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급 살인_일급의 울림
이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이 압도적이다. 시끌벅적하고 현란하게 날고 기면서 기술로서가 아니라, 그 느릿하고 조용하면서 무겁게 흐르는 분위기로 압도한다.
영화는 알카트레즈 감옥의 전경을 비추는 걸로 시작한다. 마치 그 곳을 향하는 관광객의 시점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는 영상에 느린 클래식 선율이 흐른다. 그리고 분필로 쓴 듯 거친 글씨가 제목이나 배우들의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도 동시에 알카트레즈 감옥이 수평선이 만들어내는 평온함 속에서 아득하게 비춰진다.
여기서 케빈 베이컨은 죄수이다. 그는 탈올을 시도했다가 실패로 끝나 3여년 동안 어둠 속에 갇혀서 지내다 탈옥 계획을 밀고해서 배신했던 자를 숟가락으로 동맥을 찔러 살해한 헨리 영으로 나온다. 지하감옥에서의 그는 엄마의 뱃 속으로 다시 들어가 퇴화한 듯, 허리마저 둥글게 굽었다. 그리고 부소장의 면도날질때문에 절름거리며 걷는다. 어느 예능프로에서 장진 감독이 '태가 좋은 배우'를 이야기했는데, 케빈 베이컨이라면 그럴 평가를 충분히 받지 않을까. 그는 어리숙하고 평범했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폐인이 된 헨리 영이라는 인물을 온몸으로, 온 표정과,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이죽거리는 메마른 입술,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톤으로 표현한다. 내가 케빈 베이컨을 처음 본건 커티스 핸슨Curtis hanson 감독의 리버와일드 River Wild,1994) 에서이다. 그 영화에서 그는 사람좋은 여행자였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악인을 연기한다. 그를 보고 있으면, 그의 연기를 보면 참 단호하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거침이 없다. 무엇으로도 잡을 수 없는 속도로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내지르는 경주차같다. 그러면서 그의 각진 얼굴형이라던가, 매서운 눈매, 창백한 녹회색 눈동자가 냉철한 기운을 동시에 풍긴다. 냉기와 온기가 공존한다. 영화가 끝나면 보통 영화 속 인물들과 실제 배우의 간극에서 그 둘을 저울질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부 영화는 뒷맛이 텁텁하며 쓰린 듯하고, 일부 영화는 입맛을 아쉬운 듯 다시면서 쉽게 돌아서고, 일부는 한번씩 곱씹어보며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 이외에, 일급 살인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며, 그 다음날에도 내내 설렌다. 갑자기 버스를 기다리다가, 글씨를 쓰다가, 먼발치를 보면서 맥없이 있을 때에조차도 문득문득 설렌다. 그 배우가 배역에 녹아들어 발산하는 경이로운 빛에 함께 끼어 섞여들어가기를 애쓰는 것이다. 그런 빛을 종종 상투적으로 '신 들린 듯한' 이라고 묘사하기도 하지.
명석하고 정의로우며 측은지심이란 인간적인 도덕심마저 갖춘 변호사 제임스 스템필역의 크리스천 슬레이터보다 케빈 베이컨이 두드러지는 것은 비단 영화 속 차지하는 역활의 비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케빈 베이컨의 짝눈, 그 너머 웅크러든 눈동자를 보면 단숨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감독은 살인을 하기 바로 직전 폭주하는 헨리 영의 모습을 뒤에서 촬영한다. 정면에서 달려오는 헨리 영을 촬영했다면 그는 영웅적으로 보이거나, 살인행위 자체의 비중이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뒷모습으로 촬영하면서, 그의 행위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는 사건의 필연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감독은 관객들이 그의 광기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나의 소견임-]
보다 영화 속 장면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감옥신과 크게 법정신이다. 감옥신은 짙은 음영과 강한 대조, 그리고 축축함이 느껴지도록 바닥에 늘상 물( 혹은 분뇨)이 있다. 악독한 감옥부소장 글렌(Garry Oldman)이 그리고 법정은 밤갈색의 사무가구들, 군중의 회색 양복등이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며, 녹청색의 스탠드가 유난히 돋보인다. 크리스천 슬레이터는 그 사이를 호기롭게 다니며 유창하게 언변을 쏟아낸다(왠지 이런 캐릭터에 매력을 못느낀다). 상대편 검사로 윌리엄 H.메이시William H. Macy 가 동그란 뿔테너머 부엉이같은 눈으로 그를 마땅찮게 쳐다본다. 관중 들 속에는, 그 시대 신문 삽화가들이 바삐 손을 놀리며 법정을 묘사하는 게 보인다.
[영화 속 감옥배경 바닥은 거의 젖어있다. 그래서 더욱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짙어진다. ]
일급 살인 속에는 이러한 시대 묘사가 세부적으로 녹아있다. 흑백 뉴스나, 이런 법정 장면, 인물들의 의복이나 메이크업은 물론이고, 소품 들 하나하나가 그렇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영화적 문법마저 고전적이다. 예를 들어 스탬필 형제가 서로 그만두라 아니냐로 다툴 때, 카메라는 의로운 동생의 얼굴을 전면적으로 비춘다. 그리고 세속적인 형은 비스듬한 각도로 반쪽자리 얼굴만 비춘다. 감독이 어느편에 서있는 지 잘 드러난다. 아니,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편을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지 분명히 드러난다. 부조리하고 거대한 공권력에 맞서는 의로운 개인. 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를 영악하게 이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유려한 카메라 무빙과 너무나도 연약하여 부서지기 쉬운 인간성을 케빈 베이컨이라는 껍질로 묘사하는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제임스 스탬필의 첫 등장은 언덕길의 전차를 따라잡으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이후에 이어질 그의 숨가쁜 투쟁기를 암시하는 듯 힘이 실려있으면서도 '달리는' 행위가 주는 건강한 느낌 때문인지 동시에 이 장면을 통해,제임스 스탬필의 '바른생활 인간'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
내용은 굴곡지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그것을 말하는 카메라는 마찰력없이 부유하는 것같이 부드럽고 섬세하며, 다소 인물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점잖기까지 하다. 얼마든지 과잉될 수 있는 인물, 사건 앞에서 감독은 감정이입을 마지막 법정 장면에 이르기까지 적정선으로 제어하여 유지하며, 클라이맥스에서야 그것을 터뜨린다. 기승전결의 원칙을 엄격히 고수하는 연출은 플롯을 뒤집고 해체하는 최근의 영화들에 구분되면서, 더욱 부각된다. 마치, 영화란 이런 것이다. 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섬세하게 잘 짜여진 직물같은 느낌, 좋은 냄새가 나는 가죽으로 정성스럽게 제본한 책같은 느낌이, 이런 장면 장면마다 느껴진다. 예를 들어, 면회실 수화기를 들고 유리창 너머로 대화하다가 카메라는 뒤로 빠지며, 변호사 일행, 창살, 그리고 뒷편의 간수, 다시 창살, 그리고 다시 간수들... 그들의 불편한 표정에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상황에 서로 얽혀있는 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마치 잘 펼쳐보이는 듯하다.
엔딩은 씁쓸하다. 비록 스탬필이 승리 어쩌구저쩌구하는 내러이션을 읋어대지만 사건과 무관하게 흐르는 시간의 무심함, 상전 벽해의 공허함 등이 뒤섞여서 나는 더욱 착륙할 곳이 없는 비행기 조종사의 심정이 되고 만다.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형을 받고 알카트레즈 감옥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미소짓는 케빈 베이컨의 누런 이를 보며, 나는 우습기보다 불편한 심정이 되고만다. 더욱더 스스로를 죄스럽게 한다. 승리했다는 마음, 그리고 승리가 아닌 사실이 두 개의 것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은 땅 위에서 헨리 영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지하로 다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서, 완전한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삼킨다.
일급 살인 Muder in the first
1995년작.
감독
Marc Rocco
각본
Dan Gordon
배우
Kevin Bacon
Christian Slater
Gary Oldman
촬영
Fred Murphy
미술
Kirk M. Petruccelli
음악
Christopher Young ,Dominique Forma
1995년작.
감독
Marc Rocco
각본
Dan Gordon
배우
Kevin Bacon
Christian Slater
Gary Oldman
촬영
Fred Murphy
미술
Kirk M. Petruccelli
음악
Christopher Young ,Dominique Fo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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