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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5 카텔란 CATTELAN 의 모든 것 ! -㉡

카텔란 CATTELAN 의 모든 것 ! -㉡

카텔란 CATTELAN 의 모든 것 ! -㉡

카트린느 그르니에 Catherine Grenier 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telan 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위해 일년이상 공을 들였다. 공허로의 도약 le Saut dans le vide 이란 제목의 이 고백은 Seuil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하였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Guggenheim Museum 에서 열린 전시(2011.11.4-2012.1.22)를 맞아, 작가의 인터뷰 중 3부분으로 인용문을 본지에 싣기로 하였다.

CG

 

카텔란 CATTELAN 의 모든 것 ! -㉠에 이어...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첫 작품이 특별히 있나요?

 정확히 말하기 힘든 문제네요. 하지만 AC Forniture Sud 프로젝트를 중요한 순간으로 생각합니다. AC Forniture Sud 는 중요하긴 했어요. 거기 팀원들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로 구성했죠. 그리고 볼로뉴 아트마켓에서 《은밀하게》진행시킬 것을 보장했죠.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를 구석에 놓고, 조그만 상을 차렸죠. 가짜 전화를 놓고, 전시를 위한 가짜 브로셔를 놓아두었고, 《진짜》같이 꾸며놨습니다. 마켓이 열리는 동안 계속 있었는데, 아무도 나의 존재를 묻지 않더군요. 그 때에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거리에서 어떤 것이든 파는 방법을 이용한 거죠. 그걸 마켓에서도 한 겁니다. 가판대를 놓고 보다 마켓에 맞게 잘 꾸며놓은 거죠. 그래서 그 다음으로 토너먼트를 열어, 다른 팀들과 겨루도록 했죠. 볼로뉴 전시가 있을 떄, 국가별 대항이 있었죠...그리고 커다란 미니축구놀이대 baby-foot 를 만들어서, 인형들이 실제 경기자들과 닮도록 했죠. 그 당시 굉장히 진지하게 여러 복합적인 분기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비웃긴 했지만, 종일 거기에 매달렸었죠. 하지만 그들은 경기에 졌죠.

 

 

 

종이 화장실 미학 

 

왜 축구였나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기 위해 생각한 거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축구는 가장 대중적이고 거의 성스러울 정도였어요. 1980년대에, 아프리카계팀이 세계적으로 부상했죠. 카메룬, 알제리, 모로코는 중요한 팀이 되었죠. 존경을 받긴 했지만, 누구도 그들의 문화에 관심이 없었죠. 그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팔찌 따위나 나무코끼리등을 파는 문화도 있는데요. 이 두 부분이 같은 문화인데도 불구하구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반적이고 가시적인 것들을 이용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축구와 이민이란 소재는 거기에 완벽히 맞았죠. 팀은 Rauss 라는 유령 운송회사에 의해 후원되었어요. Rauss 는 독일어로  《바깥》이란 뜻이죠. 이 단어는 2차 세계대전동안 유대인들을 가리킨 말이었어요. 그걸 처음 읽었을 때는 어렸었죠. 네오 파시스트가 Padoue 벽에 쓴 말이었죠.

 늘 그렇듯이, 실제로 내가 겪는 일들을 이용합니다. 그들의 티셔츠에 로고를 새겼어요. 당시는, 이탈리아의 극좌파가 상승세를 타고 있었죠. Ligue du Nord, le parti séparatiste 의 초기에는 이민에 격렬히 반대했죠.

 

 

마켓이 열리는 동안 예술계에서 어떤 반응이었나요?

 마켓에서 사람들은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반응이 있긴 있었어요. 밀라노의 한 갤러리와 교류를 하고, 거기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를 찾았죠.

 AC Forniture Sud 는 아주 중요한 단계였고, 내게 어떤 촉발점이 되었어요. 사실, 다음 프로젝트들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어요 : 격렬하거나 도발하는 게 아닌, 대신에 은밀하게, 시스템의 헛점을 파고드는 방법 등이죠.[...]

 

 

현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말해주세요. 미술관의 총합을 열거해놓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 초기부터 해서 백여점 이상의 작품을 전시했죠. 하지만 아주 특별하게 모든 작품을 균등하게 분배했죠. 교황을 벽에 매달린 말 바로 곁에, 혹은 거대한 고양이 해골 옆에 위치시켰죠.

 

 

일종의 마리오네뜨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닌가요?

그보단 살라미Salami 같아요. 사람들이 접시에 살라미를 내는 방식같이요. 작품을 살라미처럼! 

 

 

이전의 전시에 비해 아주 인상적입니다.

작품들 간에 위계질서는 없어요. 동등한 위치에 있죠. 그래서, 어떤 작품은 그 비극을 면할 수 있었어요. 각각의 작품이 모여 하나의 다른 작품,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들죠. 몇년동안, 탈맥락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나 스스로를 탈 맥락화하는 데 이르렀죠.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이후에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신가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은퇴를 해야 할 지도 모르죠. 지금이 적기인것 같군요. 어쨌든, 지금은 계속 움직여야 하는 기계같이 연쇄적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느낌이예요. 현재 경제적으로 자립하였지만, 왜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까요? 나는 새로운 작품을 위한 가치들을 자문하곤 합니다. 지금의 가장 주요한 위험요소는 반복하는 방법입니다. 더이상 아틀리에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어요. 조수들이 잔뜩있고, 연작을 생산하는 공장같죠. 나같은 예술가들에게는 나만의 과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현재까지도 시장에서 내가 인정받는 부분이죠. 그래서 아마 그걸 할 유일한 방법은 그만 두는 것 뿐일 지도 몰라요. 난 항상 예술가를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언제라도 직업을 변경할 수 있죠. 예를 들어, Toilet Paper 는 시장에서 벗어나있죠 : 아무 것도 팔 게 없어요. 아무 것도 수집할 수 없죠. 단지 잡지일 뿐이예요. 미디어의 이미지이죠. 단지 그것을 재배열하고,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Toilet Paper 의 이미지를 만들었던 는 방식에 대해 더 말해주시겠습니까?

처음에, 구상하고 바로 실현했습니다. 사진들은 모두 제자리에 놓고, 장식을 위해 구성할 필요가 있었죠. 가끔 모델이나 배우들이 거기에 관여하기도 했어요.

 

 

어떤 점때문에 이런 이미지를 만드신건가요? 피에르파올로 페라리 Pierpaolo Ferrari , 린다 에반젤리스타 Linda Evangelista, 그리고 W매거진 등과 콜라보레이트한 패션사진들의 연장인요?

그렇다기보다, 내가 잡지를 직접 만들고 싶었어요. 1990년대에 Permanent Food 를 만들때처럼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W매거진과의 작업은 좋은 시도였고, 이후에도 잡지에 좋은 사례를 남겼죠.

 

 

모든 게 무대장치에서 출발한 이미지인가요? 예를 들어 포토샵에서의 편집이 아닌가요?

 네. 물론 나중에 보정은 하긴 했지만, 컴퓨터로 합성을 한게 아닙니다. 아주 다른 스타일의 강렬한 미학을 가지는 새로운 이미지들이죠. 내가 바랬던 것은, Toilet Paper 가 철학적으로 해석되지 보다, 존재로 있기를 바란 겁니다. 일련의 리뷰가 해석하는 것은 제치고, Toilet Paper 는 축제의, 여가생활의, 바캉스 적 분위기가 있어요. 여자친구 Toilet Paper 를 상상할 수도 있구요! 저한테 Toilet Paper 바캉스나 Toilet Paper 여자친구는 대체 어떤 건지 말해달라고 하지 마세요...

 

 

 

 

 

출처 : ARTPRESS #383. 2012.

기사 : Catherine Grenier

번역 : PLONGEUSE (zamsoobu. plongeur) 2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