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Robin Campillo( 120 battements par minuit)_카이에 뒤 시네마#736

광기어린 시절
로뱅 캉필로 Robin campillo


감독님 도 한때 악트업 Act Up 단체의 일원이었는데요, 그때의 기억으로부터 시나리오가 시작이 된 것인가요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한거죠. 하지만 내용은 여러사람과 함께 구성한 겁니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관련 도큐먼트를 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 목표는 영화예요. 역사를 기술하는 게 아니죠.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는 게 중요했는데,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도록 하거든요. 불신이나 전인적 측면같은 거요.

어떤 동기로 영화를 두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나요, 우선 AG , 그리고 숀의 죽음이요.

처음 시나리오를 쓸 당시, 별로 아이디어가 없었어요. 주사기를 준비하는 신으로 시작해서, 이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으로 구성하는 거였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현장감이 있을 수 없었죠. 누군가 <<악트 업 Act up에 온 걸 환영해>>라고 말하며 영화가 시작하는 구상은 예상을 빗나가면서도, 건전한 인상을 주죠. 어쨌든 영화가 교육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있었어요. 나중에서야 그게 이 단체를 설명해주는 게 아니란 걸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주 과격한 씬으로 시작하도록 바꾼거예요. 점점 사람들은 이 장면의 정당성을 이해하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 악트 업은 논쟁하는 단체였어요. 거기엔 연설의 정치적 힘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어요. 지금에 정치적 연설의 힘이 끝없는 장광설로 보이면서 비교적 힘이 덜해지는 현상을 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이죠. 전염병이 나타나고 나서 십년이 지난 후에 이 단체가 생겨났는데, 연설을 통해서 현실에서 가능한 일들이 생기도록 한거에 비하면요. 항상 말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했어요. 논쟁을 통해 모든 게 어떻게 생성되는지 보는 건 매혹적이었죠. 그리고 그룹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내면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지도.

영화 속에서는 가끔 아주 폭력적이거나, 혹은 블랙유머를 보여주거나 하는 상반된 면이 공존하는 데요.  가령 단원 중에 한명이 은연중에 림프구의 비율을 기준으로 더 발언권이 있는 지 요구하는 장면같은...

맞아요. 병은 발언의 정당함에 대해 질문을 던지죠. 누군가 이 영화는 아주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환상적이라고 하더군요. 나한텐 현실주의가 다른 것에 비해 덜 이상하다는 의미는 아니예요, 전략이긴 한데. 내가 흥미로운 건 뭔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거죠. 유연하면서도 급격하게요. 반면에, 영화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은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이죠. 악트업과 연관한 내 사생활은 그렇게 연관되어 있지 않아요.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게 되죠. 영화는 그룹을 통해 자생해나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실화의 여부를 따지는 건 너무 성가신 일이죠. 내부를 향한 시선에 대해 논하는 거 이외로 말이죠. 반대로 숀의 여러 면을 보여주도록 시도했죠. 병자가 되기에 그는 미소년이죠. 그는 병자를 연기했어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점이죠. 진정성에 훼손되는 건 없어요. 한편, 영화의 처음과 끝에 맞물리는 점이 있죠. 숀은 처음에 그토록 경쾌하게 장내를 아우를 줄 알았지만, 나중으로 갈 수록 병세가 심해질 수록, 더 이상 상상을 할 수 없게되죠. 그래서 티보 thibaut 가 친구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행렬의 처음에  데려오는 데 참을 수 없는 이유가 그런 겁니다. 


영화는 전적으로 시선의 교차로 이뤄지는데요. 연극처럼 말이죠.

논쟁하는 씬에서 흥미로운 점은 심리적 측면은 없다는 겁니다. 순수하게 태도만이 있을 뿐이죠. 좋은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불신이나,   모욕 등등 논쟁 중에 가능한 모든 것들이요. 구현해내느냐의 문제죠. 숀이 폼폼걸 아이디어를 냈을 때, 전장의 앞장 서는 것 같은거였죠. 그 순간에 티보 보다 더 전면에 드러나는 건 숀이었으니까요. 자신의 몸 그대로 드러내면서 말이죠. 그런 척 하는 것일뿐, 너무도 뻔하게, 그건 게임같은 거예요. 예를 들면, 카메라가 있을 때에는 경찰에 끌려가곤 했지만, 카메라가 사라지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어났죠. 하지만 정당했기에 연기를 자처한 거죠. 왜냐하면 에이즈는 명백히 우리 사이에 존재했으니까요. 하지만 행복했어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요.

물론이죠. 수치심의 문제가 아니예요. 하지만 삶의 강도에 관한 거죠. 당시엔 아주 심각했어요, 28세에 죽는 사람들이 연이어 생겨났고, 우린 공격적이었고, 기만하기도 했어요. 그만큼 젊었고, 너무 기쁨에 젖어있었죠.


이런 희열이나 블랙유머의 정신은 정치적이거나 권이적인 형태의 사회참여 운동의 이미지와 상반되는데요.

악트업은 아주 즐거운 그룹이었어요. 이런 희열은 이 그룹의 일부였죠. 사람들은 병에 정복되기를 거부하는 데 행복해했고, 비록 그게 갑자기 덮치더라도 말이죠. 처음 집회에 갔을 때, 기이함을 느낀 게, 대체 내가 어디가 아픈지 자문하게 된거죠. 영화에서처럼, 한 여성이 집에 욕조가 가짜피로 가득차 있다는 이유로 발언을 한다는 것처럼, 아니면 <<어쩌면 이게 마지막 게이퍼레이드 일지도 모르니까>>라는 발언처럼, 첫 구상은 희열감이었어요. 살기 위한 거는, 클럽에 가기 위해, 섹스를 하기 위해서지, 일을 하거나 집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죠. 우리는 삶의 기쁨을 추구해요. 투쟁하는 사람들에서 발견하는 흥미로운 점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는 거예요. 장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예요. 그런 걸 보면 말이죠.


그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실험실을 급습했을 때보다 지하철 안에서 순간이 보다 강렬하게 느껴지는데요.

당시에 강렬하게 느낀 건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지 못한다는다는 인상이었요. 숀의 독백은 아이러니하죠. 병에 걸렸을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답다는. 어느정도 사실이죠. 가장 감명깊은 장면이예요. 개인적으로. 혹은 분노하는 장면도 맘에 들어요.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강한 기억이 있거든요. 칸에서 영화를 보면서 연극의 장면처럼 구성된 것 같은 인상을 받았죠 , AFLS , 고등학교, 혹은 보험의회에서 등등. 사람들은 불안과 긴장으로 소리지르기도 하고 서투른 행동을 하기도 하고, 마치 형편없는 배우처럼요. 이미 알고있는 텍스트로 아주 정형화된 씬들로 갑자기 시작되는 것 같이요.

어떻게 이 씬들을 디렉팅했나요?

거의 3일 동안 반복했어요. 영화에서보다 큰 강의실에서, 가끔 적절한 거리를 찾는 데 어려움은 있었지만요. 목소리가 충분한 볼륨을 가져야 했거든요. 음향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대해서도 연구했어요. 목소리가 더 이야기를 가지도록 말이죠. 이렇게 반복하면서 전문 기술적인 대화를 표현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게됬죠. 관객이 극장에 덜 찾아오는 건 괜찮지만, 배우들이 길을 잃는 건 심각한 일이죠. 촬영에서, 즉흥적인 건 없어요. 시간도 부족하구요. 하지만 배우들의 위치에서 너무 엄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세 대의 카메라로, 배우들이 촬영 중이란 걸 너무 의식하지 않도록 했죠. 카메라 감독인 잔느 라푸아리 Jeanne Lapoirie 과 상의 끝에 최소한의 시간으로 촬영하도록 했죠. 각 테이크마다 최대 20여분의 준비시간 후에 말이죠. 각각 테이크마다 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쓰느라 작업이 너무 늘어지지 않도록 말이죠. 영화에 일부분 내버려두는 태도는 매혹적이죠, 욕조에 앉아 자신 스스로를 보도록 하는 것 같이요.


여러 배우들이 연극에서 정통연기수업을 받았는데요. 일부러 그런 배우를 캐스팅한건가요?

네, 여러명이 예술학교 출신이죠. 왜냐하면 전문기술적인 대화나 투쟁적인 발언등은 말하는 데 더욱 견고한 면이 필요하거든요. 내 걱정은 급습하는 장면 등에서 배우들이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 마냥 분개하거나 격분해서 으시대는 것 같이 될까봐 였어요. 내가 인위적으로 요구하지 않도록 배우들이 광기에 차서 좀 지나치도록 하는 게 중요했어요. 나는 <<게이를 말하는>>사람을 찾기를 원했죠. 하지만 견고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에선 기술적인 면이 큰 기준이었어요. <<레버넌트>>같이 판타스틱 장르에서 더욱 그런 문제를 절감했어요; 아주 끔찍했는데, 배우들이 판타스틱 한 면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반면 카트린 사미Catherine Samie, 세익스피어 연극을 10여편 해온 경력의, 는 그런 점에서 완벽했죠. 어색하지 않도록 연기하는 게 아주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배우들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해야했거든요. 적어도 백여명의 사람 앞에서요.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했죠.


연극인데요, 완전히 그건.

맞아요. 내가 보기엔 연극배우들은, 특히 호흡에 있어서 가끔 호흡이 엉키곤 하는 영화배우들보다 훨씬 상상력에 유연성이 있는 것 같아요. 연극에서, 계속 호흡을 이어가며 연기하죠. 9개월 걸려서 배우를 찾았어요. 자연적 상황에서 다음 순간, 그것과 거리가 먼 상황으로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배우여야 했죠. 나탄 Nathan 을 연기한 아르노 발루아 Arnaud Valoi 는 15살에 연기를 했죠. 니콜 가르시아 Nicole Garcia 샤를에 따르면 Selon Charlie 에서요. 이후로 배우경력을 쌓기를 원했지만, 생각처럼 되진 않았죠. 하지만 다른 직업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사지사나 다른 일을 하면서 오디션을 봤죠. 캐스팅 디렉터 앞에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감동을 받았어요. 연기하는 걸 즐기면서도, 바로 이해할 수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죠. 프랑스 영화계에선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죠.  반면에 숀 역활의 Nahuel 은 연기하는 자신을 관찰하도록 하는 면이 있었죠. 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부분이었어요. 처음 부분에 연극성을 보여주기에 그럴 권리가 있었어요.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그에게 연기하는 걸 의식하지 않도록 요구했어요. 그에겐 어려운 요구였죠. 유연하고 영리한 사람이니까요. 또, 무용이 그의 주요 장기이니까요. 주목할 만한 건, 마지막으로 갈 수록 이 두 배우의 눈높이가 같아지는 거죠. 


악트 업을 돌이켜볼때, 영화에서 보이는 열광이 이해할 만할까요, 아니면 이런 열광은 의외의 면인가요?

우린 하찮은 바보들이었어요. 우리끼리 말하길 나쁜 게이들도 있고, 좋은 게이들도 있다고 했죠. 물론, 사람들이 우리 옷차림을 보면, 짧게 민 머리나 봄버를 보고, 처음엔 극우주의라고 생각했어요. 미친 무리일 뿐이라고 나중에서야 알아채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칸 이후에선 모두 그러길 자청했어요! 처음에 영화 제작을 위해 투자자를 찾을 때, 악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거라고 하면 다음 대답은 이거였죠. <<악트 업이요? 멋진데!>> 디디에 레트라드 Didier Lestrqde (악트 업 창단멤버 중 한명) 는 이런 텍스트를 남겼죠. <<찬사는 아껴두시오>> 우스운 건 사실이예요; 정치이야기는 접어둡시다.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이런 열광은 어떤 향수로 남아있죠. 다른 이유로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말의 힘을 잃은 현시대의 사람들에게도요. 당시에 프랑스에 없었던 미국식 행동파적 수단을 이 단체를 통해 투영할 수 있죠. 그래서 그들의 행동들은 현실에 영향을 티쳤고, 즉각 와닿을 수 있었죠. 그게 투쟁과 회의의 차이예요. 투쟁은 현실화된거요. 여성 낙태권 투쟁이라던가, 뭔가 우리의 신체에 직접적이고 강하게 연결된 화두에 대해서요. 물론 지금도 많은 투쟁이 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거든요. 악트업에서 우리는 아주 단순하고 심플하게 접근하도록 했죠. 하지만 가끔 지나친 합리화로 인해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예요.


말미로 갈 수록 빠른 진전이 인상적인데요.

내가 말한 시기는 3여년 동안 진행된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어요. 빠르게 나타났다가 빠르게 소진되었죠. 아쉬워할 필요가 없죠, 자연스러운거니까요. 영화는 모두가 함께 했던 강렬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병의 끔찍한 순간을 견디기 위해 단체를 떠나는 건 힘든 일이죠. 숀이 그런것처럼요. 개인적으로 숀이 겪은 일 들 중에 가장 감명을 받는 부분이예요. 그가 정말 나탄을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단체를 떠나야했죠. 불안한 커플이죠. 병원에서의 섹스신은 에로틱한 동시에 헌신이죠.


<<사랑은죽음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적절할까 싶은데요, 에로스나 타나토스나...

맞아요. 에로스와 타나토스, 당시에 늘 인식하고 있던 부분이죠.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계속 인터뷰를 요구할 때, 미치도록 화가 나있었다고 믿었었어요. 그리고 나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글쎄요, 노 땡큐입니다...과학적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어요: <<죽음은 사랑보다 강하다>><웃음> 이 장면에서 마음에 드는 건 Nahuel 의 연기예요. 감정의 일시적 안정이죠. 처음에 그들에게 각자 서로 자위하도록 하려다가, 촬영장에서 숀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됬죠. 단지 시도를 할 뿐 되지 않아서, 나탄이 해주도록요. 이 장면이 너무나도 비극적이게 된 거죠. 나탄이 숀을 좋아하는 만큼, 숀은 나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로 더 감동이 있어요. 사람들이 깊이 이해하진 않아도, 그게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통틀어, 우리가 느끼는 사랑에 어떤 불확실한 부분을 보여주거든요. 어떤 냉정함과 동시에, 감정의 느슨함도 느끼게 되죠. 우리는 늘 감정이란 게 뜨겁고 불타는 거라 생각하지만, 거짓이죠, 그건. 감정은 진정 차가운 거예요.


멜로는 늘 표현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는 거란 말인가요.

네, 바로 그래요. 끝에 멜로만 있는 게 아니라, 처음에나, 중간에도 있죠. 예를 들면 제레미의 죽음에서도요. 아주 급진적이긴 했지만. 마음을 흔드는 것 중 하나는, 아카이브된 이미지를 통해 이런 멜로드라마적 전개를 빠르게 한다는 겁니다. 아주 어린 소년이 죽었


을 때, 그 젊은 나이의 사망은 그것만으로 무언가 강한 것을 남기죠. 하지만 진정한 멜로는 숀이 병원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에 그 자체로 만들어지죠. 그가 그 단체 속 일원이었지만, 더 이상은 아닌, 구경꾼이 되는 순간이요. 아주 심플하지만, 잔인한. 그래서 병원에 단체멤버들이 찾아오는 많은 씬들을 편집한 이유예요. 모든 거리는 그의 몫이죠. 병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죠. 더 이상 그 이전의 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멜로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요.



출처;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 du cinéma#736.2017.septembre.
인터뷰어 장 세바스티앙 쇼뱅 Jean Sébastien Chau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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