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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25 뒤라스, 쓰기라는 질병 Marguerite Duras ⓑ

뒤라스, 쓰기라는 질병 Marguerite Duras ⓑ

(뒤라스, 쓰기라는 질병 Marguerite Duras ⓐ 에 이어...)

 

Marguerite Duras , OEuvres complètes , t.1

et t.2, biblothèque de la Pléiade , Gallimard

 

 

죽음의 무도

 

이《 쓰기와 반-쓰기》로 통해 우리 시대의 주요 작가들 중의 한 명이란 사실은 분명해졌다. 그리고  감정교육 l'Éducation sentimentale 만큼 이나 연인 l'Amant 의 문장들은 어느 철학자의 사상보다 우리를 움직인다. 왜냐하면 뒤라스의 모든 저술에서 실패이든 성공이든 상관없이 그녀의 경험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점을 알려면,우선 작품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종착지가 어디가 되었든 지금 새롭게 출간된 저서들을 봐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조용한 삶 la VIe tranquille 의 도입부를 보면 독자들을 이미 소진된 것 같은, 공허에 대한 낯선 명상으로 무심하게 끌리게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명상으로 말이다(가족사, 연애사. 그리고 범죄사에 대한 것까지) : 《 자신만을 위한, 춤을 위한 춤, 그리고 과감하게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저절로 춤이 추어질 때까지 계속 춤을 추어야 한다. 내 자신에 대한 완벽한 무지를 자축하며 춤을 추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무지함을 축하하며 춤을 추라. 》 이건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 의 첫 번째 시도이자, 《죽음의 무도》- 뒤라스가 각색한 스트린드버그 Johan August Strindberg [각주:1] 의 작품 제목- 의 의 첫 시도이다. 그리고 한 작품 끝나면 다른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의 위대한 작품들을 플레이야드 Pléiade 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최고의 작품들이다.롤 V. 스탱의 황홀 le Ravissement de Lol V. Stein , 인디아 송 India song 에서도 동일한 춤이다. 시립 카지노의 무도회장에서부터 프랑스의 대사관 데스크에까지, 라호르 lahore 의 부영사 vice-consul 의 음악은 이어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 의 문장 전반에 걸쳐서 : 《아주 느린 이야기, 기억의 파편에서 나오는 단조로운 노래, 그리고 거기서 떠오르는 무구하면서 망각되어진 문장들.

 

 

 

상실을유하다

 

작가들은 타인들보다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한다. 또한 조르쥬 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가 생각난다. 바타이유가 뒤라스의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바로 문학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사고에 대해서 말한다. 에드워다 와 더티 Edwarda ,Dirty 는 모두 작가의 히로인이다. 뒤라스 부인 Madame Edwarda 하늘의 푸른 빛 le Bleu du ciel 에서 뒤라스는 《상실에의 소유》를 주창한다 : 그리고《바타이유가 1958년도에 쓴, 비천함 l'abjection 에서는 망설이지 않는 과단한 기질의 독특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것은 고귀하게 은폐되었다기보다 해체되어가는 것이며 비속해지는 것이다 : 지나가다 마주치는 것들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의 소설에는 특별히 우리가 지나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건 롤 V. 스탱의 황홀 le Ravissement de Lol V. Stein  를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바타이유와의 근접성 때문만이 아니라 불가능에 대한 사고 때문이다. 자크 라캉 Jacques Lacan 은 그의 저서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으로 공허한 인생의 딱딱한 결합을 예찬하며 뒤라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황홀이란 그녀의 소설 제목에서《침잠》으로 설명된다 : 《나체를 말로 설명할 수 없듯이》이런 《허무》을《시선의 중심》에서 노출되도록 구성하고 있다.

 조용한 삶 la Vie tranquille 에서 이미 말했듯, 이러한《모든 것에 대한 무지, 그리고 이유없는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의 자의식을 해체하고 있다.》(뒤라스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다). 그리고 동정과 비탄에 젖은 말들로 광기어린, 유희에 찬, 열락에 차오른 상태에 도달한다. 부영사 vice-consul  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난 당신에게 말했듯이 이유없이 눈물흘린다. 내가 겪는 고통, 그걸로 인해 울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쓰기라는 질병

 

 그렇다. 뒤라스가《쓰기라는 질병》에 대해 말할 때, 진지하게 그녀를 살펴야한다. 바타이유도 그렇듯이 : 문학이란 질병과 어느 부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에 공범자이자 맞서야 할 상대이다. 뒤라스는 다른 작가들처럼 이러한 매체로 인해 증오와 사랑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역사(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희생자들, 라호르의 나병환자들과 모든 실패자들) 의 비탄함과 곤궁함을 들추고 있다. 이미 예정된 고통과 적막해질 것 같은 고통이 있다 :《나는 인도가 겪고 있는 고통을 보고 흥분한다. 거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사람들은 한 숨 쉬어갈 만큼의 고통이 아니라면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뒤라스는 문학이란 질병을 앍고있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 가 그런 맥락에서 이렇게 말했다 : 《절망이란 질명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가장 최악의 불행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처녀작이 거절되면서 자살의 유혹을 느꼈다는 이야기는 분명 허구이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문학을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놓았으며, 그녀 스스로 타인으로부터 겪은 고통을 작품에 이용하였다. 이런 점은 현대의 다른 여느 작가들과는 구분되는 뒤라스만의 감성,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런 경험들을 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높이 산 것은 헌신하는 대상이었으며, 문학 그 자체였다. 여기에서  고통 Douleur 의 한 구절을 들 수 있겠다 : 《 나는 감히 다가서지 못한 생각들 사이에서, 그 무질서한 현상들 앞에 서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문학의 시선을 유지한채. 》 뒤라스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녀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처 : artpress #385.2012.04

기사 : Philippe Forest

번역 : PLONGEUSE ( zamsoobu )작성일 2012.07

  1.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Johan August Strindberg, 1849.1.22~1912.5.14] 요약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하녀의 아들》, 《아버지》 등의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여 철저한 무신론과 자연주의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후기에는 신앙심을 회복하여 《다마쿠스까지》 등의 걸작을 발표하였다. 실험극장인 ‘친화극장(親和劇場)’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출처]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Johan August Strindberg ] | 네이버 백과사전 몰락해 버린 상인과 그 집의 하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성장하였다. 항상 결핍된 사랑에 고뇌하면서 미와 고귀한 것을 동경하는 한편, 반항과 조소만을 지닌 이상성격으로 일생을 방황하였다. 그는 이미 9세 때 첫사랑을 경험하고, 15세 때는 30세의 여인을 사랑하였으며, 세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는 59세 때 19세의 아가씨에게 구애하였다고 한다. “여인 속에서 천사를 구하다가 결국은 지옥을 발견하였다”고 그 자신이 표현했듯이 그는 상대를 절대적인 높이로 끌어올리고 자신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성모숭배의 인물이었다. 그는 웁살라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비 조달의 어려움과 사상적인 동요로 결국 퇴학하였고, 한때 의사 ·화가 ·배우를 지망하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을 기도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자포자기적인 생활을 하다가, 그 뒤 1874년에 왕립도서관의 직원이 되어 생활이 다소 안정되자 문화사와 중국학(中國學) 등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듬해인 1875년 후에 《천치의 고백 Die Beichte eines Thoren》(1888)의 여주인공 모델이 되는 남작부인과 알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계기로 다시 창작에 전념하였다. 그 후 1879년에 격렬한 자연주의 소설인 《빨간 방 Röda Rummet》을 발표하면서부터 신문학의 기수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아직 작가로서의 지위도 안정되지 못했고 부인과의 사이가 벌어지자 1883년 부인과 함께 고국을 떠나 6년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를 전전하였다. 그는 이 사이에 결혼생활의 이모저모를 묘사한 단편집 《결혼 Giftas》(1884∼1885)을 발표하여 당시의 여성해방운동을 냉소하였으며, 이 글 속에 신을 모독하는 말이 있다 하여 고발되었으나 무죄가 되었다. 이어 자서전적인 소설 《하녀의 아들 Tönstekvinnans son》(1886) 《대해(大海)에서 I hafsbandet》(1890) 등의 소설과 《아버지 Fadren》(1887) 《율리에 아가씨 Fröken Juliöé》(1888) 등의 희곡을 계속 발표하여 철저한 무신론과 자연주의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인생을 생존경쟁에 있어서의 격렬한 전투로 보았던 그는 부인과의 사이도 결렬되고, 마침내 그 자신도 반광인이 되어 1894∼1897년경에는 ‘지옥 시대’라고 그 자신이 주장했듯이 광기에 찬 불모의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와 E.스웨덴보리의 영향으로 다시 신앙심을 회복하고 전기(前期)보다 두드러진 창착활동을 재개하였다. 이 후기의 대표작으로는 희곡 《다마스쿠스까지 Till Damaskus》(1898∼1904) 《강림절 Advent》(1899) 《죽음의 무도 Dödsdansen》(1903) 《백조 아가씨 Svanevit》(1902) 《비텐베르크의 휘파람새 Näktergaleni Wittenberg》(1903) 《뇌우 Oväder》(1907) 《유령 소나타 Spöksonaten》(1907), 그리고 소설로는 《고독 Ensomk》(1903) 《역사의 축도 Historiskaminiatyrer》(1905) 《검은 기 Svarta fanor》(1907) 등이 있다. 위의 작품들을 발표한 때인 1901년에 그는 젊은 여배우 H.보세와 결혼하였으나, 3년 만에 파경에 이르렀다. 1907년부터는 자력으로 자작 상연을 주로 하는 실험극장인 ‘친화극장(親和劇場)’을 설립하여 3년간이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 극장의 젊은 여배우 파르크넬을 열렬히 사랑하기도 하였다. [출처]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Johan August Strindberg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