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 Lacan ⓐ
lTJacque Lacan
Le Séminaire, livre XIX ...ou pire, Seuil
Jacques Lacan
Je parle aux murs, Seuil
■ 독자들은 저자의 논문, 주관적인 글, 그리고 조금 개인적인 글을 읽으며 미안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 artpress 에서 완전히 이례적인 것들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 의견을 명확히 전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 나는 항상 그의 표현방법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표현을 하였다. 유난히 특출한 사람에게 너무나 노골적으로 사용되는 수식어를 쓰지 않았다.
왜 그렇게 다르게 했는가? 비평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사실 자크 라캉의 저서를 상기시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의 사망 이후 30여년이 지났고 무언가 또 다시 말할 것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의 독특한 체험을 직접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고 모두 다른 결론을 내리곤 한다.
물론, 사람들은 항상 독서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글 자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건 종종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문서들이 작품의 구실인 것 처럼 보이는 게 독특하다. 그 내용까지 다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라캉주의》라고 불리는 이론들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창조적 언어로 말한다면 그게 의도적인게 너무도 분명하다. 그건 결국 생각을 이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닐까? 두 권의 라캉 저서인 Le Séminaire, livre XIX 와 Je parle aux murs를 다 읽고나서, 맥락에서 알랭 밀러 Alain Miller 가 왜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나는 믿을 수 없이 복잡한 텍스트의 저널리즘을 번역하면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백에 가깝게도,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이런 텍스트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곱씹어봐야 할 것들이 적을 수록, 개인적인 방법으로 지성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맞추어보는 것이다.
라캉의 용해
사람들은 자크 라캉의 사후를 기념한다. 그의 유명세가 점차 사그라든다고- 그래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Louis- Ferdinand Céline 1 같은 교양인의 경우에 추모식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 그가 사망하기 10년전에 Le Séminaire 가 출간되었었다. 여기에서 그는 작품의 현상황보다 인물과 긴밀하게 관련한 것들을 예견했다. 그리고 그의 이후에 등장한 정신분석학에 유사한 주제를 말하였다 : 《내가 소멸하면- 항상 가능한 일이지만- , 사람들은 진정한 배설물 세례를 기다릴 것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늦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확히 이런 상황과 반대이다-《배설물 세례》그것은 두운법의 취향에 따른 것으로 《라캉의 용해물》인 것- 아주 다르게 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자크-알랭 밀레 Jacques-Alain Miller 의 sa Vie de Lacan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 Élisabeth Roudinesco 의 라캉, 모든 것을 무릅쓴 Lacan, envers et contre tout 을 보면, 당시의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선 카산드라의 역을 자처하며 뚜껑을 열어보면, 실상 대형서점에 점점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 나는 슈퍼마켓이나 지방의 상업지구, 또는 프낙에 대해, 그리고 최근에 라탱 지구에 들어선 질베르 조셉 gibert joseph 상점도 함께 말하는 것이다 : 정신분석학 도서는 소위《자기개발서》에 밀려 아래칸으로 추락하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언제든지 다른 책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것은 부차적인 사회프로그램이나 대규모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이러한 비탄은 보다 강력하게 무엇인가를 증명한다- 그리고 성가스러울 정도로- 가장 심오하고 가장 기나긴 분석들을 말이다.
성스러운 결합?
이 불쾌한 권력에 대해 더 이상 말로 잘 옮길 수 없다. 여러 해에 걸쳐 지금까지 라캉은 불멸의 연구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틀림없이 《68년 이념》이라 불리우며 초라한 팜플렛에 모든 사고들을 나열할 것이다. 모두가《최후의 대공습(나는 Kierkegaard 의 표현을 빌었다)》에 대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보다 영감이 풍부한(완곡어법을 써서 표현하자면)》 철학에 의한 정신분석에 반대하는 것이다. 중앙라디오방송국에서 이례적으로 방송되어 민중선도적으로 포장되었다. 그리고 라캉에 반대하는 조이스 취향의 세력끼리 불가피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제임스 조이스,그의 《한 분량》 에 대해,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이해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정말인가? 뭐...
이런 맥락에서는 그렇다- 비슷하게《과장된》된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지지자만큼이나 폄하하는 사람들에 이어 내 차례가 되었다. 지지자들은 라캉의 작품에 천착하거나 그에 반하는 것들에 대해 진실을 찾으려한다. 그래서, 전쟁인가? 원한다면 가능하다. 아직 《지성의 본성》이라고 하는 아이러니가 필요하며, 그렇게 단어를 쓰고 있다. 이는 또한,《바닷물로도 모든 것을 씻어낼 수 없다, 사상의 훌륭한 점을 발견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흔적들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에서도 이런 구절을 읽을 수 있다 : 《누가 감히 늙은이의 몸 속에 그렇게 많은 피가 흐를 것이라 생각하겠는가?》라캉을 지지하는 것인가? 이는 정확히 자크-알랭 밀러가 그의 정신분석학을《바로 잡으려는》그의 욕망을 말한다.《심판과 부활 사이에 성립된 전통간의 관계 》를 자각하면서 사고의 지평선을 넓히려는 것이다. 마치 랭보처럼, 진실은 《신체와 영혼》에만 있다. 엘리자베스 Élisabeth Roudinesco 2 는 라캉을 옹호하였다. 그녀는 저서 모든 것에 무릅쓴 envers et contre tout 에서,《지나간 과거에 어떠한 향수나 모든 위계질서와 거리가 먼》관찰자의 시선으로 《불복종》하는 사고와 태도의 위대함을 확신하였다.
그러면 : 이것이 성스러운 결합인가? 아니다. 말할 수 없는 무언가있다. 지금 거론된 저서들은- 그리고 세부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다른 도서들- 은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반-라캉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사고 방식에, 그 차이와 대조점에, 기본 명제에 반대하는 것은 현재의 라캉이 대두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출간된 도서들 중에, 세 권이 매우 중요하다. 세 명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대상을 다룬다 : 심리학자 자크-알랭 밀레 Jacques-Alain Miller의 도서, 그리고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 Élisabeth Roudinesco , 그리고 철학자 장-클로드 밀네 Jean-Claude Milner 의 도서이다. 여기에서 의 도서인 모든 명확한 것 Clartés de tout 를 통해《확장된 라캉주의》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정신분석학의 등장과 결과에 대한 백과사전식 차원》에서, 19세기에 출간된 Séminaire 보다 더욱 명확하게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라캉에 대해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자신은 상황- 정신분석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를 받아들이지 않은 독특한 사람이긴 하지만. 필자가 본 글의 첫머리에 밝혔듯이 말이다. 한편, 자크-알랭 밀레 Jacques-Alain Miller의 라캉의 인생 Vie de Lacan - 여러개의 소책자로 구성됨. 첫 에피소드는 보다 자유롭게 접근함-의 첫 페이지는 아주 흥미롭다. 여기에서 전면적으로 신선한 방식으로 나서는 동시에 아주 심오하게 인생에 대해 성찰해보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라캉이 《바이오그래피에 나타나는 지루한 모방》이라고 말한 것에서 벗어나 신성이나 페이지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밀러는 Lhomond 의 De viris illustribus의, Plutarque의 평행적 삶Vies parallèles의, 그리고 Boswell 의 Life of Johnson 기호에 따라 말하고 있다. 이 기호들 중에 하나는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 Élisabeth Roudinesco의 혐오하는 대상이었다. 그녀의 저서에서 4-5번은 언급되었던 성도착, 호분증, 그리고 시간증 등《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한 고백적인 것 같은》인상을 준다. 이 소설가는 이 모든 역활을- 정신분석학자, 철학자, 교수- 하면서 정말 자신을 치료하고 싶은 것인가?
Jacque Lacan ⓑ 에 계속...
기사
불한번역 : PLONGEUSE (zamsoobu)
- Louis-Ferdinand Céline was the pen name of Louis-Ferdinand Destouches (27 May 1894 – 1 July 1961).He was a French writer and physician. The name Céline was the first name of his grandmother. He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riters of the twentieth century, developing a new style of writing that modernized both French and world literature. [본문으로]
- Élisabeth Roudinesco (Romanian: Rudinescu) (born 10 September 1944 in Paris) is a French academic historian and psychoanalyst. She is an independent guest researcher at University of Paris VII – Denis Diderot. Her work has been translated into seventeen language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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