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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25 예술, 돈, 그리고 여자 ⓐ

예술, 돈, 그리고 여자 ⓐ

예술, 돈, 그리고 여자 ⓐ

 

주의할 것! 할리우드 액션은 사실 부풀린 것이다. 이전부터 본지의 11월호는 예술시장에 대한 글을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였다.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Fiac 이 그랑팔레 Grand Palais 에서 열렸다. 제 38회를 맞는 이번 행사는 파리 전역을 연결지었다. Anaël Pigeat 의 글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장-조셉 구 Jean-Joseph Goux 는 인상주의 사조가 생긴 이래로, 예술과 시장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말한다. 결국 Camille Morineau 는 콜렉터들의 주변에서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지, 특히 여성 작가들의 선택은 정치적인지 여성운동적인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파리의 FIAC

 

2006년 예술적으로 목표를 변경하면서, Fiac 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적 공간에서부터 공공 장소에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전시로 프랑스 현대예술계를 고무시키고 있다. 현재에는 성공이 가져다 준 역설적 면에 맞서고 있다.

 Art Basel 과는 다르게, 전시장소는 중립적이고 기능에 충실하고 있다. Fiac 은 5년전부터 그랑 팔레의 1933년부터 1977년까지 역사적 배경을 재창립하려 시도했었다. 그랑 팔레의 새로운 전시공간이 장-폴 클뤼젤 Jean-Paul Cluzel 회장에 의해 재정비되면서 수많은 전시가 감축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조직위원회측은 2012년에 궁내부의 특별실이 완공될 거라 말한다.

 Art Basel 의 규모에는 못미치지만, Fiac 은 세계적 수준의 마켓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수없이 많은 혁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1988년 10월, 다니엘 르롱 Daniel Lelong 은 art press(n# 129) 에서, 레오 카스텔리 Leo Castelli 가 한 말을 인용했다. 레오 카스텔리는 Leo Castelli 는《 나는 파리를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사업이 잘 되서도 아니며, 명성을 얻을 수 있어서도 아니다. 》 그래서 이러한 글은 해외 갤러리들이 Fiac 에 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그 반대로 흘러갔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이번 년도의 Fiac 을 염려한 무리도 있었다. 프랑스 갤러리들은 Fiac 의 세계적 성공의 피해자가 된 게 아닌가? 제니퍼 플레이 Jennifer Faly 는 2011년도에 갤러리에서 프랑스 점유율이 33%가 된다고 하였다. 그녀는 프리즈 아트 페어 Frieze Art Fiar[각주:1] 아모리쇼 Armory Show[각주:2] 와 비교하면서 수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많은 갤러리들이 해외에 지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마켓은 더욱 주요하다. 반면에 Group Lafayette 라파예트 계열그룹이 후원한 부분을 제외하고, 신설된지 5년 미만의 다수의 갤러리들이 감소하기도 하였다. 이번 년도는 경제 침체의 여파도 영향을 끼쳤다.

 

 

예술, 돈, 그리고 여자 ⓑ 에 이어...

 

 

출처 : ARTPRESS #383. 2012.

기사 : Catherine Grenier

번역 : PLONGEUSE (zamsoobu. plongeur) 2012.05

  1. 영국 런던의 레전트 공원에서 해마다 10월중에 열리는 국제적 미술시장으로서 2003년에 창설되었다. 본문 영국에서 발간되는 현대미술 전문잡지 《프리즈 Frieze》의 발행인 어맨더 샤프(Amanda Sharp)와 매튜 슬로토버(Matthew Slotover)가 창설한 미술시장으로서 2000년 첫 회가 열렸다. 이후 해마다 10월중에 런던 중앙부의 왕립 레전트 공원에서 4일간 열리고 있다. 창설과 더불어 프리즈재단(Frieze Foundation)이 설립되었고, 테이트갤러리에서 기금(Outset Contemporary Art Fund)을 조성하여 해마다 신진작가의 작품을 구매한다. 첫 회에 세계 여러 나라의 125개 화랑이 참여하고 2만 7700여 명이 관람하였으며, 약 40억 원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등 성공적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엄선된 화랑들과 생존 작가들의 작품에 초점을 둔 운영으로 다른 아트페어와 차별화하고 있으며, 상업성과 병행하여 실험적 작품들을 선보이는 등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장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짧은 연륜에도 '프리즈 주간(Frieze Week)'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만큼 런던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에는 세계 30개국의 165개 화랑이 참여하였으며, 6만여 명이 관람하였다. 한편, 2005년부터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화랑들이 레전트파크 북서쪽 끝에 있는 동물원 구역에서 '주 아트페어(Zoo Art Fair)'를 동시에 열고 있다. [출처] 프리즈 아트페어 [Frieze Art Fair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2.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전. 서유럽에서 일어난 새로운 미술 운동을 신대륙에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 등을 위해 전시홀 하나가 마련되었고, 르동Odilon Redon(1840~1916), 퓌뷔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의 작품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레제Fernand Léger(1881~1955), 드랭André Derain(1880~1954),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뒤샹Marcel Duchamp(1887~1968),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 등 당시 파리 화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미술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 밖에 미국의 슬론Jone Sloan(1871~1951), 글래큰스William Glackens(1870~1938)를 비롯한 몇몇 대가와 신예 작가들도 참여하였다. 출품작 수는 1,600여 점에 이르렀으며, 특히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 descendant l’escalier>와 같은 전위적인 성격의 작품들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모리 쇼’라는 명칭은 이 전람회가 뉴욕의 제67기병대의 무기고를 전시회장으로 삼은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후 시카고의 미술 연구소나 보스턴에서 개최되었을 때도 이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 전람회가 비록 대중의 매도와 공격을 받았지만 미국의 젊은 세대 화가들에게는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특히 데이비스Stuart Davis(1894~1946), 벤턴Thomas Hart Benton(1889~1974), 웨버Max Weber 등 유럽 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활약은 미국 현대미술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