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란 무엇인가?-(2)

세계화? 국제화 ?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20여년 동안, 현대예술계는 이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6인의 예술계 종사자들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이 큰 바닷뱀을 놓고 진지한 답변들을 싣는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음. artpress.com )

【1】당신에게 예술계에서《세계화》란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문명의 귀결인가? 상업적 수요인가?) 어떤 지역적 한계가 있을 수 있을까?
【2】세계화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오는가, 아니면 부정적 효과를 불러오는가?
【3】세계화로 인해 당신이 작업하는 방식이 달라졌는가, 어떤 영감을 불러오는가?
【4】세계화로 인해 독특한 작가들이나 작품들이 나타나는가 아니면 국가별 문화를 모사하는 것인가?

장-위베르 마텡 Jean-Hubert Martin
전시기획자
(MAGICIENS DE LA TERRE, PARIS , 1989 ;
PARTAGE D'EXOTISMES, LYON 2000 )

【1】《세계화》란 단어는 내게 《국제화》와 잠재적으로 다르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면 영국적이란 건 뭘까? 세계화는 이미 5세기 전부터 서양에서 있었던 현상이며, 포르투칼이 베넹 공화국과 상업적 교류를 시작한 때부터 우리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가 되서야 항공료의 인하와 다양한 이동수단의 증가로 세계화가 급격히 가속화되었고 여기에 전파망의 확산도 한 몫하였다. 국제화의 지리적 한계는 달에 착륙한 인간처럼 끝이 없다. 그리고 그런 여파가 예술계에도 미칠 것이다.


【2】국제화는 인간 관계의 증대와 확장현상이다. 이로 인해 역효과보다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다. 서양의 자본주의의 힘을 빌어 문화와 인류의 다양함을 탐험하는 것은 파괴적일 수 있다 : 생산품의 규격화와 건축물들의 단일화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항세력이 이를 저지하면서 충족감을 만족시킬 것이다. 세계화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보다 물질적 재난에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이다(기아 등등). 문화는 그 주변환경과 요구에 순응하고 점점 발전시킨 산물이기 때문에 흑백논리로 볼 수 없다. 오스트리아 원주민의 회화는 그들이 투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 문화의 고유성, 그리고 다양성의 인정, 상호간의 존중은 오늘날 세계화의 주요한 잇점이다. 또한 여기에는 외부로부터의 강요가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는 전제가 있다.
 
【3】세계화는 내가 현대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 (동시대를 살고 있는)으로써 예술적 표현의 전체적인 합을 보도록 한다. 그래서 나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주재로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예술사와 인류문화적 방법으로 작품을 풀어내는 작가들에 관심이 있다. 그러기 위해 역설적으로 《현대예술》의 바깥에서 작가들을 찾아야 한다. 현대예술계는 문화-산업적인 순환주기를 가진 미술관들이나 갤러리들에서 서양에 복속되는 작품들이 전시되기 때문이다. 2001년 뒤셀도르프의 Autels 전시 이후부터, 줄곧 이런 의문을 가졌다 : 왜 식민주의나 모더니티때문에 종교적 예술표현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4】세계화로 인해 수요가 증가한 덕분에 국립학교가 설립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열기는 아주 일시적이다. 아방가르드와 예술운동의 이어, 이런 지역학교로 옮겨간 것 뿐이다. 지리적 방법은 역사적 방법으로 대체된다 . 하지만 우린 두 가지를 잊고 있다 : 이 또한 일시적일 수 있다는 것(러시아 예술이 국제적 명성을 얻으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지역 경제에 따라 달려있다(아프리카 예술이 호기심에 찬 대중을 끌어들인다하더라도, 시장에서의 위치는 여전히 불안하다). ■

앙리 메릭 휴즈 Henry Meyric Hughes
전 영국 (예술)의회장. 마니페스타 협회장
 Ancien Directeur du British counsils (art) et président de manifesta 

【1】《세계화》는 새로울게 하나도 없다. 이런 예가 있다 : 1940년부터, 예술가이자 저자인 퍼시 루이스
[각주:1]가 디트로이트 대중 앞에서 열정적으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동지인 마샬 맥루한[각주:2]에게도 했었다 ) : 《폐쇄적 체제의 시간과 파벌화된 의식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텔레비전이 어느 곳에서나 장소의 제약이 없이 우리의 신체를 정의 할 것이며 우리의 존재(우리의 집, 벽채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스크린처럼 )를 입증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항공 교통수단의 막대한 발전으로 거리감과 이국풍의 생각들은 파괴될 것이다 ; 이미 윤곽이 잡힌 문화적 표준화는 계속될 것이다. 모든 것-우리의 토대를 규정짓는 낡은 범주들과 닫힌 공간은- 이렇게 될 것이다 : [...]국수주의적 문화, 전체주의[...],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

【2】세계화는 서양의 모더니티와 연결되어 있지만, 제어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뤼미에르 형제와 그 외 발명가들이  사회를 진보시키기 이전의 그 기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1989년, 국가나 지역, 개인과 집단같은 개념들이 모호해지면서 견고했던 구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국경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보다 쉽게 이동할 수는 있다. 우리에게 멀리있는 곳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쉽지 않다. 세계화는 단순히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더이상 소용이 없다. 우리는 불안정한 시간, 그렇지만 기회의 시간에 살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위기감은 새로운 가능성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상황때문에 우리는 더욱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경직된 구조의 기관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3】세계화는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예술가, 전시기획자, 그리고 시장의 중간매개자(비평가, 상인, 수집가들)-그리고 관객에게도 그렇다. 다양한 범주는 더욱 나뉘고, 한계는 흐릿해졌다. 중심은 파편으로 조각나서 흩어졌다. 그리고《부적절한》(즉,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나타나고. 긴장과 교류가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작업하는 방식은 정보의 홍수에 의미를 가진 것을 생산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창조적 행동의 주체의 마음으로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넣자는 거다.

【4】흥미로운 점은, 지난해 비엔날레 베니스에서 《단념》을 수용하고 구조들을 쇄신하는 것 이상이었지만, 도큐멘타에서는 그보다 더욱 《통제된》느낌을 받았다. 결과는 나빴고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결국 시대 정신에 맞긴 했지만.  이번 년도, 베니스에서는 전시장의 다양함으로, 88개의 국제 전시와 47개의《동시적》전시가 이뤄졌다. 그리고 동시에 《후원을 받아》도시 전역에 비공식적인 행사가 일어났다. 완벽해야 한다는 염려, 질서, 이성들이 잉여효과에 의해 그 반대편으로 바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비엔날레의 중심 주변에서 이러한 독립적인 시도들이 펼쳐졌다. 그 자체로 멈추지 않는 확장현상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파편화되고 조각난 세상에서, 복합적인 정체성은 우리의 화두인 것이다. ■
                                                                    - 영어번역 미쉘 판크레아Michel Pencr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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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55-64 쪽, ARTPRESS 379.
번역 : PLONGEUR (zamsoobu )


  1. [Wyndham Percy Lewis, 1882.11.18~1957.3.7] 요약 영국의 화가이자 문필가. 20세기 초 미래주의와 입체주의를 종합한 보티시즘(Vorticism 소용돌이파)의 창시자이다. 현대 기계문명을 반영한 차가운 색채와 기하학적인 구도의 추상미술 및 풍자소설, 문예비평 등을 남겼다[출처] 윈덤 퍼시 루이스 [Wyndham Percy Lewis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2. 1911년 7월 21일 ~ 1980년 12월 31일)은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이다1964년 《미디어의 이해》라는 저서를 통해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견해를 밝혀 현대 미디어 이론에서 사용하는 ‘미디어’라는 단어와 가장 근접한 개념을 제시하였으며, 1967년에는 미디어가 인간의 촉각을 자극할 것이라는 견해를 담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출간하였다.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유명한 표현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미디어의 발전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연구하여 근대의 인쇄 혁명과 TV로 대표되는 전자미디어가 서구문명에 끼칠 영향을 예견하여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의 업적은 특히 토론토 학파(Toronto School of communication theory)에 오늘날까지 영향을 많이 주었다.[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