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의식하고 있는 곳을 의식하고 있다


<< 방센느 Vincenne 에서 15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중간정거장에서. >>


어쩌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의식하고 있다', 또는 '나는 나를 의식하고 있는 곳을 의식하고 있다'.

 그네들은 눈길 가는 대로 피사체들을 볼뿐, 나를 굳이 보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딜가나 '이방인'을 보듯 나를 보는 시선이 불편한다. 그래서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한다.

 나는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한국에서도 이랬는가 생각해보면,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서울에서는 나를 보는 호기심어리게 바라보는 시선은 없었다. 나는 익명이었다. 아니면 그보다, 서울에서는 어쩌면 그런 느낌을 가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서울 지하철 안에서 흘끔거리며 외국인을 보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지친 기색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선으로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애써 태연하게 있던 그 외국인말이다.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파리의 카페에서 일행끼리 야외에 앉을 때도 마주보고 앉지 않고, 거리를 향해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행인과 시선의 밀당을 즐기는 이들과는 달리, 나는 이런 시선들이 즐겁지가 않다. 그건 '나 잘난 맛에 살아' 라는 파리지앵들 한테나 어울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