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머니 해도 가재는 게편

 

 

식당에서 한달 전 새로 들어온 H은 아직까지 사장과 호흡이 맞지 않는다. 사장은 사장대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해서 답답하고, H은 그대로 자꾸 반복되는 잔소리에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며 한계를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이 두 명이 모두 내게 하소연을 한다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누구 편도 아니다, 누구편이 되기에 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

저번주 토요일 예약도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날, H는 하필이면 단골 손님의 주문 중 새우튀김 하나를 빠뜨려서, 기다리다 못한 손님은 전식만 먹고 본식이 나가기 전에 문을 나가버렸다. 그 일때문에 사장과 H는 니가 주문을 받았네, 내가 주문을 받았네 하면서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H는 '주문 받으신 사장님이 아시겠죠' 라는 도전적인 말로 사장을 경악케 하였다. 그 말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은 사장은 사시나무 떨듯이 지금 경련 중이다.
'어떻게 감히 너가'
'어떻게 일도 못하면서, 불어도 한마디 못하고 있는 너가'
'내가 진작에 해고할 수 있는 데도, 사정을 봐주고 있는 데도'

불어를 못한다는 것. 그건 단지 '나 말 잘못해서 더 공부많이 해야되' 라는 동기부여나 다부진 각오로 단순히 끝날 수 없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 변수가 된다. 왜냐면, 그 '못하는 불어' 가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그리고 식당에 적거나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질책을 받기 때문이다. 때론 그것이 도를 지나쳐서 그렇게 까지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이 오고간다. 보통 두 명이 한 조로 일할 때, 한 명이 그의 몫을 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다른 한명은 마이너스를 안고 일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업무량 만으로도 속으로 비명을 몇번이나 지르는데. 그렇게 H는 지금 가게에서 '마이너스 일꾼'으로 입지가 굳혀져 버렸다. 나도 처음에 그로 인해 내게 부담되는 업무량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H를 향해 점점 그 도를 지나치는 사장의 잔소리에 불만이 목구멍 깊숙히 들어가버렸다. 그렇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재이며, 게편이다.
그녀가 사장에게 더 이상은 못참겠다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 '주문받으신 사장님이 아시겠죠'라는 그 삐딱선을 나는 '잘 했다,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다행이다' 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상, 그 '새우튀김 주문 누락 사건'은 H의 잘못이었고, 그것을 끝까지 사장의 실수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논리만 내세우다가 결국 '옆테이블의 손님들이 자리를 옮기면서 생긴 일'이라는 변수를 놓친 것을 알고, 자신이 실수한 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문'과 '손님'에 관하여 지독한 집념을 가지고 있는 사장의 기억력 앞에 H는 무릎 꿇은 것이다.  이제 막, 파리의 한인 식당 노동 환경에 갓 발을 들인 '민들레 아가씨'는 그 앞에서 고개가 무참히 꺾여버렸다.

결과적으로, H는 더 큰 모욕감을 떠안게 되었고, 사장은 이 사건을 다른 직원에게 도돌이표처럼 반복하여 자신이 겪은 '강도를 만난 듯 맞닥뜨린 하극상'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하고 있다. 사장은 이 20평 남짓한 식당국에 군림하고 있는 '존엄한 왕'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에게 대들 수 없었는데, 그 불문율을 깬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대파란이다.

중간에서 보자면,
H는 일단 제대로 일의 앞 뒤를 보지 않은 무신경했고 성급했다. 무작정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 않은 고집도 거기에 한 몫했다. 사장 역시 직원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무작정 자신의 원리원칙만 강요하고 있다. 일의 효율성은 뒤로 하고, 자신의 히스테릭한 소모적인 감정에 주변을 지치게 하고 있다.

기이한 식당에, 기이한 사장에, 기이한 직원이다. 나 역시 기이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