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오롯한 나의 시간.




이제 겨울에 접어들면서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시도때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한국은 코가 시큰하도록 추울 것이다. 여기 파리는 서울처럼 청명하고 짜릿한 추위가 아닌, 으슬으슬 하게 춥다. 습도가 높고 바람이 많은 탓이다. 비가 와도 늦가을의 그것처럼 '추적 추적' 내린다.

갑자기 '살인의 추억'에서 흘러나오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떠오른다. 그 노래의 음울한 분위기가 찰떡처럼 이곳은 어울린다.


하지만 나는 몸도 마음도 젖은 걸레처럼 처지지 않기 위해, 자꾸 차가워지려는 피를 데우기 위해 매일 아침 뛰고 있다. 어제 아침 7시 30분. 헤드폰을 끼고, 스마트폰용 장갑에, 목도리로 무장을 하고 집을 나왔다. 아직 어스름이 진하게 가라앉은 숲. 그 한가운 데를 나는 가볍게 뛴다. 하나 둘, 하나 둘. 가끔 전파장애로 노래가 끊기면, 몇 초간의 무음이 참기가 힘들다. 숲길 옆으로 이차선에는 자동차들이 출근길을 재촉한다. 이 길에는 나 혼자 뛰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록, 하늘에서도 차츰차츰 빛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오롯한 나의 시간.

하루가 다르게 미묘하게 그 색을 달리하는 숲의 나뭇잎들, 서리가 엉겨붙은 풀숲, 어슬렁거리며 주인을 말없이 따르는 송아지만한 강아지들. 댓가없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의 풍경. 넘실대는 물결의 도므닐 연못.

연신 자맥질을 하며 깃털을 추스르는 연못의 백조들. 그네들이 그리는 파문, 그리고 내 몸에서 나오는 수증기들. 나의 뜨거워진 피가 내뿜는 그것들.


 나는 점점 홀릭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