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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9 Photo &brasil

Photo &brasil


브라질 리우 올림픽 열기가 한참이던 학. 토요일 오후, 유럽 사진작가관 Maison europeenne de la photographie 의 기획 전시가 곧 끝나기 전에 황급하게 찾아갔다. 오기 전에는, 운동을 했다. 한번도 안가본 다른 지점의 피트니스 센터에 가보았다. 나름 파리 한가운데, 왕궁 옆에 있는 곳이라 괜찮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샤워실과 탈의실에 바닥을 수놓은 머리카락이며, 토요일 낮이라 사람들이 빽백한 것하며, 뭇사람들의 가쁜 숨소리들.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접수대 상주하는 직원 얼굴을 하루가 멀다하고 보는 게 민망해서 궁여지책으로 가본 것인데, 그냥... 계속 민망한 채로 남는 게 낫겠다. 


 


아직 젖은 머리로 찾은 미술관. 


괜찮은 전시로 보상을 바라본다. 







#Celso Brandäo 셀소 브란다오 ; 



74년도에 첫 필름을 만든 영화작가. 내러티브는 없다. 이미지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다. 플로이드 필름같은 희미하고 포커스 아웃. 오브제는 클럽이나 무도회에서 춤추는 사람들.  길 위의 70-80년도 브라질리아 사람들. 낯설지가 않다.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시대가 떠오른다. 흙먼지가 느껴지는 허허벌판을 뒤로 하고 초점없이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사람들. 사는 게 바쁜 사람들. 날 것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기에 때로는 현실이 비현실로 보여진다.


       




#Vik Muniz ; 









눈속임의 기술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초콜렛 퐁듀로 여인의 얼굴을 형상화했다. 누군가는 '뻔한 속임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우리는 그 '뻔함'에 기꺼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것이 반복되면 그 흥미를 잃어버린다. 이렇게 '뻔한' 수법(?)을 구사할 때는, 무릎을 탁 칠만한 '재치'나 '발상', 비스무레한 거라도 같이 있어야 한다. 나름 '사고의 반전'이 필요하다랄까. 간사하지만,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니까, 뭐. 


그래도 재활용 쓰레기로 성채를 구성한 건 나름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집요한 노동의 결과이다. <로우 테크>의 일루셔니스트. 




#Joaquim païva ;





 건축물을 보니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가 떠오른다. 아직까지 그 건물을 눈에 가시처럼 거슬리게 보는 사람이 많다. 거대한 기하학 건물. 전시 설명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언급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전에 보았던 말, 기반시설이 전무해서 한참 공공기관 건물이 지어지는 개발도상국은 '건축가들의 야심찬 놀이터'라는 말이 떠올랐다. 엘리트 건축가들이 수년동안 다져온 자신들의 건축 이념이나 철학을, 백지에 첫 연필자국을 남기듯이, 거칠 것 없이 이국의 영토 위에 펼치는 거다. 자국에서는 건축 규제법이나 기타 걸림돌로 실행될 수 없었던 프로젝트들이다. 내게 그건 한편, 폭력으로 다가온다. 우뚝 선 성채처럼, 무자비하게 시선을 강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런 건축물 도큐멘트보다 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듯 한, 인물 도큐멘트가 '미적인 가치'는 한참 떨어질 지 몰라도 훨씬 내 시선을 끈다. 더 큰 울림이 있다. 도시 형성초창기에, 우리도 한국전쟁 이후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서 서울로 상경한 것처럼, 도시를 찾아 벌떼처럼 몰려드는 사람자들. 공장 노동자들. 노점판 장사꾼들. 그들도 처음에는 가슴 속에 청색 희망을 안고 왔을테지. 괜한 멜랑콜리가 일어난다... 




#Marcel Gautherot (프랑스 작가)




;식민지시대 현상중에, 내가 고깝게 보는 것이 있는 데, 열강들이 '탐사'랍시고, 식민지로 삼은 나라들을 구석구석 파헤치면서, '백과 사전식으로 도큐멘트'한 것이다. 그 작업의 집요하면 할 수록, 치밀하고 계획적이면 계획적일 수록 더욱 신물이 목구멍을 차고 오르는 것은, 그 작업이 순수한 '지식에의 탐구'를 가장했지만, 숙명적으로 '정치적 도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가 그렇다. 작업의 시발점에는 강대국 스스로 부여한 명분이 있는 거다.


무슨 자격으로,

무슨 권리로??


물론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볼 필요는 없을 지 모르겠다. 그 덕에 '브라질 작가'전시에 '프랑스인'으로써 이렇게 '한 자리' 거나하게 차지하고 있으니까. (제일 전시공간도 넓고, 그에 비례해 전시작품 수량 도 많다)  


물론 '관찰자'의 시선을 '관찰'하기에는 적합하다. 사람들은 익명으로 남고,(피부색과 그네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뚜렷하지만) 풍경은 '흔한 기념엽서'의 그것처럼 피상적이다.



전반적으로 이슈를 바탕으로 한 기획전으로서 헛점이 두드러진 전시란 인상이다. 토요일 오후. 아직 보상받을 기회가 내게 남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