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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인터뷰/카이에 뒤 시네마

2021 avril 

시네필의 행적을 보면 파리에서 체류했던 적이 있는데요.

1974-75년도에 처음 파리에 갔었죠, 콜롬비아 대학생일 때에요. 원래 6달이었어야 하는데 일년동안 있었죠. 아주 주요한 계기였는데ㅡ 당시 프랑스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시작하고 있었고 매일 시네마테크를 가곤 했었죠. 진짜 많은 것을 봤죠! 제가 모르는 할리우드 영화나 전 세계 영화 특히 아프리카, 셈벤 감독 영화가 그렇죠. 모든 게 돈한푼 안들이구요. 하루는 앙리 랑글루아가 불러서 간 적이 있는 데, 상영이 끝나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직접 줍고 있더라구요 : [[당신은 매 회차마다 나가야 된다는 걸 알고있을 텐데요]] 그에게 다른 표를 살 돈이 없다고 했고ㅡ 그가 그러면 남아있도록 하면서 더 이상 묻지를 않았죠. Nadja 와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죠. 프랑스어는 엉망으로 하곤 했고 읽는 것의 반은 이해를 못했죠. 하지만 경험이었으니까요. 잡지를 보며 비평 감각을 유지하려고 했죠. 앙드레 바쟁 같은 <<고전>>을 놓치지 않으면서요. 2개국어로 된 잡지를 보면서 프랑스식 시정을 볼 수 있었죠. 

 

뉴욕에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블리커스트릭 영화관에 가곤 했나요? 80년대 초에 [[까이에 주간]]이 있었는데요

네 그래요. 재키 레이날Jqckie Rqynql 이나 시드 게펜Sid Geffen 이 주최한 게 기억이 나네요. 파스칼 오기에ㅇ나 불 같이 조금 페티시적인 발행본도 있었고, 엄청난 양의 컬렉션이 대단했죠. 혹은 마그리트 뒤라스의 <<녹색 눈>>이 실린 호도 그랬구요. 내 컬렉션의 보물이죠.

 

감독님 영화를 보면, 다른 영화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요. 작품을 만드실 때, 감독님의 시네필 성향이 많이 반영이 되나요?

나는 영화 너드예요. 모든 장르를 섭렵하기를 좋아하죠. 무성영화나 기이한 영화나 현대의 유행하는 영화 모두요. 무성영화는 유성영화가 도래하기 전에 보다 복잡한 수준의 구성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버스터 키튼을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매번 그의 영화를 다시 볼때마다 배우는 게 있어요. 인간의 유약함 같은. 아주 리드미컬한 신체 움직임이 배경과 뒷무대 장식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감독님 영화에는 대화가 많이 없는데요, 무성영화에 대한 선호가 그런 영향인가요?

무성영화는 대화가 없다는 점보다 버리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 더 흥미로운 거예요. 대화가 적은 부분은 내가 가진 관객으로서의 경험에서 오는데요. 80년대 초에 일본 영화감독에 천착했는데-오즈, 미조구치, 구로사와, 오시마, 스즈키, 이마무라, 나루세 등 도쿄에서 최대한 살 수 있는 양의 VHS 테이프를 사들였죠. 자막없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봤지만 그 영화들의 정수는 남아있었죠. 어떻게 언어로 세세하게 담을 수 없는 부분들을, 예를 들어 여배우가 걷는 것을 눈에 담는 남자배우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일종의 충격이었죠. 니콜라 레이가 배우를 피아니스트에 비유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죠. <<왼손에는 단어를 눈에는 멜로디를>> 어떻게 눈에 사물들을 담아내는지 아름답게 비유한 말이죠. 모든 걸 말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보다 더 명확하거든요. 즉, 당신의 문에서 거짓도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거니까요.  

 

말은 감독님에게 즉각적인 지성으로 작용하는 것 같진 않아요, 여러 언어를 섞으시니까요.

낯선 말을 계속 듣는 걸 좋아해요. 언어에는 음악성이 있죠. 이야기나 인물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특정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Dead Man 에서 원주민언어를 번역하지 않은 이유이죠. 조니 뎁이 연기한 주인공에 관객이 이입해서,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같은 위치에 있어야 했어요. 의미가 왜곡되서 이해가 되는 겁니다. 이런 언어간에 차이가 재미있어요. 제 인생에서 유래한 부분은, 뉴욕에서 살 때 다른 구역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여러 나라 언어를 들을 수 있었죠, 심지어 같은 언어지만 다른 악센트로요. 푸에르토인이 말하는 스페인어는 도미니카 공화국인이 말하는 것과 분명 다르죠.

 

시를 탐독하는 것으로 알 고 있는데, 영화를 이해하는 것보다 다른 언어나 침묵을 통해서 혹은 산문보다 운문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유사성이 흥미로운데, 하지만 단지 대사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이 시정을 담고 있는가에 달려있어요. 보다 리듬에 관한거죠.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램을 보면 알거예요: 고유의 문자체를 가진 모든 단어들이 열리거나 닫힌 공간에 위치하면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특정한 의미를 발생시키죠. 운문도 결국 지면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단어로 표현한 거니까요. 행간의 빈 공간도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죠 릴케를 보면 그런 빈 여백을 시적 영향으로 활용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죠. 영화에서는 말하지 않은 것, 보여주지 않은 것을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며, 너무 이야기 중심이 되어버리죠. 이런 건 음악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 마일 데이비스가 이르길, 연주되지 않은 것 또한 연주된 것만큼 주요하다.

 

여러 장르의 영화를 하기도 하지만 음악가 이시기도 하잖아요. 뮤지컬 코메디를 만들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니요, 전혀요: 코메디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아요.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브로드웨이 연극의 노래만 제외하고는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말하는 유러피안 아트 송을 듣기가 힘들어요. 영화도 마찬가지구요: 코메디 뮤지컬만 못보겠어요. 물론, 빈센트 미넬리 영화의 고전적 시퀀스는 좋아하긴 하는데, 혹은 버스비 버클리 같은 위대한 감독의 영화는 제외하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접 코메디 뮤지컬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이런 질문이 재미있긴 한데, 최근에 루비히 의 영화를 다시봤거든요. 그가 음악을 사용한 방법이 이해가 안갔는데, 공간을 너무 광활하게 넓히면서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더군요. 지루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나는 감독을 좋아합니다. 오해하진 마세요.

 

일반적으로 코메디 뮤지컬에서 모든 것은 <<가득 찬>>, 혹은 강렬합니다. 이런 게 감독님이 추구하는 부재의 의미와 거리가 있네요…감독님 영화 속 인물들은 그들 자체가 특별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어요. 액션보다 부유하는 순간 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까?

맞아요. Night on Earth 에서 좀 더 밀어붙였죠; 인물들이 택시에 타고 있지만, 어디 갈 지도 모르고, 동기도 희미하죠. 모든 대부분의 경우, 인물들이 택시안에 타면 컷을 하지만, 혹은 나가는 순간 직후에 컷을 하거나요. 택시 여정으로만 이뤄진 영화이기 때문에 이 두 사건의 사이만을 유지하도록 한거죠. 보통은 버리는 부분만을 가져가기로 한거죠. 산문보다 운문적인 무언가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Paterson을 찍으실 때, 시를 쓰는 버스운전기사만 보여 주었잖아요…감독 님 영화에는 운문에서 주요한 다른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반복이죠. The Dead Don’t die 에서도 반복되면서 유머가 발생하지않나요.

네, 저는 반복을 좋아해요. 그런 변주가 재미있죠. 모든 표현의 형태는 무한대로 변주할 수 있어요. 바흐를 좋아하는데, 그 또한 멜로디의 변주를 주요 테마로 삼았죠. 다시, 다시, 전체 구조를 이룰 때 까지. 워홀 또한 그런 면에서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매개자, 혹은 <<죽은 시간>>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자크 리베트가 연상되면서 감독님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현장의 연기가 영화의 하나의 구조가 되도록 하는 자크 리베트 감독의 연출방식으로부터 아주 큰 영향을 받았어요.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를 만드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되어가는 데로 한다는 거죠…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내게 끼쳤는지 설명하기는 힘들어요. 분명한 것은, 그의 영화를 매번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Noli me tangere 는 아주 긴 러닝타임의 영화인데, 반복해서 보는 동안 매 시퀀스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본질적으로 고다르 영화는 소화하기에 단순해죠. 그 증거는, 그의 영화가 수많은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고, 가시적이기 때문이죠. 리베트의 영화는 보다 신비스럽고,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죠.아주 비밀스러운. Noroît 에서 예를 들면 영화 음악이 들리는 와중에 사람들이 바깥을 걸어다니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들이 이동하다가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 앞을 지나치게 되죠. 이러한 연출 방식은 당시에 리베트 감독만 사용한 것이었어요. 우아하면서 압도적이었죠. 어떤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채 고유의 리듬으로, 공간을 나누는 그의 방식이 내게는 너무 특별합니다.

 

장 으슈타슈는요?

저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감독이죠. 어떤 영화는 난해하긴 하지만 필모그래피가 엄청나죠. 장 자크 슐과 늘 상기하는 부분이죠. 

 

어떻게 슐을 만나셨나요? 

파스칼 오기에가 내게 읽으라고 권해 준 소설인 Rose Poussière 를 통해서요. 그녀가 내게 꼭 이 작가를 만나야 하고, 또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죠. 파리에서 그를 볼 때마다 그는 창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바에 가서 샴페인을 홀짝 거리곤 했죠. 지는 해를 보면서요. 그를 아주 좋아해요. 벌써 일년을 못보았는데, 너무 기네요.

 

파스칼 오기에와 아주 가까우셨는데, 그 또한 미스테리하거든요…

파스칼은 굉장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예요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야생성이 있고, 지성과 원시성이 공존하죠. 하루는 나를 어느 바에 데려갔는데, 파리 어딘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거기 손님들은 부랑자밖에 없었어요. 그녀는 내게 그들이 잔을 테이블에 내리치거나 큰 소리내는 광경들을 보여주려고 한거죠. 그녀는 평판이 나쁜 장소들을 다니곤 했죠. 그들만의 규칙과 법이 있는 그런 곳이요. 그런 장소를 거침없이 파고드는 그녀의 무모하면서도 심약한 부분을 보는 게 너무 매혹적이었죠.

 

리베트, 로메르, 고다르를 만난 적이 있나요?

로메르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리베트는 두번 만났죠. 고다르는 한번, 이탈리에서 만났는데, 그와 말을 해 볼 수 있는게 말할 수 없이 기뻤죠. 아이스크림 가게 옆에 있었는데 나는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죠.  <<이 아이스크림 먹어봤어요?>> 내가 그렇다고 이야기하니까 <<파리에 생 루이즈에 있는 베르틸롱에서도 먹어봤나요?>>그래서 내가 또 그렇다고 하니까 <<어떤 게 더 낫나요?>>나는 솔직히 프랑스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죠. 그 역시 그렇다고 하면서, 만나서 기뻤다고 하면서 떠났어요. 나는 그와 아이스크림 취향이 같다는 점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죠.웃음.

 

Down by Law 에서 <<I Scream/Ice cream>>은 일종의 암시가 아닌가요 Cahiers 7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요, 평단과의 관계는 어떠십니까?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아마 고다르가 한 말일 겁니다.<<비평가는 군인과 같다. 자신이 속한 체제에 총구를 겨누는>><이 말은 쥴스 르나 가 한 말이다, ndlr> 나와 평단과의 관계는 이상한 게 있는게, 내 영화에 부정적 비평은 읽고 싶지 않아요. 긍정적인 비평이 내 의견과 맞는 부분이 많죠. 평론글을 보고 배우는 게 많아요. 누군가 내 의도를 잘못 받아들이거나  다른 식으로 생각하기로 강요하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1986년도 남프랑스의 한 일간지에 실린 비평을 보고 한 몇해동안 흔들린 적이 있는데, Down by Law 에 관해서요. 내용인 즉슨, <<자무쉬는 프랑스 지성이 지지하는 영화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작품들을 보면,그는 벙어리이면서 귀머거리이다. 성장이 느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가 33세 인 것을 생각하면, 같은 나이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그에게 바라는 건 오직, 그의 필모그래피에 걸맞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 하나인데>> 어떤 지점에서 가장 혹독한 비평이 가장 웃길 수 있는 지 알수있겠어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하거든요.

 

그런 종류의 비평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습니까?

내 협력자들이 종종 그런 악평을 보여주곤 하는데, 혼란스럽긴 하죠. 내 첫 반응은 그런 글을 누가 썼는지 상상하는 겁니다 : 예를 들어, 그가 한주동안 최악의 영화를 줄지어 보고, 옆에는 두 아이가 떼를 쓰며 울고 있고, 개인 문제도 있고…그러면 이해가 가요.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내가 보다 흥미를 가지는 비평은 분석을 넘어서 어떤 실용적인 면을 제안하는 글입니다. 그들의 작업을 존중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글을 지지할 수는 없어요. 여기에는 두 종류의 평론이 있어요. 무비 리뷰어와 필름크리틱이죠. 두번째 경우에 관해, 조나단 로젠바움이나,뉴욕 타임즈의 리차드 브로디의 예상할 수 없는 접근방식은 늘 경이롭죠. 프랑스 경우에는, 필립 아주리의 글을 좋아하는데, 무슨 주제이든 그렇죠. 그들의 글은 예술작품에 가까워요. 앤드류 사리스나 매니 파베르의 글도 좋아해요…바쟁의 글도 영화에 대해 보고 사고하는 방식을 이끌어주었죠. 카이에는 항상 특유의 방향성이 있어요. 영화에 대해 비평한다기 보다 찬사를 쓴다고나 할까요. 내가 더렸을 때, 카이에 첫 호의 인상이 정확히 이랬어요.<<그들은 무엇을 나누려고 하는가? 무엇이 적확히 그들의 관심을 끌었나? 어느 지점에서 사고가 멈추었는가?>> 내가 보기에 카이에는 이러한 찬미에 영향력이 있어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말이죠. 다르게 말하면, 르몽드 지를 읽을 때 느끼는 어떤 확실한 가치와는 다른 것을 카이에를 읽을 때 느끼는 거죠. 왜냐하면 카이에는 영화의 존재 자체에 대해 혹은 다른 각도로 분석하는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면이 있거든요.

 

카이에를 특징짓는 한가지는 보다 급진적인 시기에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 하나 개별적이기보다 큰 흐름을 짚었다는 점 같은데요. 각각의 영화가 영화 전반에서 맡는 위치같은 거죠.

영화작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큼이나 맞는 말이예요. 모든 작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는 거죠. 모든 영화적 표현이란 거대한 바다의 파도같은 겁니다. 좋은 비평이란 그런 개념을 가진 글이죠. 해체하는 글이 아니라요, 그런 글은 물을 흐릴 뿐이죠.

 

오늘날 미국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이신가요?

아주 회의적인데요. 시장 시스템은 처참한 지경이죠. 나는 메인스트림의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사람, 나도 포함이되지만,에게는 더욱 그렇죠. 이런말을 너무 많이 들었죠.<<어떻게 하면 내  ‘콘텐츠’를 ‘화폐화’할 수 있을 까>> 여기에 어떤 형식의 아름다움이 있겠습니까? 내 인생에 처음으로 주문제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어요. 이브 생 로랑 하우스에 관한 이야기인데, 내게 단편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했거든요. 아트디렉터와 유명 스타일리스트 앙토니 바카렐로와 같은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이죠. 럭셔리브랜드 하우스는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예요. 물론 내가 만레이나 로버트 프랭크같이 오랜 기간동안 패션하우스와 작업 한 예술가는 아니지만, 앙토니와 같은 아티스트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아주 만족스러운 겁니다. <<비스듬한 전략>>이란 구상인데 두편의 단편이 될 겁니다. 앙토니가 어떤 배우가 연기할 지, 어떤 의상을 입을 지 결정할 겁니다>>>내겐 새로운 시도예요. 내가 그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겁니다. 미국에서는 모든게 마케팅이예요. 언어 자체도 마케팅이죠.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패션계와 영화가 협업하는 것도,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는 거죠. 현재는 줄어든 예산으로 압박감을 느끼면서 일을 하지 않는 데게 감사해야 해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시기죠. 영화가 일정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 플래닝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것은 아니죠.

 

감독님은 찾으셨나요?

내 마지막 작품인, The Dead Don’t Die 에서 플래닝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연출하는 거는 극도로 힘들어요. 스튜디오로 돈다발을 들고오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바꾸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불편한 일이죠. 나는 마케팅에 의해 정해진 룰들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게 너무나 힘들어요. 시장은 있지만, 나는 거기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시장이 내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거를 바라지 않아요. 오랫동안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염려하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예술적 자유권한이 없는 영화를 만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운이 좋았죠. 오늘날은 모든게 바뀌었죠. 혼란스러워요.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자문합니다…키아로스타미의 마지막 작품인, 24frame을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 중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왜냐하면 너무 <<계산되어있기에>>,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뭔가가 남아있죠. 거기엔 서사로부터 자유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항정신 치료를 받는 경험과 비슷해요. 만약 내가 추구하는 영화나 존경하는 작가들은 그런 공통분모가 있거든요. 상업적 서사영화에 비해서요. 

 

입셍 로랑과 협업하는 작품에 대해 더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12월에 촬영을 마친 두 단편인데, 첫번째는 줄리안 무어, 클로에 세비니, 샤를로트 갱스부르, 인디아 무어, 레오 라일리와 찍은 French Water 가 있고, 두번째로는 Charlotte Says란 제목이고 샤를로트 갱스부르, 레오 라일리하고만 찍은 작품이죠.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예요. 아주 미니멀하고, 조금 추상적이죠. 인물들은 수아레 끝에 큰 공간에서 움직이는데…이 두 영화의 구상은 특정 공간에 고유의 의상을 입은 각각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있어요. 진정 재미있게 진행한 작업이었죠.

 

지금은 준비하는 작품이 따로 없으신가요?

계속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있는데, 마케팅과 얽히지 않으려고 해요. 다같이 무언가 하나를 위해 집중한다는 느낌이 없이 작업하고 싶지 않아요. 필요한 자본이 미리 확보되지 않거나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제안을 거절할 겁니다. 영화를 구상하느라 45여년이 걸렸는데, 매 작품마다 내 예술세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죠. 영화를 하면서 희열에 가득찬 순간이 많았지만, 누군가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하도록 강요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더 이상 무언가 그런 척 할 만큼 어리지 않거든요.다른 방식으로도 나의 표현이 가능하구요. 콜라쥬 책을 이번 여름에 출간할 계획이고 음악도 계속 하구요. 내가 속한 그룹인 Sqürl 이 미국순회공연도 했구요. 다음년도에 유럽 순회공연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플랫폼에 프로젝트는 없을까요?

스티븐 소더버그가 어떠한 댓가라도 영화를 찍을 거라고 말했죠. 그 말에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왜 이러한 딜레마에 처한 걸까요? 왜 플랫폼에 상영이 되는 것으로 극장에 개봉되는 것을 맞바꾸어야 합니까?  나도 세상이 변했다는 걸 알아요. 모두가 스트리밍이나 <<콘텐츠>>로 겨룬다는 것을…내면의 한쪽에선 모두 털어버리고 숲속에 은둔하여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걸 이번년도에 하긴 했지만.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또 영화나 음악을 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필립 포벨 /마르코스 우잘. 유선인터뷰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