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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11 ##NUIT BLANCHE ; 뉘 블랑쉬; 백야

##NUIT BLANCHE ; 뉘 블랑쉬; 백야

시월 일일. 토요일과 이일 일요일 사이.

저녁에 만나기로 한 ㅌ은 역시 특유의 게으름과 우유부단함으로 나를 엿먹인다. 토요일에 만나기로 어렴풋이 운을 띄웠을 뿐, 몇시에 만날 지, 무엇을 할 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가, 내가 먼저 그럼 '백야' 야외 전시 구경가자고 제안하니까, 밖에 오래있기에는 피곤하다고 한다. 그러면 '실내'활동으로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먼저 제안하던가. 답장도 바로바로 보내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둥이는 살아서, 오늘을 일주일 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매를 버는 타입이다.



내가 치를 떨더록 싫어하는 스케줄 흐트러뜨리기. 닷새마다 감질나게 돌아오는 자유의 저녁을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만든다. 만나기로 하면, 적어도 먼저 시각과 장소를 지정하기를 바라는 게, 너무 큰 욕심인가?


내가 상상을 초월하는 참을성으로, 문자를 마지막으로 보낸 것은 21시. 


'벌써 21시야.'


약속이 틀어졌음을 확인사살하고, 속에서 열불이 나기 시작한다. 불덩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아니 그보다는 중요한 연례 문화 예술 행사를 놓칠 수 없어, 내 '애마'를 들쳐업고 길을 나섰다.  


이번 백야의 주제는 폴리필;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연상되는 어둡고 신비스러운 환상 좇기가 이번 주제이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면 hôtel de ville (오텔 드 빌; 파리 시청)이나 샤뜰레(châtelet )까지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가볍게 센 강변으로 나선다. 주말 저녁이면 안그래도 선상 클럽으로 모여들거나, 노상 자리깔고 맥주나 와인을 홀짝이는 젊은이들로 후끈한데, 이번 저녁은 설치 전시를 보러 기꺼이 온 사람들이 더해져, 장터같이 북적인다. 우리나라 사진 아마추어들 같이 대포 카메라는 아니지만, 나름 야심차게 사진 촬영을 준비해온 사람들도 눈에 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는 내 '애마'로 몇 미터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우선, 퐁 콩코르드( pont concorde)을 돌면서 몇개의 전시를 보고, 퐁 데 자르(pont des arts) 로 서둘러 이동하기로 한다. 



라이딩을 하기 위해, 꾀를 생각한다. 사람이 없을 강변 뒷길로 돌아서가보자. 과연 강변에서 올라와 한 블럭만 뒤로 가니, 행인이 없다. 노오란 할로겐 조명과 그림자.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


다행히, 여기서라면 조금이나마 라이딩을 할 수 있겠다. 


도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보도로 가다가 연석에 걸려 희롱한다. 몇십미터 앞에 각모자를 쓰고 꼿꼿이 서있는 호텔 경비원이 흘끔 나를 본다. 내가 그 앞으로 지나가자 한발짝 물러선다. 마음깊이 감사하다. 


몇번의 넘어질 위기를 넘기고, 어렵지 않게(?) 다리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더 많다. 거의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나 싶다. 영어도 들리고 독일어도 들린다. 물론 몸의 대화를 하는 연인들도 있다. 전시는 전시대로, 삶은 삶대로.



'백야'의 특성상, 설치 전시에 조명과 음향이 그 역활을 크게 한다. 제한된 시각을 가질 때, 청각은 더욱 예민해지는 법. 일반적 이론이야 그렇다 치지만, 이런 지점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실체로 구현해 낸 것이 작가의 역량이니, 새삼 존경스럽다. 












WE LOVE ARTRomain Tardy  

LED; 설치.













ALICJA KWADE 

; 지지대에 매달린 시계추가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기계음과 맞물려, 일상적인 공간을 한순간 형이상학적으로 바꿔버린다






RYAN GANDER

; 퍼포먼스
Walking Dead워킹데드 의 좀비를 초대함.
가상 촬영 현장으로 설정. 좀비로 분장한 엑스트라.
설치. 카메라. 조명. 버려진 듯한 자동차











ANISH KAPOOR !!!


; 잠깐의 산책 동안 만난 메인 작가

강 한가운데 소용돌이를 만듦.

만약, 원래 센강 한 가운데 그런게 있다고 하면 그냥 지나쳐버릴 모습을

인간의 힘으로 해놓았다는 사실 때문에 작품은 심오한 경지에 이른다.

단순함이 주는 심오함.

 







다리 위에는 거대한 음향장치가 묵직하고 어두운 소리를 낸다.


터빈 돌아가는 소리.


정면에는 생 루이 섬 앞의 설치물.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듯한 모양새.


미스테리한 물거품. 그리고 조명.


다리 밑의 녹색 조명.


'녹색'조명은 헐크. 괴물. 슈렉. 


고전 회화에서 인간의 피부를 표현할 때 '녹색'은 금기색이었다. 시체의 것이라도 생각했기에.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 야수파 화가들이 적극적으로 '녹색' 터치를 인간의 곳에 녹이면서부터 이제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닌 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녹색'은 '반 인간'의 그 무언가를 연상케 한다. 


OLIVER BEER >












몇 개의 전시를 보고 난 후의 인상, 취향만으로 말하자면, 프렌치 버전의 '환상특급' 이니,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감성은 없어도, 하룻밤 지루하지 않게 톡 쏘는 비타민을 삼키는 기분. 


작년 '백야'에는 주로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같이 실내전시 관람에 그쳤는데, 확실히 야외 설치 전시는 주변의 환경에 덕을 보는 게 크다. 그만큼 시너지 효과도 배가된다는 점.


그 잠깐의 비타민 기운을 빌어, 다시 애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극장을 나올 때처럼, 잠깐 환상으로 갔다가, 현실로 다시 뱉어진다.   




잠들 기 전 핸드폰을 확인한다.


'벌써 21시야' 라고 보낸 메시지에는


여전히 답이 없다. 빌어먹도록 게으른 놈, 나에게. 아니면 나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