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8,홍상수 - 어색함과 리얼리티 사이 -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현실'을 말하는 것이 옳을 지 모르나, 사실 그가 말하는 것도 온전한 '현실'이라고 부르기엔 미심쩍다. 왜일까? 영화라는 태생으로 인위적인 태도를 갖는 것 때문일까?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몰입을 하도록 하는 영화가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단순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를 완전한 '리얼리스트'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인가.  
 
 이야기의 화자는 구감독이다. 구감독은 격언집에 나올 법한 그럴 듯한 말을 하지만, 행동거지는 위아래 없이 들쑤시고 다니는 미꾸라지와 다름없는, 모순에 찬 인물이다.  
 
 친구의 아내와 섹스하고 선배의 구린 구석을 눈감고 지나가며, 결국 그 선배의 아내와  섹스를 한다. 
 영화 속 섹스는 어딘가 찝찝하다. 유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갈증에 어쩔 수 없이 들이키는 미지근한 물같다. 살면서 판타지로 이상화된 섹스보다 더 추락하는 그 것은 영화가 찾은 현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는 않듯이, 영화가 가진 현실은 대부분의 것이라 일반화시킬 수 없다. 그 덕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래서 혼동된다. 현실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으나, 벗겨보면 어쩔 수 없는 '가상'이랄까. 그 가짜의 묘미를 즐길 수는 있으나, 단단히 그 즐길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화가 나면서 불쾌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매니아가 있는 것 아니겠나.

이 영화는 마치 감독 자신의 '총체적 고해성사'같다. 그가 겪었던 과거 인물, 현재 주변인물들에 대한 잠재적 진술이랄까. 그래서 매우 씁쓸하다.

온전히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닮은 구석을 찾을 때마다,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점을 거울로 확인해버린 기분이 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영화 속 지경까지의 '리얼리티'는 겪지 않았으니,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