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의 이사

 

 [ 거주자 필통 ; 재료 ; 펠트천; 집 모양의 고리장식 지퍼 

주요점 ; 불어로 séjour 는 '체류' 혹은 '거주' 를 뜻함.

나의 상황을 다시금 되뇌이면서 만들게 되었음. ]

    

 

 

 

 

5월 6일에 시작한 이사는 30일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동안 나는 매일 아침 10시 반까지 식당

 

으로 일하러 가기 전 두시간 정도 빨리 준비를 하고 나왔다. 등에는 그 날의 짐들을 우겨넣어

 

놓은 50리터 등산배낭을 지고, 다른 가방들을 두세개 어깨에 둘러메었다.

 
신세를 진 동생네가 3존인 교외 지역이라 기차를 타고 간이역 3개를 지난 후, 출구로 나와 정

 

류장까지 10여분 걸어간다. 배차시간이 15분인 집 바로 거의 앞에 까지 가는 325번 버스를 타

 

고 4정거장을 지나 내린다. 

정류장에서 내려 5분여를 뚜벅뚜벅 걸어 내가 살고 있는 건물에 도착하면 가방 깊숙이 넣어두

 

어도 늘 안심이 되지 않는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이제 거의 다 와간다는 생각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이제, 마지막 클라이막스인, 6층까지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짧고 가쁜 숨을 2층 반에서 한번, 5층 에서 한번, 그리고 마지막 6층에서 한번 길게 내쉬고 나

 

면, 오늘의 짐 옮기기도 다 끝난 셈이다. 이렇게 옮긴 짐은 10평방 미터 되는 방에 쌓아놓고,

 

서둘러 늦지 않도록 15구 한식당으로 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하루 하루가 쉽게 지나갔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누가 '이사 잘 했어'라

 

고 물으면, '아니요, 아직...'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던, 이정도야 할 수 있어 라고 처음에 먹었

 

던 맘이 나중에 과연 저걸 다 옮길 수 있을까 라고 한여름 땡볕에 김밥 쉬어버리듯이, 쉽게 마

 

음이 변해버렸던 그런 이사가 끝났다.

누군가는 50유로(한화로 약 75000원) 를 아끼려고 그 개고생을 하느냐고, 누군가는 30유로면

 

중국인들 차 빌릴 수 있다고 거들었지만, 또 누군가는 여차저차한 말도 없이 참 딱하다는 눈

 

길만 주고 말았지만, 나의 똥고집은 또 이렇게 발동하고 말았다. 어쨌든 지금은 하루에 돌멩

 

이 하나씩 주어와서 담벼락 쌓는 노인처럼, 아주 천천히 눈에 띄지 않게 짐정리를 한 결과, 제

 

법 보금자리같은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다. (이 것도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어

 

제 벼락같이, 그동안 내가 옮긴 짐의 무게만큼이나 나를 더욱 짓눌렀던 마음의 무게를 주었

 

던, 15구 한식당으로부터 '그만 나오는 게 좋겠다' 라는 통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