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낮은 목소리 ; 터치 (Touch ) & 청포도사탕

 청포도 사탕은  세 명의 여인들이 여고시절 겪었던 기억 하나에 관련한 이야기이다. 그 기억은 영화 제목만만큼이나 달콤하거나 풋풋하지 않다. 나는 이 영화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나의 여고시절이 떠올랐다. 2명의 단짝친구, 그리고 나중에 친하게 된 또 한명의 친구. 그래서 그런 우정의 구도가 익숙했다. 여학생들의 질투심이란 단순히 보아넘기기에는 꽤 잔인한 면이 있다. 맹목적이며, 인정사정없다. 자신이 받은 상처가 이 세상에서 제일 거대하며 어떠한 그림자보다 짙다. 그래서 훗날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학창시절이었다라고 미사여구를 붙여서 진실을 가리지 않고서는 못 견딜 만큼 못난 구석이 너무 많다. 

 영화를 보면서 이래저래 과거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아니 의식적으로는 내가 끊었을 그 인연들을 추억해보았자 무상할 일이겠다. 여담이지만, 현재 KBS에서 방영되는 일일드라마 '닥치고 패밀리'에서 얄밉지만 덜렁거리고 순수한 구석이 있어 밉지않은 얌체 캐릭터 '지윤' 의 박지윤이 연기한 은소라 캐릭터를 보면서, 목소리톤만으로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어쩄든  영화 후반부에 사슴 한 마리가 나온다. 마치 망자의 환영인 듯.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예고없이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한다.


영화 터치 는 한 부부가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 사회의 어두운 진실과 얽혀있는 불행들 에 무너지거나 다시 일어나거나 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남편 김코치가 겪는 불운한 사건이나 아내 (김지영)이 겪는 비극이 일상적이진 않다. 그래서 나는 공감을 하고 주인공에 이입을 하여 그들의 편에 서기보다 더 관조적으로 보게 된다. 흥미로운 건 주인공들이 하는 일이다. 아내는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을 무고자로 위장하여 보호시설에 넘기며 그 댓가로 돈을 받는다. 그리고 남편은 성에 차지 않지만 전 사격선수로 알콜중독을 겪으며 명성은 물론 실력까지 잃었다. 그리고 성에 차지는 않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학교 코치 자리를 얻기 위해 애쓴다. 

 두명 모두 사회적인 약자이며, 자신의 성을 댓가로 요구하는  포식자들 앞에서 무력하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똑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감지하고 있는 엄연한 부조리들이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사건이 비일상적임에도 몰입을 하게 할 만큼 굉장히 강도있게 펼쳐지며 보는 이를 감정의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감독은 인물의 갈등의 시작은 사회의 부조리였을 지 모르나 그 갈등이 연장되고 자아를 무너뜨리게까지 하는 동인들은 그 자신들에게서 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 주인공들은 치명적인 헛점을  드러내며 동정심이나 연민을 어느정도 차단한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마는 지경에 이르며, 아내는 자신의 처지에 직면하기 보다 '불쌍한 이웃'들에 강박적으로 집착적인 자선을 베푼다.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몹쓸 짓을 한 녀석의 어머니에까지... 


어쩄든 영화에서도 사슴이 나온다. 우연히 두 편의 영화를 하루에 보면서 나는 이 우연에 적잖이 놀랐다. 마치 영화가 리뷰에 쓰일 글감을 던져주는 것 같이. 

 


'터치' 에 나오는 사슴은 '청포도 사탕'의 그것보다 암울하다. 명백하다. 전자는 죽었지만 살아있으며 후자는 죽은 상황에서 한 번 더 그 처참함을 확인한다.  


김코치와 사슴은 사건의 흐름이 전환될 때마다 부딪힌다. 처음에는 행운의 전령처럼 그가 다시 양지로 돌아오는 순간이었고, 나중에는 저승사자의 무거운 굴레 처럼 그를 다시 어두운 심연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낙엽과 흙이 뒤섞인 산길에 놓인 동물의 사체는 슬플 수 있겠지만 혐오스럽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회색 콘크리트길 위에 놓인 동물의 사체는 차마 봐 줄 수 없는 광경이다.  특히 자동차의 뒷시트에 놓인 동물의 사체는 오죽할까. 


하룻동안 두편의 이 낮으면서 음울한 어조로 이야기를 듣고나니 긴 터널을 통과한 듯하다. 

오늘은 겨울비가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렸다.

 

2012. 12. 03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2012)

감독 : 김희정

극본 : 김희정

제작 : 조창호

제작사 : 인벤트스톤

배우 : 박진희, 박지윤, 김정난 외

 

터치 (2012)

감독 : 민병훈

극본 : 민병훈, 이시호, 정길록

배우 : 김지영, 유준상,윤다경, 이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