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독립영화의 새로운 바람_3; 로날드 브론슈타인 Ronald Bronstein (2)

 
●최근에 마음에 드는 다른 영화가 있나요?
 그렇게 많이 보지 못한 편이라. 씨네필적인 거와 난 거리가 멀어요. 하지만 계속 영화를 봐왔고, 다른 사람들 역시 영화 속에서 꿈을 꾼다고 생각합니다. 영사실에서, 사람들은 간접적인 인생의 경험을 하죠. 내가 영화들을 봤다고 말하기 전에, 책에 코를 박고 있다고 말하는 게 낫겠군요. 나는 젊은 작가들이 낭만주의를 좇는 현상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많은 것들이 내가 하는 작업과 연결되어 있어요. 야콥 L. 모레노 의 텍스트에 푹 빠졌어요. 그는 정신분석학적 드라마의 아버지이자, 비엔나 정신분석학의 유산이죠. 모레노는 프로이트의 유명한 수요클럽의 회원으로 거부되어있었죠. 내가 보기엔, 프로이트와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거의 무시되었죠. 모레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부자들을 위한 언어치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창부나 부랑자들을 찾기 위해 비엔나거리로 나갔어요. 그리고 그들을 극장으로 데리고 와서, 인생에의 고통을 연기하도록 했어요. 즉흥적인 이 연극으로, 그들이 삶을 극복하기를 바랬죠. 아주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프루스트도 읽었어요. 거의 책을 안읽지만, 프루스트는 내 인생에 영향을 주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한명입니다. 크누트 함순[각주:1],  위스망스[각주:2], 프루스트가 있죠. 언어를 위한 이야기와 내면에 다다르고자 한 작가들이죠. 문제는 이거더군요 : 어떻게 본질적으로 외적인 성질의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내면을 건드릴 것인가 하는 거죠.

●어떤 영화가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시나요?
 음...아마 프레데릭 와이즈만이 외부를 무시한 채 오로지 인물의 얼굴을 넒은 앵글로 촬영한, 거장이라 할 수 있죠.  와이즈만에게서 배운 게 뭐냐구요? 뉘앙스가 내부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라는 겁니다. 그러면 뉘앙스란 게 뭘까요?  영화적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없이, 인물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도, 거의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정신적 요소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어떤 이가 말할 때 그의 목근육이 움직이는 것과 같죠. 그건 어조의 변화화 같아요. 말할 때의 리듬이나 모든 것들이 내부로 이끌죠. 그래서 나는 그 여정이 무거운 이미지에서는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따로 내가 의미를 부여하거나 계획을 세울 게 없는 거죠. 우리가 창조한 세계로 관객이 깊이 빠져들도록 한다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무거운 영상을 두려워합니다.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이죠. 스텝 중의 한명인 숀 윌리암스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죠. 만약 당신이 얼굴을 크게 잡으려할 때, 이렇게 말하겠죠: 《그 위에 있다가, 점점 나가세요. 얼굴을 놓치지 말고 계속 줌인하세요. 》그들은 두려워하죠. 너무 숨막히는 것을을 만드는 거에 대해서요. 망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럴까요?

●뉴욕의 풍경도 찍지 않았나요?
 네. 그랬죠. 하지만 인물의 얼굴 뒤편 배경으로 나왔어요. 나는 인물이 행동하는 방식을 도시로 설명하길 바랬어요. 하지만 도시는 내가 그리는 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죠. 계획을 했어요. 이 도시와 안좋은 기억이 많았고, 도시도 그것을 알고 있었죠. 마치 공동협력자를 모욕할 수 없는, 감옥 안의 두 수감자의 딜레마에 빠졌죠. 나의 내면은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을 만큼 항상 공격적이었고, 최악의 경우를 걱정했죠. 그래서 실제로 그런 경우가 생기지 않더라고, 그것에 대해 늘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썼죠 : 이런 대치상황이 발생하면 난 뭘 할 것인가? 
 물론 내 작업을 알렸지만, 여전히 난 지하철을 타고 프루스트를 읽죠. 내 옆자리에, 교양있어 보이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책을 읽으면, 마치 나를 보는 것같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더 초조해할 겁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하죠 : 《누가 보면 이 어려운 책을 들고 지하철에서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의 시선은 불친절하죠. 그러면, 거기에서 난 더이상 읽지 않고, 나를 경멸하는 이런 시선을 상상하거나, 거기에 대한 내 반응을 시나리오로 쓰죠. 내 마음은 이런 거예요. 내가 상상한 시나리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죠 : 《프루스트를 잃는건가요?》라고 묻고, 나는 이렇게 답하죠: 《당신 입김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요.》그리고 이 대화에 흥미를 잃고, 그를 마치 지하철 바닥의 침팬지처럼 여기면서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유형에 대해서나 이런 대치상황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죠. 여기로 오기 위해 지하철로 20여분 걸렸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찍지는 않았지만. 
 결국, 이런 대립 상황이 존재하진 않지만, 내가 집중하는 에너지는 그런겁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로 가는가? 감정적으로, 공격적인 에너지가 상당히 발생하죠. 실제의 매체들은 어디있는가? 도시에 대한 나의 반응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욕을 떠날 걸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어디로요? 아뇨, 생각해본 적 없어요. 내 의지대로 내 삶을 살 자유가 없어요. 뉴욕 독립영화 집단의 한심한 작태에 대해 말하고 싶진 않아요. 물론 거기에도 흥미로운 뭔가가 있죠.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는 거요: 《다른 영화들을 지원하고 싶어요,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영화를 비판하고 싶진 않아요 : a) 왜냐하면 나는 무리나 집단에 호의적이기 때문이죠. b)교활하고 고약하게 굴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다음에 그들이 내 영화를 바랄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내 차기작이 실패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평단에서 호평을 받을 거랍니다.》 당신에게 중요치 않은 영화들에 쏟아지는 집단적 찬사는 좋은 게 아닙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이메일로 사람들에게 답하죠. 사프디 형제와 우정을 쌓으면서도, 한편으로 극도의 고립감을 느낍니다. 내가 Frownland 를 찍을 때 상태에 머무른 것 같거든요. 아마도 난 그때를 되돌이키려고 하는 건지도 몰라요.
 사프디 형제가 이 시스템에서 잘 통한다고 보지 않아요. 그들은 단지 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열정을 가지고있고, 환상적, 긍정적, 아름답고 우아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이죠. 그리고 그 틈을 가로질러 나아가는 유기적인 방법을 알고 있죠. 그렇기에 그들이 이런 집단 속에서도 피상적이지 않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인 겁니다. 

●로지 케리건[각주:3]이 감독님을 도왔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인가요?
 그가 Frownland 를 보고 피에르 그리즈 Pierre Grise와 연결해주었어요. 그가 없었다면 프랑스에서의 배급은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감독님한테 주요한 감독은 누가 있을까요?
 음,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슬래커Slacker(1991)입니다. 보다 젊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간섭하는 걸 감당하지 못했어요. 당신도 호감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할 겁니다. 마이크 라이가 첫 번째였고, 와이즈만, 알트만, 로셀리지였죠. 태도나 행동으로 구성하는 독특한 작품들이죠. 퍼포먼스에 기초한 영화를 찍는다면 누구라도 같은 원천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영감을 주기 위해 애쓰죠.
 당신이 편하게 보는 영화는 존재감이 없죠. 내가 관심이 있는 건 관객들이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겁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나는 관객이 위험을 감당하는 걸 전혀 배려하지 않는 영화인, 안티크라이스트 를 보면서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정말 진지해보였죠. 폰 트리에 감독은 사람들이 좋아할 용기가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르죠. 우리가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같은 기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불편한거고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게 더 쉬운 겁니다.
 가장 인상깊은 영화는 두말할 것 없이, 가장 비천하고 가장 부당한 영화입니다. 바로 데몬 파카드[각주:4]의 Reflections of Evil (2002)이죠. 엘에이의 언더그라운드 영화죠. 마치 내가 뉴욕과 맺는 관계처럼. 그래서 3시간 반 동안의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되겠죠 : 《그래서 제기랄, 대체 넌 뭘 보고 있는거야?》 뉴욕과 나와의 관계는 여기에 근거합니다. 당신이 영화를 본다면 절대 편안해질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이 스스로 할리우드나 예술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거스 밴 샌트[각주:5]의 오프닝 10분을 보는 것같지 않을 겁니다. 이 영화를 안토니아니[각주:6]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나서야 맘이 편안해지겠죠. 사람들은  영화가 관객을 지켜본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어떤 부류라는 걸 압니다.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그의 안전지대로부터 내쫓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영화에서 무엇을 느낄지 알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좋은걸까요? 나쁜 걸까요? 내가 뭐라고 말하길 원하나요, 좋다고요? 데몬 파카드는 그걸 이뤄냈고, 천재적 마니아로써 나쁜 취향과 부적절한 결정들을 작품에 쏟아부었죠. 그건 마치 정제되지 않은 시입니다. 난 이런 불균형을 좋아해요.

영화 이외에는 계획하고 있는 일이 없으신가요?
 대작을 위해서는 몇년이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완성되면,DVD 복제본이 L.A전역에 활개를 칠거라 생각해요. 극도로 공격적이면서 어두운 작품이죠. 하지만 잘 먹히죠. 내가 최근에 본 영화들 보다 더 많은 영감을 주겠죠. Frownland 에서 더 나아갈 겁니다- 더 조직적인 대사들이 사용될 겁니다 : 클로즈업, 전경에 반해서 하는 촬영, 장난스러운 작업등이 보다 표현적으로 나타날 겁니다. 가끔 이런 야성이 모든 통제를 잃게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 존재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를 벗어날 때 두 눈이 커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관객이 더욱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마치 이런 입장은 일면 켈리 리차드[각주:7] 카를로스 레이가다스[각주:8]의 침묵의 빛Lumière silencieuse(2007) 처럼, 비평가들이 전권을 부여하는 그런 유형의 하나같다. 아니면 거스 밴 샌트가 예술적인 영감을 유발하던 시기의 작품같기도 하다. 느리고, 과장한 듯 보인다...사람들은 이런 걸 초월적 영화라고 부르지 않나? 아시아나 남동아시아의 많은 영화가 이런 경향을 보인다. 난 결코 그편이 아니다. 나는 뜨겁고, 혼란스러운 지역에 안토니오니적 특징을 갖다붙이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시간의 흐름, 침묵, 인물들 간의 공허한 공간을 강하게 표현할 뿐이다. 나는 마치 감독이 스토리보드를 쓰는 동안, 그를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듯하다. 그건 너무 지겹다! 항문기의 표현은 너무 후한 대접을 받았다. 항문기의 반감, 프로이드적 분석은 이미 한물 갔다. 그래서 나의 현 개념을 언급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안락의자를 벗어나 어떤 방식으로든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Reflections of Evil 의 어떤 것에 감명깊었다면, 그건 아마 모든 것에 반하는 것일 거다. 사프티 형제도 역시 그들의 영화에서 혼란스러움을 감수하고 있다. 나로서는 그게 아주 시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당신은 거기에 깊이 침잠하여, 코 앞에 수많은 향취를 가진, 버려진 보물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그건 당신이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짓는 아주 능동적인 입장이다. 난 거대한 즉흥적 초안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에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독이 예술가로 남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걱정거리-그게 효과적일까? -가 남는다. 난 영화보다 오히려 로버트 크럼브[각주:9]  같은 예술가에게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들은 매체를 통해 그의 개인적 욕망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광기를 가지고 있다. 변종 예술인 것이다. 만화도 역시 자유가 평가절하되고 있다. 60년대가 되서야 90년대에 다니엘 클로두같은 작가-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 나타났다. 무분별하게 뮤즈를 따라가기 전에 그게 중요한지는 두고 볼일이다. 영화도 역시 무방비의 상태로 이끌지 않는가? B급 영화는 이런 공감대를 필요로한다. 마니 파버Manny Farber [각주:10]가 흰개미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흰 개미들이 땅굴로 헤집어놓은 것을 느낄 때, 그 무질서 속에서 나는 찾아헤멜 것이다.

뉴욕에서, 8월 15일.
스테판 들롬 & 니콜라스 엘리오뜨

<뉴욕의 새로운 바람-4 에 계속>


출처 : 69- page, cahiers du cinéma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Knut Hamsun (August 4, 1859 – February 19, 1952) was a Norwegian author, who was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in 1920. He was praised by King Haakon VII of Norway as Norway's soul.[1] Hamsun's work spans more than 70 years and shows variation with regard to the subject, perspective and environment. He published more than 20 novels, a collection of poetry, some short stories and plays, a travelogue, and some essays. The young Hamsun objected to realism and naturalism. He argued that the main object of modern literature should be the intricacies of the human mind, that writers should describe the "whisper of blood, and the pleading of bone marrow".[2] Hamsun is considered the "leader of the Neo-Romantic revolt at the turn of the century", with works such as Hunger (1890), Mysteries (1892), Pan (1894), and Victoria (1898).[3] His later works—in particular his "Nordland novels"—were influenced by the Norwegian new realism, portraying everyday life in rural Norway and often employing local dialect, irony, and humour.[4] The epic work Growth of the Soil (1917) earned him the Nobel Prize. [본문으로]
  2. 본명 Charles-Marie-Georges Huysmans. 파리 출생. 초기에는 《마르트, 한 소녀의 이야기 Marthe, histoire d’une fille》(1876)나 《바타르 자매 Les Sœurs Vatard》(1879) 등을 통해서 서민과 소시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졸라의 자연주의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역로 À rebours》(1884) 이후로는 위스망스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형성됐다. 생활의 추악상과 인생의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 자연주의의 편협성과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이 작품에서부터 일상생활을 떠난 심미적이며 신비적인 체험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예술과의 만남이 신비의 길로 들어서는 첫 단계였다. 둘째 단계는 《피안 Lá-bas》(1891)에 의해서 대표된다. 이 작품에서는 악마주의 ·주술 ·연금술 등,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야릇한 경험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착잡하게 전개되는데, 이 마술의 세계(제2단계)는 마지막에 이르러 가톨릭 예술의 위대성과 정신적 의미의 발견에 의해서 지향된다. 이것이 말하자면 위스망스의 신비주의의 제3단계이며, 《피안》의 끝에서 보여진 이 마지막 단계는 《출발 En route》(1895) 《대성당 La Cathédrale》(1898) 《수도자 L’Oblat》(1903) 등의 말기의 작품에 있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그의 정신과 작품의 궤적은 전반적으로 합리주의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문학 역시 상징적 ·초월적 세계로 지향하려던 19세기 말의 경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출처] 위스망스 [Huysmans, Joris-Karl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3. Lodge Kerrigan (born 1964) is an American motion picture screenwriter and director. His 2010 film Rebecca H. (Return to the Dogs) entered into the Un Certain Regard section of the 2010 Cannes Film Festival [본문으로]
  4. Damon Packard1967년 생 미국독립영화감독. 캘리포니아에 거주. [본문으로]
  5. Gus Van Sant, 1952~] 요약 미국의 영화감독. 《말라 노쉬》로 LA비평가협회 인디영화 작품상을 받았고 《아이다호》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주로 미국언더문화와 소외된 인간들의 기록을 영화로 남겼고 CF감독과 화가로도 활동하였다.[출처] 거스 밴 샌트 [Gus Van Sant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6. [/footnote]나 벨라 타르[footnote]Béla TarrTarr was born in Pécs, but grew up in Budapest. Both of his parents were close to theatre and film: his father was a scenery designer, while his mother has been working as a prompter at a theater for more than 50 years now. His mother took him to a casting by the Hungarian national television (MTV) at the age of 10 and he finally won the role of the protagonist's son in a TV-drama adaptation of Tolstoy's The Death of Ivan Ilyich. Apart from a smaller role in Miklós Jancsó's film Szörnyek évadja (Season of Monsters, 1986), Tarr never tried acting again. He has said that originally he wanted to be a philosopher, and he considered film making as something of a hobby. However, after making his 8mm short films, the Hungarian government would not allow Tarr to attend university. So he chose to pursue film production instead. [본문으로]
  7. Kelly Reichardt is a screenwriter and film director working within American indie cinema.[1] Her debut film River of Grass was released in 1994. It was nominated for three Independent Spirit Awards,[2] as well as the Grand Jury Prize at the Sundance Film Festival. In 1999, she completed her sophomore feature, Ode, based on Herman Raucher's novel Ode to Billie Joe. Next, she made two short films, Then a Year, made in 2001, and Travis, which deals with the Iraq War, in 2004. Most of her films are regarded to be part of the minimalist movement in films [본문으로]
  8. Carlos Reygadas (born 1971 in Mexico City) is a Mexican filmmaker known for his three films Batalla en el Cielo, Japón and Silent Light (Luz Silenciosa). After Batalla en el Cielo, he was known for his raw depiction of sex in his films and the use of old or ugly-seeming characters. His films explore spirituality and the sublime through the interior lives of men suffering existential crises. Reygadas has shot all but one of his films in CinemaScope. With Silent Light, Reygadas competed once more for the Palme d'Or at the 2007 Cannes Film Festival,[1] and has become one of the most prominent writer–directors of modern cinema. Martin Scorsese called Silent Light "A surprising picture, and a very moving one as well."[2] [본문으로]
  9. Robert Dennis Crumb (born August 30, 1943)—known as Robert Crumb and R. Crumb—is an American artist, illustrator, and musician recognized for the distinctive style of his drawings and his critical, satirical, subversive view of the American mainstream.[1] Crumb was a founder of the underground comix movement and is regarded as its most prominent figure. Though one of the most celebrated of comic book artists, Crumb's entire career has unfolded outside the mainstream comic book publishing industry. One of his most recognized works is the "Keep on Truckin'" comic, which became a widely distributed fixture of pop culture in the 1970s. Others are the characters Devil Girl, Fritz the Cat, and Mr. Natural. He was inducted into the comic book industry's Will Eisner Comic Book Hall of Fame in 1991. [본문으로]
  10. 언더그라운드는 전후 자유화 물결과 반전 사상, 사회적 터부를 거부하는 젊은층의 사회 변화 욕구를 반영하여 상업 영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 소재와 표현을 취한 영화적 경향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대다수 관객들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규모로 비공식적인 시사회를 가질 수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언더그라운드(지하)라는 용어를 갖게 되었다. 이 용어는 영화 평론가인 매니 파버(Manny Farber)가 소규모 자본으로 모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1930~1940년대 일부 영화의 흐름을 지적하면서 사용했으나 오늘날의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영화 작가인 스탠 반 더 비크(Stan van der Beek)로, 그는 1959년 자신의 작품과 유사한 경향의 영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이 시기 언더그라운드의 일반적인 경향은 영화 제작자의 감정과 사상을 가장 극단적인 국면으로 추구하는 것이었다. 추상 영화나 초현실주의에 기반한 영화는 물론, 섹스, 동성애, 수음 등 성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루는 영화도 다수 제작됐다. 이들의 표현 양식은 실재와 허구를 혼합하여 리얼리티를 거부하고 연대기적 서술보다는 시간을 뒤섞었으며 오래된 영화나 뉴스 영화의 장면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들 영화의 스타일은 일반 영화의 통례적인 정적 구도, 느린 속도감, 화려한 외양과는 거의 상치되는 것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작가는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즉흥적으로 촬영하면서 대단히 빠른 속도의 영상을 보여 준다. 때로는 카메라를 한곳에 고정시키고 영상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장면을 몇 시간이고 촬영하기도 하며 의도적으로 노출을 떨어뜨리거나 과다 노출시켜 영상의 밝기를 왜곡하며, 이중 노출, 네거티브 화면, 역회전 등의 기술적 트릭을 별다른 논리 없이 빈번하게 사용한다. 렌즈에 침을 뱉어 포커스를 무너뜨리며, 이상한 유리를 필터로 쓰기도 한다. 왜곡된 대사, 모순적인 의미 없는 대사를 반복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 촬영이 끝난 필름에 페인트 등 염료를 칠하기도 하며 필름을 긁거나 자르며 필름에 얼마 동안 곰팡이를 재배하여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것은 물론 영화 작가의 사회적 이념 혹은 특정한 미학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당시 중요한 언더그라운드 작가로는 스탠 반 더 비크, 조던 벨슨(Jordan Belson), 케네스 앵거(Kenneth Anger), 스탠 브래케이지(Stan Brakhage)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