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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8 뉴욕 독립영화의 새로운 바람_5_조쉬 앤 베니 사프디Josh & Benny Safdie_(2)

뉴욕 독립영화의 새로운 바람_5_조쉬 앤 베니 사프디Josh & Benny Safdie_(2)

●지난 해, 감독님은 비디오카메라로 단편 John's Gone 을 촬영했습니다. 그편이 더 즐겁습니까?
J.S : 8mm비디오 카메라를 말하는 거라면 그렇습니다. 구식이지만, 우리가 늘 이용하던 거죠. 언제나 충실한 표현도구이죠. 흔한 디지털 카메라가 아닙니다. 우린 그걸 영화에 맞게 개조했죠.
B.S : 16mm Bolex 나 Angénieux 카메라 만큼은 가야했어요. 믿을 수 없는 심도가 가능했죠. 거기에 파인더가 흑백이었기 때문에, 칼라 모니터와 도료용 스프레이가 필요했죠. 또, 스테디캠도요.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감시가 목적이지만 이제 소비자에 맞추어진 셈이었죠. 선배 감독들도 같은 걸 가지고 있었어요. 8mm카메라로 찍고, HD로 상영하여 필름으로 전환하죠.
J.S: 정말 이상한 건 건전지로 15밖에 가지 않는 다는 겁니다. 우린 건전지 백여개를 15달러어치 샀어요. 반대로 카세트는 하나에 1달러도 하지 않았죠!! 필름 한 롤이 100달러고, 현상하는데 200달러 드는 거하고 비슷하죠. 
B.S:테이프는 점점 흑색이나 청색조로 변질됬어요. 너무 우울했죠.
J.S : 이 카메라는 1987년식입니다. 첫번째 디지털카메라였죠. 하지만 난 다음 장편을 위해 Penelope d'Aaton 으로 촬영을 앞당겼죠. 35mm Scope로 촬영할 겁니다. 여기 필름 영화를 위한 슬레이트도 있어요. 비전문배우로 촬영할 때, 슬레이트 소리는 너무 위협적이었죠. 촬영장의 신중한 분위기을 놓칠 수 있었죠. 슬레이트 소리를 음향에 덧붙였어요. 펜베이커같은 디렉트 시네 거장들이 사용한 것처럼요.

Uncut Gens 는 35mm로 촬영한 첫 영화가 아닌가요?
J.S : 네, 계속 바랬죠. 뱅상 갈로가 연기하면서, Penelope 카메라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죠. 그는 그게 최고의 카메라라고 했어요. 난, Arriflex를 좋아해요. 독일인들이 기계를 만드는 방식이 좋더군요. 반면에, 프랑스인들은 사랑을 담아 기계를 만들어요.
B.S : 세상에 유일한 나무 손잡일 겁니다. 수공이죠. 아주 비싸긴 하지만, 아주 경이로운 물건이예요.
J.S : 아직도 그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제임스 칸James Caan이 그러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더군요. 우리가 연락한 배우들은 이미 무료출연을 약속했어요. 독립영화 스프릿 어워드 Film Independent Spirit Awards 를 받은 이후로, 많은 제작자들이 우리와 일하고싶어해요. 시간은 우리의 편이죠. 난 우리 직원들에게 자금은 한달내에 다 확보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다다음 달에 촬영을 한다구요. 만약 못찾으면, 유럽으로 갈 겁니다.
 하지만 난 모험을 즐겨요. Uncut Gens 엔 많은 감각적 사건이 넘쳐요. 부정직함에 관한 영화죠.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범죄를 저지르죠. 스릴러예요. 살인자들은 주요인물들을 제거하여 하죠. 그리고 남자가 살해당합니다. 아주 이상한 것들을 여기저기 흩뜨려놓았어요 : 우리가 사람을 죽일 때 무엇이 느껴지는가? 사람을 죽이고나서 2분 안에 도망칠 수 있을까? 우리의 주인공은 반사회적인 유형입니다. 그리고 그는 2분 안에 도망친 다음에, 이렇게 말하겠죠.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B.S: 또 그는 과거에도 동시에 나타납니다. 지난 60여년 동안 과거 속에 살던 남자죠. 그는 왜 이전과 같지 않는 지 모릅니다. 그리고 Lenny and the Kids 에서는 아버지와 가족에 대해 말했죠. 이 주제는 Uncut Gens의 3분의 2분량을 차지해요. 우리의 인생에서 다른 부분을 캐어내서 작업에 연결시키죠. 모든 걸 영화에 쏟아붓죠.
J.S: 실질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우린 보다 야심찬 제작을 필요로해요. Lenny and the Kids에서 우린 아파트 한채 밖에 찾지 못했고, 인물들에 맞게 바꿔야했어요. 그렇기 위해 우린 3채의 아파트가 필요했어요. 상점을 포함해서요. 그것도 보석가게요!
B.S: 벽에 금 목걸이가 빼곡히 걸려있는 벽도!
J.S:700캐럿의 검은 오팔을 보여줄 때, 그게 진짜처럼 보여야했어요. 보석의 아름다움을 꾸며낼 순 없었죠. 맨하튼에 다이아몬드 지역에 보석가게를 열겁니다. 우리의 목표는 누군가 쇼윈도를 보고 반지를 사기 위해 들어오도록 하는 거죠.
B.S: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작품들을 구상하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Lenny and the Kids에서 아파트는 완전히 다시 개조한 겁니다. 벽보들도 새로 산 거라구요! 3달 동안의 집세도 냈죠. 그리고 가구들도 새로 사구요. 모든게 평범한 아파트처럼 보이게 했죠. 
J.S: 우리의 최신 작품은 별로 흥행을 못했어요. 많은 나라에서 배급이 이뤄지고, 평단의 반응도 좋았는데요. 하지만 수상을 한 덕분에 정신없이 뭔가를 하게 됬어요. 안좋은 시나리오가 줄지어왔죠. 난 촌스러운 마음을 좋아해요 : 헐리우드는 우리에게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 곁에 두려하는 것 같았죠. 우리는 블랙 스완 Black Swan(Darren Aronofsky, 2010) 만큼의 자유를 주고, 우리를 내버려두도록 설득했죠. 그런 영화를 시스템 내부에서 찍는 건 일종의 모험이죠. 폭스 서치라이트Fox Searchlight 는 그를 위해 천만달러를 투자했어요. 그들한텐 큰 액수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많은 액수죠. 나탈리 포트만이 여주인공이라지만, 어쨌든 저예산 영화죠 : 그들은 지하철에서 16mm 카메라로 촬영했어요. 우린 시스템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러저러해서 영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돈이 만이 들어가게 됬어요. 우리의 목표는 20만 달러로 다른 영화를 만드는 거였죠. 독일로 갈 생각입니다. Maren Ade[ Everyone Else, 2008, 의 감독] 가 제작을 하고싶어했죠. 일단 차선책으로 남겨놨어요. 그렇게 하면, 아마 10배는 더 어려워질겁니다.
B.S: 만약 영화를 미국에서 개봉할 생각이라면, 미국인 제작사를 찾는게 더 나을 겁니다. 영화가 개봉할 때에도 투자를 하거든요. Lenny and the Kids 를 위해서, 우린 1년 반을 투자해야 했어요. 결국 나중에는 단지 새로운 뭔가를 하기 원했죠!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미국인 동료는 누가 있을까요?
J.S
: 잘 모르겠네요. 빅 비치 Big Beach 가 있죠. 그는 칸느에서 감독주간에서 Lenny and the Kids 를 보고 계속 참여해왔죠. 그때 수상하기 전이었지만, Newyork Times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었죠. 시나리오를 보여주기 전이었음에도 관심있다고 하더군요. 당장 L.A 직원들은 타협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여러 옵션들을 궁리했어요. 그리고 비전문배우로 여주인공을 캐스팅 할 것도요.
 그건 진정한 뉴욕의 영화입니다. 60여명이 6번가에 밀집되어 있죠. 불법적으로 하기에 이상적이었어요. 우린 400여명의 사이클러들에게 45분간 길을 막아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촬영은 그 자체로 신화가 될 거예요!
B.S: 불가능해요! 인파들에 파묻혀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 겁니다. 이런 때는 계획의 절반도 하기 힘들어요. 아마 특수효과를 위해 추가 비용이 들겁니다.
J.S: 마치 Lenny and the Kids의 모기의 경우처럼요. 거기에 예산이 두번째로 높게 들었어요.

●베니, 당신은 단편에서의 인물을 다시 빌려왔는데요.
B.S:네, 존은 Uncut Gens의 인물이죠. 그는 고아예요. 그의 대부는 보석상이죠. 연기하면서 동시에 연출하는 게 좋아요. 영화에 방향을 잡게 하거든요. 단지 존재만으로도 전체적인 일관성을 바꿀 수 있어요. 통제할 여지를 주죠.
 Lenny and the Kids 에서, 조쉬가 카메라를 맡고 난 음향을 맡았어요. 눈과 귀를 합하여 영화를 만든거죠. 시나리오는 아주 어려웠기때문에, 계속 상의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에 모든 충돌을 막을 수 있었죠. 촬영할 때, 우린 서로 무엇을 원하는 지 잘 알고있었어요. 조쉬가 배우와 단독으로 말해도 괜찮았어요. 우리가 이미 합의한 거였죠. Lenny and the Kids 에서 우리는 로니에게 실내가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죠 : 《진짜같아보여요?》다음에는 연기를 할 실내장면을 더 발전시킬 겁니다. 조쉬가 바깥을 맡구요.

●당신에게 어떤 뉴욕 감독이 중요한 사람인가요?
J.S : 당연히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각주:1] 죠. 그는 보헤미안의 오래된 상징입니다. 늘 예술에 굶주려있는 사람이죠. 그에게 300달러를 주더라도, 그는 영화를 만들 겁니다.
B.S: 악질경찰( Bad Lieutenant (Werner Herzog  ,1992)) 의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그들은 자격을 박탈당하고 역 앞에서 총을 쏘죠. 우리의 다음 장편 Uncut Gens 에서 아마 제어불가능한 요소들로 촬영을 하게 될겁니다. 우린 이런  요소들을 잃지않도록 할겁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각주:2] 가 뉴욕에서 Et tout le monde riait 를 찍을 때, 그는 오드리 헵번, 벤 가자라, 카메라맨이 길 거리에서 촬영하기 위해 30여 가옥이 모여있는 구역으로 스탭들과 약속을 잡았죠. 미친 짓이죠! 프렌치 커넥션(French Connection, William Friedkin, 1971)의 자동차 추격신은 통제없이는 불가능하죠. 프리드킨이 매트리tㅡ에 둘러싸여서 지시를 했을 겁니다. 조쉬와 난 그런 방식으로 해볼 작정이예요.
 내가 좋아하는 뉴욕 감독 영화는, 최근에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본 두 편이예요 : The Super cops(Gordon Parks, 1974) 과 Cops and Robbers(Aram Avakian, 1973) 이죠. 이 영화에는 감독이 살았던 동네에서 촬영한 것으로, 어떤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요. 프렌치 커넥션에는 뉴욕에서의 자유로운 삶이 담겨있죠. 진 해크만이 담배를 피우는 데, 연기가 아니라 실제같죠. 뉴욕을 낭만주의적 시선으로 보지 않고, 어느 장소로 대합니다. 사소한 것들에서, 사람들은 공감하죠. Frownland도 마찬가지예요. 이 영화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교외같아 보이는 곳도 사실은 퀸즈에서 촬영한 거죠. 우디 알렌 Woody Allen의 최고작품인 Brodway Danny Rose(1984) 를 보면, 맨하튼의 그늘진 곳이 나옵니다 : 미드타운이죠. 더이상 지금은 없는 인물이 나오죠. 그리고 택시 드라이버...  트래비스 비클이 콜럼버스 써클에 들어가서 대통령을 본 건 이상했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어요 : 뭐, 지금 대통령이 오바마인 걸 보면 더 그렇죠! ■



뉴욕에서, 8월 12,13일.

스테판 들롬 & 니콜라스 엘리오뜨

<뉴욕의 새로운 바람-6 에 계속>


출처 : 73-74 page, cahiers du cinéma 2011.9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Abel Ferrara (born July 19, 1951) is an American film screenwriter and director. He is best known as an independent filmmaker of such films as The Driller Killer (1979), Ms. 45 (1981), King of New York (1990), Bad Lieutenant (1992) and The Funeral (1996). [본문으로]
  2. Peter Bogdanovich, 1939.7.30~] [출처] 피터 보그다노비치 [Peter Bogdanovich ] 1939년 7월 30일 뉴욕 킹스턴(Kingston)에서 출생하였으며 세르비아 출신의 화가이면서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중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1년에 400편의 영화를 보고 여러 잡지에 영화평을 기고하였다. 이후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노력하던 중 1968년 스릴러물 《타겟 Target》을 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그가 연출한 《마지막 영화관 The last picture show》(1971),《왓츠 업, 덕? What's Up, Doc?》(1972), 《페이퍼 문 Paper moon》(1973) 이 연이어 크게 성공하면서 그는 1970년대 최고의 스타 영화감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발표한 《데이지 밀러 Daisy Miller》(1974), 《5센트 극장 Nickelodeon》, 《엣 롱 라스트 러브 At long last love》(1975)의 영화가 모두 평론과 흥행이 저조하여 1970년대 후반 파산의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후 1985년 연출한 《마스크 Mask》의 흥행성공으로 다시 주목을 받아 《텍사스빌 Texasville 》(1990), 《와이즈 오프 Noises Off 》(1992) 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광 출신의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1970년대 한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더불어 미국에서 주목받던 영화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 피터 보그다노비치 [Peter Bogdanovich ] | 네이버 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