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Cha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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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씨옹 2017년 4월 7일 금요일


조용한 아침을 갈망하다


청년기에 독재정치를 경험한 남한의 영화감독, 

박찬욱은 현 세계와 조국의 현실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찰나의 기쁨을 위해 그는 조심스럽게 잔을 비운다. 먼저 코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 그리고 향을 더 고취시키기 위해 지브레이 샹베르탱 gevrey-chambertin 을 마신다. 손님 모두가 와인으로 입술을 축이기 전까지, 우리는 감독 박찬욱이 겪고있는 고통스러운 악몽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한국 영화계의 거장인, 아니 전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서라도 거목인, 그가 없었을 거라 말한다. ((대학생이던 때는 80년대죠. 독재 정권에 저항을 하는 일이 많았죠, 바로 무장한 경찰 눈 앞에서 요. 하지만 우리가 무서웠던 건 정작 그들이 아니예요, 두려운 대상은 사복으로 위장한 경찰이었는데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나서 폭행을 하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직까지 그런 폭력성이 나타나기 바로 직전의 그 정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나 조니 도 Johnnie To 의 영화 시퀀스에서는 핏빛으로 흥건하다고 하면, 박 감독의 것은 그보다 침묵과 고요를 동반한다. 숨결과 말머리를 자르는 그런 침묵. 이런

같은 침묵, 그리고 같은 공포가 한반도를 휩쓴 때가 있었다. 2014년 세월 호가 진도섬 연안에서 많은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한 사고이다. 심해로 가라앉은 피해자들 대부분은 고등학생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이후로, 무의식적으로 공포가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들처첨, 밀실에 갇히거나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죠.》 본 Beaunne 범죄영화 축제가 지난 주말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감독 박찬욱은 영화만큼이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한과의 갈등, 그리고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3월 초 부터 시작된 대규모  반대시위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 온 박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대여섯 번 시위에 참여했어요. 부인과 우리딸과 같이요. 춥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썼죠. 큰 잠바로 몸을 가렸죠. 다행히 경찰측은 이전만큼 폭력적이지 않았고, 유혈사태는 없었어요 》 초조한 마음으로, 박감독은 다른 시위자들처럼 촛불을 밝혔다. 하지만 화재의 위험을 생각해서, 어플리케이션으로 촛불 이미지를 대신 밝혔다. 박감독은 그의 소소한 발견을 기뻐하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촛불 영상을 보여준다. 그로서는,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스스럼없다. 《그런 것 때문에 내 작품이 제한되지는 않아요, 그런데, 친동생인 박찬경은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매번 Kofic Korean Film coucil 한국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을 거절당했죠. 지금에서야 그게 우연이 아니었단 걸 아는 거죠 》 박감독은 공권력이 보다 민주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걸릴 거라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국의 시민들은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압박으로부터 대항하는 시위를 멈추지 않으면서요, 전 지금 당장에라도 길거리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어요.》 


그의 다음 영화는 정치영화 일까? 그는 답을 망설인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예요,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까지는. 모두가 60년대 고다르 Godard 가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내가 만약 그였다면,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길거리로 나갔을 거예요》 그는 장 뤽 고다르 Jean-Luc Goadrd 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한국 영화계에 누벨 바그 Nouvelle Vague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게 분명하다. 한국 영화의 성난 얼굴 Enragés du cinéma oréen (2007) 의 감독이자 아시아영화 평론가인 이브 몸마외르 Yves Montmayeur 는 이렇게 말한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은 모두 한국 독재 정권 시기 이후에 부상한 어떤 새로운 세대입니다. 마치 70-80년대 베트남 전쟁 이후 의 스코세지 Martin Scorsese, 코폴라Francis Copola, 프리드킨 William Fredkin 감독처럼, 뉴 아메리카 감독들 처럼 말이죠.》 이어서, 이렇게 덧붙인다.《박학다식하고 정치성향이 짙으며, 서로 깊은 연대감을 공유하죠. 장르영화를 선호하고, 그 중에서 특히 범죄물, 급격한 경제 성장의 기적에 대한 댓가로 치른 사회의 부패와 부정에 대해 신랄하게 말할 수 있는 장르를 찍는 겁니다.》박감독의 부모는 예술 애호가였다( 부친은 건축교수였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토양은 그의 영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55만 관객을 모은 아가씨 Mademoiselle, 그리고 그 두배의 관객수를 기록했고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올드 보이Old Boy 가 그렇다.《한국은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영화가 유일한 오락거리였어요.》 박감독의 가족은 영화계에 몸담고 있다. 그의 남동생과 공동연출한, 고진감래 Bitter Sweet Seoul 이 그 예다. 박감독이 아내를 만난 것도 영화가 맺어준 인연 덕분이다. 대학교에서 철학과 3학년 말, 히치콕 Alfred Hitccock 감독의 현기증 Vertigo 상영회 이후 가진 술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청년 박 감독은 영화를 보고, 공포와 긴장감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히치콕의 화법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가진다. 그리고 그 곳에서 국수를 가져와 나누어 먹었던 젊은 여인은 지금까지 곁에 있다.《내 가장 중요한 파트너죠. 그는 내 창작에 있어 매 단계마다 영감을 줘요. 아주 확실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죠 》그녀와는 딸이 있다. 서울에서 순수미술을 배우고 있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4개이다. 한편의 헐리우드(니콜키드만을 대동한, 영화,스토커 Stocker  의 흥행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세편의 한국영화이다. 그 중에 두편은 공상과학 장르이다.《내 인생에 이렇게 흐릿한 적은 없었어요.》 박감독은 웃는다.지금 여기 본 에 와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와인, 저한테 와인은 아주 중요한 메타포예요. 전 카톨릭 신도이기때문에 이 곳에서 딸과 미사를 드렸죠. 성당에서 신부님이 예수의 피라는 이름으로 와인을 마시는 거를 보모, 뱀파이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죠.》 그는 시리즈 제작에 관해서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우린 무슨 일이 닥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예요. 물론 북한과 연관해서요. 아주 두려운 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