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loi du temps (2001)

L'Emploi du tempsRéalisé par Laurent Cantet 
Avec Aurélien RecoingKarin ViardSerge Livrozetplus 

만약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 대신 그 이전의 아무일도 없던, 스스로 평온하다고 인정해왔던 사실을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이 나온다. 이 영화는 그가 처한 상황(사직으로 인한
사회와의 단절,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에 주목하기 보다,
그저 이 남자 뱅상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아마 항상 풍족하였거나 어느 하나에 진지하게 애착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할 지 모른다. 뱅상의 공허감이 어떻게 새어나오는지를 좇아가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신'인 뱅상은 현대 조직사회에 한 일원으로 자신의 피와 살을
떼어 자본과 이윤의 제단에 바치는 여러 익명의 사람을 대표한다. 그러면서
감독은 아주 전형적이지 않도록 주인공을 다듬는다. 예를 들어 
뱅상이 옛주소록을 뒤지며 사기 전화를 할 때에도 그는 펜으로 명함사진에 낙서를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후에 소박하게 사는 친구에게 속인 후 돈을 돌려주는 모습도ㅗ 보인다. 
뱅상은 전형적인 악인도 선인도 아닌, 자기의 삶을 너무 진지하게 바라본, 그래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그를 동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가 그렇게
자신에게 관대했던 그것은 이타심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옭아맨 '가장'으로서의 '체면'.
'위치','책임'이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아들은 그렇게 매몰차게도 궁지에 몰린 자신의
아버지를 냉담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마치 타인, 아니 타인보다 더 먼 어떤 그 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왜 광기로 얼룩져가는 가에 대해서보다
그의 비참한 심리 속으로 들어가본다. 감독은 그 전작 과 마찬가지로 아주 현실적인
화법으로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도록 한다. 
지금 당신은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지운 짐때문에 미칠 지경인가요?
그리고 그 것이 '엄마 탓이라고''내 동생 탓이라고'심지어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라며,
열심히,너무나도 열심히 핑계를 쌓아두고 있지는 않나요?

사실, 감독은 이런 개인적인 자각을 넘어 거대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왠지모르게 끝을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지막 인터뷰 신.
그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면을 거세당한 채 하나의 자원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이 사회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솜씨가 탁월하다 !  심리묘사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흡인력과 공감을 가질 수 있다니!
거기에서 그는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인터뷰 프로그래밍이 내장된 
기계처럼 답한다. 그래서 그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빛은 맞은 편 인사담당관리자가 아닌
그 너머, 빈 공간을 보고 있는 듯 하다. 

거기에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과 웃음이, 그리고 위태로운 관계망이
희미하게 그의 존재를 알릴 뿐이다.

Check Point
1. 드라이브신: 뱅상의 시점/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좁은 시야의 밤길/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그의 불안한 앞날을 암시/ 호텔 앞 벨보이의 위협적인 랜턴/

2. 뱅상의 나래이션+ 알프스의 설산 ; 사업보고서를 건조하게 읊는 뱅상의 목소리에
                                                  서정적인 설산이 겹쳐짐/  복잡하게 교차하는 감정

3. 마지막 짐을 내리고 급하게 떠나는, 게다가 가불한 월급을 가지고 떠나던 
 뱅상을 바라보던 위조상인

: "내버려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