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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13 Womb 움 ; 서늘하고 축축한, 뜨뜻미지근한 물줄기

Womb 움 ; 서늘하고 축축한, 뜨뜻미지근한 물줄기

 한 소녀와 한 소년이 파도가 세게 치는 바닷가에서 만났다. 둘의 우정은 소녀가 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이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12년 후에 소녀는 여인이 되어 소년을 다시 찾아왔다.
둘은 다시 만난다. 그런데, 처음 사랑을 느꼈던 연인이 갑자기 여자 곁을 떠났다.

여기까지는 여느 멜로 영화의 스토리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여느 호러영화보다 더 섬뜩하며 스산하다.

에바 그린 Eva Green 은 이 영화에서 마치 타락한 천사같은 인상을 준다. 순수하지만 맹목적이고 우아하지만 본능에 더 강하게 이끌린다. 이런 이미지는 그녀의 전작인, 크랙 Crack (2009, 조단 스코트 Jordan Scott )에서와 유사하다. 크랙  Crack 에서는 제자들 사이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며 그녀들을 소유하고, 그녀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움 에서는 보다 이성간의 관계로 바뀌긴 하였지만. 병리학적인 증상을 연상케할 만큼 상대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결코 혐오스럽다거나 기이하다기보다 더 깊고 어두운 내면의 슬픔에서 온 것이라는 위안거리를 주고 싶을 만큼, 그녀는 매력적이다.
창백한 피부와 가느다란 몸, 헝클어진 길고 검은 머리, 짙은 갈색의 눈동자, 그리고 암홍색의 눈그늘...퇴폐적이면서도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눈매를 지녔다. 



# 영화 초반 부. 적막하고 스산한 바다 갯벌 위. 소년과 소녀는 이 세상에 오직 단 둘인 것만 같다

 

 # 아침나절 해변가 벤치에 앉아 차와 빵조각을 즐기는 여염집 주부들과 같은 동네에 살지만, 이질적인 존재인 한 여인. 일반적 다수는 이례적인 소수를 배타시한다.

 


# 대사 한 마디 없이 굉장한 긴장감을 뱉어내는 장면. 아들과 어머니의 묘한 기류가 형성되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무슨 욕망을 좇고 있나.



# 자전거를 좋아하는 필자는 이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광고 속에 나오는 지중해 해변의 마린스트라이프 티를 입은, 혹은 긴 프릴스커트를 입고 챙달린 밀짚모자를 쓴, 자전거 바구니에 바게트 한꾸러미 싣고 유유자적 페달을 밟는 '건강함'은 여기에 없다. '무無'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들. '공허함'이 대신한다.



# 엄마의 생일 선물을 모래에 파묻어버리는 아들. 그는 자신의 증오가 왜 생기는 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뒤틀려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 마지막 씬. 이 Womb 이란 영화 자체의 성격을 보여준다. 황량한 폐허같은 해변 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집처럼 위태롭게 서 있는 집 한채. 그래서 굉장히 폐쇄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깥현실로 나온 자궁처럼. 모든 것에 방어와 보호의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벽을 촘촘히 쌓아둔 채 외부의 요소를 들이지 않는다. 오직 그 좁은 질을 통해 나가기 전엔, 어두운 그 동굴에서 어떠한 빛도 보지 못할 것이다. 



 


움 Womb ,2011

감독 :  베네덱 플리고프  Benedek Fliegauf
각본 :  베네덱 플리고프  Benedek Fliegauf
배우 : Eva Green , Matt Smith ,
미술 : 어윈 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