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원 끝
어학원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게 3월이니까, 벌써 9월. 6개월 동안 매일 2시간 가량의 수업을 들었다. 그동안 한번의 취직과 한번의 퇴직, 또 한번의 취직을 했다. 그리고 한번의 이사를 30일에 걸쳐서 하였다.
학원은 파리의 서남쪽인 15구에 있고 늘 수업시간은 같으므로, 일하는 장소에 따라 이리저리 첫눈이 내린 밭을 뛰어다니는 개처럼 정신없이 오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200여일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파리 8대학교에 학사로 편입하여 다니게 되어 어학원에 등록한 날보다 앞서 그만 두어야한다고 미리 말해야 하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일주일 전에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수줍게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말을 꺼내고 나서부터 급격히 서운함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나 혼자만의 감정들이 밀려왔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들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에 이야기 하기를 계속 미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전혀 '정 한줌' 들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니면 '관성' 때문일까. 식당은 기본적으로 업무 종료시간을 15시로 정해놓지만, 손님이 늦게 가거나 일이 밀리면 그보다 훌쩍 넘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파리 남동쪽에서 파리 남서쪽인 학원으로 아무리 서둘러 와도 15시 30분에 시작하는 수업에 맞추지 못해, 매일 지각을 하면서도, 그래서 교실문을 열며 애써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를 연발을 하면서도, 또는 18시에 시작하는 식당영업 업무 시작시간에 맞추어 가기 위해 수업종료 시간인 17시 30분보다 먼저 나오며 또 '죄송합니다'를 조심스레 내뱉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어지간히 열심이었나보다. 등 뒤로 선생님의 '힘내' 란 소리가 전해지면, 괜스레 서글퍼지곤 했다. 죽어라 등골빠지게 일한 건 나인데,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만 하는, 수업을 방해하는 것 같은 민망함에 늘 고개를 숙인다는 사실이 더욱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렇게 일하고 수업듣고, 다시 수업듣고 일하고 하는 상황이 끝나므로, (장소만 옮겨질 뿐 일과 공부를 같이해야 하는 건 같지만) 마음은 시원하고 후련해야 하는 데, 왜 이렇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선생님 자비에는 또 왜이리 재미있는 것인가. 오늘 따라 그의 애드립은 한계를 모르고 인기 프로를 전담하는 개그맨의 지경에까지 이른다. 금요일이라서 기분이 좋아서 아마 더욱 날개를 단 듯하다. 어학원에 다니는 6개월간 일-집-학교-일 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남자구경이라곤 얼마 못한 탓인가. 어느 정도 고등교육을 받은 성인 프랑스 남성을 몇 명 못 본 때문일까, 그에게 얼마간의 애정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가 맘만 먹고 입을 벌리면 몇 초마다 웃게 하는, 그냥 웃게 하는 것도 아니라 자지러지게 하는 입담은 정말 반할 만하다. 물론, 내가 사람을 평가할 때 '유머'코드에 유난히 후한 점수를 주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는 왠만한 마임연기자 못지 않은 액션과 짐 캐리도 긴장시킬 표정연기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그런 개그가 인텔코어 하드 데이터베이스같은 정확하고 세밀한 기억력과 상대의 표정이나 행동을 그대로 희화하 하여 따라할 만큼 예리한 관찰력을 밑바탕으로 한 것이란 점이다.
이렇게까지 써보니, 학원을 그만두어서 서운한 이유 중의 대부분이 이 자비에 때문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 같은 마음에 칼날을 대기로 하였다.
나름의 '이별 의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두 선생님께, '이별 선물'을 주기로 한 것이다. 만들어놓은 '미니북' 과 '열쇠고리' 와 '수제 명함'이 그것이다. 무언가 여기에, 손글씨로 편지를 쓸까 생각했지만, 얼른 접었다. 내가 허락한 '살가움'은 여기까지만. 그 이상은 오지랖이거나, 넘쳐서 부담스러운 감성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의 '수제품'에는 선뜻 와닿지 않는 여린 감성이 잔뜩 묻어있기 때문에, 아마 받는 사람은 그 이상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거다.
그래서 그렇게 나는 이별을 하려 노력을 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싱숭한 건 마찬가지이다.
수업 시간이 분단위로 흘러가던 금요일이 그렇게 끝나고, 토요일도 낮에는 식당일, 저녁에는 호텔일을 하며 정신없이 지나갔다. 토요일 아침나절에는 거의 3주만에 비가 왔다. 잠깐 날씨에 맞추어 기분이 나빠질 새도 없이 금새 하늘이 개어 햇살이 쨍하다.
일요일 아침나절 잠깐 빗방울이 떨어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이 난리다. 일을 하러 가기 전에, bercy 에 있는 Cinémathèque 에서 영화박물관을 갔었다.
그리고 거기에 영화 초창기, 시네마토스코프를 보았다.
곱슬머리 귀티나는 어린아이가 굴렁쇠를 들고있으면, 털이 윤기나게 찰랑거리는 강아지가 폴짝거리며 재주를 넘는 모습이 반복되며 보여지는 그림이었다. 갑자기 그 순간, 나는 다시 뜻하지 않게 낯설은 여린 감성을 느꼈다. 무심하게 턱 하니 놓여있는 무쇠덩어리 위에, 후 하고 불면 휘리릭 날아가버릴 것 같은 솜털처럼 가볍게 놓인 그 그림이...너무나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저주를 풀지 못하는 야수와 그 야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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