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kin I Live In'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1.07 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The Skin I Live In 2

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The Skin I Live In



두드러지는 골격 그리고 그 골격을 감싸고 있는 살색 보호복.

무미건조한 벽에 불쑥 튀어나온 카메라 렌즈.  
곡예를 하듯 부자연스럽고 정지된 자세.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
이 모든 것들이 영화의 초반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신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비센테는 감금되고 난 이후부터 무언가를 만든다. 무언가를 성형하며, 무언가를 벽에 쓰며, 무언가를 배출해낸다. 자신의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방어기제이자, 고통을 이겨내는 수단인 것이다.
 








이 영화에는 고전적 명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로버트 박사( 안토니오 반데라스 )의 호화스러운 집안 곳곳에 고전주의 양식이든, 표현주의 양식이든 신체를 모티브로 삼는 작품들이 포진해있다. 그리고 그가 관찰하는 카메라에도 그림이 있다. 비센테가 누워있는 포즈는 고전주의 양식의 명화 속 나부와 유사하다. 길게 늘어뜨린 채 나른하게 누워있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실, 시선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편안해보이는 자세일 수 있으나, 일면 온몸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것이다.


하녀 마릴리아의 아들, 아니 짐승이 찾아오자 아슬아슬하게 평행을 유지해오던 집안에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그녀의 아들, 아니 짐승은 변장옷을 입고있다. 시나리오상으로 카니발에 맞춘 것이지만, 극중에서 그의 난폭하고 본능적인 몸부림을 의상에서부터 미리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비센테는 납치, 감금되기 전부터 이미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비록 디스플레이에 관해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대하는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스페인의 거리. 고풍스러운 석재건물의 청회색과 백열등의 노란 색이 어우러져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를 만든다.



비센테의 과거와 현재. 그것은 다시 건널 수 없는 과거와 현재.












미술 애호가라면 눈에 띄었을 이름. 루이스 부르주아 Louis Bourgeois
그녀는 마망 Maman(엄마)라는 제목의 거미 모양의 대형 조형물로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신체를 이용하여 자기고백적이고 성찰적인 작품을 만드는 그녀의 도록을 베라가 본다는 건 그녀가 감금상태에서 하는 행위가 예술성을 띄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에 두상을 조소하거나 그 위에 천조각을 붙이는 것은 예술가의 행동에 다름아니다. 




로버트박사의 하녀이자 어머니, 어머니이자 하녀인 마릴리아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의 전작에도 자주 나오는 배우 마리사 파레데스 Marisa Paredes 가 연기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1999년 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  All About My Mother 때였다. 광대에서 턱주변으로 이어지는 골격 구조, 다문 듯한 입모양새에서 강인함과 냉철함을 느끼면서도, 순간순간 흔들리는 눈빛에서 인간적인 나약함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었다. 내가 사는 피부 에서는 비밀을 차분히 밝히는 열쇠이자, 로버트 박사를 깊이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온다.



로버트 박사도 어찌보면 비극적 운명의 늪에 빠진 불행한 사람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끔찍한 재난들이 덮쳤고, 그는 점점 통제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 그가 분재를 사슬로 옭아매는 장면이다. 그가 추구하는 '미', 그리고 '완벽함'을 위해 외부요소들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그의 단면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 곳곳이 치밀하고 섬세하게 감독의 의도를 나타내는 알레고리를 심어놓았음에도, 결말부를 보면 오히려 긴장되고 불안한 관객의 호흡을 단박에 멈추게하는 인상이다. 스릴러의 반전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범인이었다거나 해서 충격을 받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관객의 심박수와 뇌파의 고조를 예상한 듯한 보다 심연의 반전이다. 대부분 감독은 스크린 안 영화 자체만을 생각하지만, 이번은 그 너머 관객의 머릿 속을 해부하는 듯하다.
 


La Piel Que Habito

극본. 연출 : Pedro Almodovar

주연 :
Antonio Banderas

Elena Anaya
Marisa Paredes
Blanca Suarez
Jan Cornet (비센테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