만큼만 천천히 그리고 지독하게 끈질기게 고집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곳 프랑스, 특히 파리지앵들의 옷차림이 내게 미친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 유행인지, 유행을 반영한 사람들 옷맵시라 그런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겠지만, 아무튼 이곳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단조로운 옷을 겹쳐있는 지라 유독 그 중에 색깔옷을 입으면 튀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들의 배낭을 보면 특히 더욱 그런데, 이스트팩이 가방 시장을 독점 한 게 아닐까 싶게, 거의 모든 학생의 어깨에는 이스트팩이 걸쳐져있다. 공터에 가방을 일부러 굴린 것처럼 먼지가 한가득 붙어있기가 다반수인 이들의 가방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값진 물건이 들어있을 것같지 않고 냄새나는 양말 한쪽이 나뒹굴 것 같다.


이렇다보니, 아직 한국에서 사온 '형광 핑크 나이키 배낭'은 한번도 밖에 메고 나가본 적이 없다. 도둑님들, 나좀 보소 하고 광고나 하고 다니는 꼴이 되지 않을까 라는 염려도 있다. 사실은 그게 크다. 도난을 몇번 당하고 나니, 이제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새가슴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도 어느새 옷장에서 검은색, 혹은 회색이나 갈색을 더욱 찾게 된다. 때때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마리의 여치'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일색으로 코디를 하거나, 핑크색 일색으로 코디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몇몇 일 뿐이다. 톤온톤 코디에 악세사리나 양말에 색깔 포인트를 주는 것이 이네들의 유행이라면 유행이겠다. 


정말 멋을 내기 위해 방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맞춰가며 미적 감각을 끌어올린 것이 역력하지만, 전혀 '나 아니오'라고 발뺌하는, 이네들의 소리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난다. 왜냐면...아닌 척하지만 사실 아닌게 아니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닌 게 아니길 바라는 이네들의 마음이 여실히 보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