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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9 JamesGray_Intervieuw_cahiersDuCinéma

JamesGray_Intervieuw_cahiersDuCinéma

 

올해 가을 아마겟돈 타임 촬영을 앞두고 제임스 그레이가 프란시스포드 코폴라의 영향에 대해 본 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세계적 영화 시장, 특히 할리우드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한다.

양자

인터뷰- 제임스 그레이

감독님은 Apocalypse Now 가 감독님에게 준 영감과 Parrain et Conversation secrète 이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하곤 했는데요. 코폴라 감독의 후작도 같은 맥락으로 영향을 끼치십니까?

 TuckerRusty James 라는 영화가 있는데-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이라고 이야기해야 겠네요. 기껏해야 그의 생애동안 10여년 동안에 불과합니다.그가 의견을 피력하는 이 기간은 아주 특별합니다. 하지만 제가 예를 들어, 제가 Tucker 을 봤을때가 19세였을 때인데 이미 나만의 취향이 생긴 후 였죠. 마틴 스코세지의 경우에도 같아요. 좋아하는 영화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성난황소 Raging Bull, 코미디의 왕 La valse des paintins 이죠. 스코세지 감독이 이 후에 그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카지노 Les Affranchis Casion를 봤을 때 이미 성인이 된 후였고, 확실히 같은 반향을 가질 수 없죠. Parrain의 3 나, Cotton Club 재편집본을 아직 보진 못했지만. 이 봉쇄령 기간은 이상해요, 많은 영화를 보긴 하지만,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죠. 내가 보았던 순서대로 보여주려고 하는데, 어느날은 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를 보았죠. 아직 부까지 보지 못했어요.

 

아마도 현재의 10세 어린이가 감독님의 10세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신가요?

아니요, 질적인 면에서 다르겠죠. 내 시절의 씨네필은. 나를 포함해서요, 이전 세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하지 않았어요. 특히, 나같은 경우에 시도는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죠.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는 재능이 부족하니까. 51세에서야 알게되었지만. 다른 이유로는, 이게 아주 주요한데, 감독으로 하여금 필수적인 덕목인 건, 규칙을 깨야 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와 연결되어서 영화가 문화에서 중심축으로서의 역활을 잃게 된 겁니다.  스튜디오는 더 이상 내러티브 실험적인 미국 영화, 뉘앙스 실험적인 일본영화, 심도있는 영화미학을 추구하는 유럽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합니다. 70년대에는 아직 존재하던 영화들이었죠. 이후에 대중을 끌기 위한 스펙타클만 생산되고, 점점 작업의 완성도가 퇴색하기 시작했죠. 13세 꼬마는 코믹스에 매달리기 마련이죠. 영화가 성인 중심의, 다각도로, 영원한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은 끝난 것 같아요.

 

한편으로 또 다른 주요한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의 젊은 관객들은 과거의 젊은 관객들과는 달리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 많은 요소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감독님이 코폴라 영화를 보며  감독으로서의 꿈을 꾸던 것과는 달리, 마벨 시리즈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나도 저것처럼 할 수 있어>> 라고 말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Avengers 같은 영화에 어떤 반응이 가능할 지 예측할 수 없어요. 감정적 연결고리도 없구요. 하지만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 왜냐하면 접근불가의 영역으로 보이긴 하거든요. 진정성이라고는 없는 천하무적이죠. 가끔, 웨스턴이나 누아르 영화처럼 영웅, BD를 말하곤 하는데, 이런 논쟁 자체가 우스꽝스러운거죠; 웨스턴, 누아르, 전쟁영화는 항상 삶의 진정성에서 출발해요. 경찰관의 도덕성, 혹은 인디언을 학살하는 백인 카우보이, 인종차별주의 등등 현재에도 진행 중인 도덕적 수위를 영화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거죠.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스파이더맨 Spiderman 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어떠한 현실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어요. 합성 이미지도 같은 맥락이죠. 어떠한 것도 견고하지 않고, 지성과 맞닿아있지 않아요. 모든 게 거짓을 바탕으로 한,유일한 진실은 그게 거짓이라는 점이죠.

 

코폴라 감독이 감독님 세대를 존중하는 점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간다는 점이라고 했는데요…

저로서는 다른 비교군이 확실히 존재하지 않기에, 코폴라 감독 세대의 다른 감독을 예로 들자면, William Friedkin 같은 , 뉴 헐리우드와 70년대에 대한 로맨티시즘이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스튜디오 관리는 엉망이었지만, 덕분에 산업화 시대와 미국과 연관지어 헐리우드를 비춰볼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롭죠. 점점 상부계층에는 돈이 쌓이고, 하부계층에는 창고가 비어가는 현상이요. 반면에 중심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죠. 현재는 핸드폰으로도 영화를 찍죠. 서술 기반의 이죠. 영화, 그러니까 보다 예산이 많이 드는 영화는 아직 건재하죠. 대부Parrain HBO의 미니 시리즈가 될수도 있었어요. 파라마운트 제작이 아니라요. Apocalyse Now같은 영화는 현재의 시점에선 절대 불가한 영화가 되어버렸죠.

 

스튜디오의 단기적 안목이 문제라면,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일까요?

이제는 그들이 위치를 바꾸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Academy of Motion Picture 의 한 멤버와 이야기하다가, 내게 묻기를 ; <<오스카 시상직 시청률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 그래서 답하기를 <<별수 없지>>. 그가 충격을 받아 <<아니, 이 쇼를 더 흥미롭게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까>>하길래 제가 <<아니지, 하지만 그건 쇼가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문제야.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닌게 된거지.>> 만약 스튜디오가 영리하다면, 일년에 최소 2편의 영화, 6천에서 7천만 달러 예산의 흥행을 노린 작품이 아닌 영화를 제작할 겁니다. 이 두편의 영화 이외에, 다른 형편없는 영화도 있겠지만, 아닌 작품들은 분명 흥행을 할 것이고, 실적은 올리되, 영화는 그 문화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회계사가 하는 말이라고는 이런 거죠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필요한 돈을 벌어다 주진 않을거야>> 그결과, 영화는 별로고, 모두가 흥미를 잃어버린 거죠. 그들이 2천억 달러를 벌든, 다음날이면 잊혀질 테니까요.

 

어떤 이유로 Apocalypse Now 가 주요한 겁니까?

Beatles와 비교하자면,  그들이 Teenybopper 라고 보여진 점-개인적으로 그들의 첫 앨범이 이미 높은 완성도의 심도있는 수준이었다고 하더라도- 대신에 예술적 측면을 보면, 그들은 성공의 결실을 위험을 무릅쓰는 데에 이용했다는 겁니다. 그게 Album Blanch이죠. 프란시스 감독도 마찬가지로 대부 Parrain 의 흥행수익을 Conversation secrète 을 제작하는 데 썼죠. 이후에 이탈리아 촬영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Le Parrain 2 를 찍을 때도 모험을 한거죠. 아포칼립스 나우는 물질적 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굉장한 야심찬 작품ㅇ죠; 도덕적 추락을 겪은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거죠. 나는, 내 세대는 기피하는 이야기였죠. 내가 아는 영화계 지인이나 동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죠<<만화를 각색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않거나>>뭐, 시작할 때는 겁먹기 마련이죠. 하지만 모험을 해야해죠. 단지 모험없이 돈만 벌고싶으면 영화감독을 하면 안되죠, 월 스트리트에서 일을 찾아야죠! 아…애기하다보니까 더워지네!

 

감독님 영화에서는 그러한 부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한다는 점이 잘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그러려고 하는데, 가끔 예산 때문에 발목이 붙잡히죠. 이민자 The Immigrant을 찍을 때, 하고싶은 것을  모두 하기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이 영화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심지어 내 애착영화이기도 했죠. 히지만 돈과 시간이 문제였어요. 70년대에 스코세지 감독이 택시 드라이버를 60일 만에 찍었다는 걸 상기해야 되요. The Immigrant은 29일이 걸렸죠. 투 러버스 TWO LOVERS 는 28일에요. 단지 필요한 일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The Immigran 촬영 시에 한 신에 3테이크 이상을 할 수가 없었죠.

 

Cimino 감독에 대한 언급은 적습니다. 감독님 영화를 보면 Cimio 감독의 영화가 연상되는 반면에요. 예술적 시도를 한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Cimino 감독과 스코세지나 코폴라 감독의 경우처럼 직접적 연결성을 느낀 적이 없어요. 그들의 방식을 경외하는데, 특히 Vilmos Zsigmond 와 협력하는 방식에서요. 가장 경탄할 만한 점은, 인물들에 대한 시선입니다. 천국의 문 La Porte du paradis 는 여러 면에서 훌륭하지만, Parrain, Raging Bull, Taxi driver 이나 Conversation scrète 에서 만큼의. 감수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정치적, 역사적 영화지만, 그게 영화 속 인물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죠. 천국의 문 Voyage au bout de l’enfer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죠. De Niro가 물론 타고난 감각으로 인물을 잘 살리긴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바보같은 한데, 누군가  천국의 문 Voyage au bout de l’enfer에서처럼 한다면, 천사를 만나는 것 같을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Cimino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러한 스토리텔링이나 인물 묘사를 볼 때 감흥이 덜하죠.

 

Cimino 와 Zsigmond 를 언급하셨는데, 코폴라 감독과 작업 이후에 할리우드와 점점 먼 행보를 보인 카메라 감독아닌가요.

제가 카메라 감독과 가지는 관계는 할리우드 전통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요. 테이크와 촛점을 선택하지만, 조명에 대해 아주 신중하게, 어떻게 보이는 지에 대해 의논합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많은 부분이 카메라 감독에게 전임되어 있고, 연출자는 보다 전반적인 부분, 배우의 디렉팅같은 부분에 집중할 뿐, 카메라 위치나 방향에 대해서는 덜 신경쓰죠. 아마 그래서 lighting cameraman 이라는 별명이 붙은 겁니다; 나로서는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빛의 온도까지 명확히 지정 합니다. 코폴라 감독의 영화에는 유럽의 그것과 유사한 부드러움이 있어요. 그 덕분에 유럽 영화를 찾아 보게 된 이유이기도 하구요. Godard 와 비서사적 영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거죠.

 

어느 순간이죠?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NewYork 에 있는 Radio City Music Hall에서 Coppola 가 아벨 강스Abel Gance 의 나폴레옹 Napoléon 을 상영한 적이 있어요. 카르민 코폴라 Carmine Coppola  의 지휘 아래서요. 굉장했죠! 시버그 Syberberg의 파시팔 Parsifal 이나 Hitler, un film d’Allemagne 이나요. 아마 빔 벤더스 Wim Wenders를 알게 된건 Coppola가 제작한  Hammett 을 통해서였을 거예요. 코폴라 감독이 내게 문을 열어준 겁니다.  ApocalypseNow 와 Parrain 은 Raging Bull 같이 제게는 시작이었어요. 코폴라와 스코세지 감독이 Wajda 의 재와 다이아몬드 Cendre et Diamant에 대한 경외를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어요. 그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직접 가서 봐야만 했죠! 그래서 Visconti의 ROCO et ses frères도 알게되고, Nino Rota의 음악이나 50-60년대 이탈리아 영화음악, Le Guépard; 펠리니Fellini;라 스트라다 La Strada를 알게되었죠. 잠파노는 Raging Bull의 인물과 닮아있어요…왜냐하면 코폴라와 조지 루카스 모두 아키라 쿠로사와를 지지했거든요. 전 10살 즈음 카게무샤를 볼 수 있었는데, 그가 이전에 한 것을 모두 보고 싶었죠. 그들 모두가 영화의 세계로 이끌어 준 겁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작가는 전통을 살피며, 그 전후에 어떠했는지 봐야한다는 이야기일까요?

물론이죠. 천재란 개념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한 맥락에서 살고 있고, 그게 유행이던, 우리가 행동하던 안하던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는거죠. 천재의 개념은 백인 남성위주 사회에서 유래한 거죠. 아프리카 미술이 없었다면, 파블로 피카소가 무엇을 했을까요? 흔히 천재의 상징으로 말하는 모자르트도 어떤 특정한 타입의 작곡법에 한하여, 유럽 중심부에 콩세르바투아에서 전략적으로 키운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여자남매는 모자르트와 같이 듀오처럼 전유럽을 돌며 합동공연을 했었는데 점차 물러나게 되었죠. 그래서 그녀는 결국 가정의 삶을 살게되고, 반면 모자르트는 음악가의 길을 계속 이어갔죠. 그러니까 모자르트가 생각보다 그렇게 위대하다는 게 아니라, 물론 훌륭한 예술가이긴 하지만, 정확히 맥락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2001 l’Odyssée de l’espace에 가 걸작인 것에 토를 달진 않겠지만, Jordan Belson(미국 추상 미술 영상작가)이 거의 모든 우주여행 시퀀스 영향을 미쳤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제가 장편을 하면서, 거의 모든 공상과학 영화를 섭렵한 적이 있는데, 하루는, 독일 무성영화 Wunder der Schophung(Hanns Walter Kornblum )을 보게 되었죠. 1920년대의 지루한 영화였는데, 도중에 어떤 신, 우주선 의 회전통로에서 한 사람이 거꾸로 걷는 신이 있었죠. 정확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서 봤던 같은 신이었어요! 큐브릭 감독은 결국 다른 영화에서 차용한거죠. 가끔 아주 숨겨진 곳에서도요. 혹자는 다른 작품을 도용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죠. 중요한 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화두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겁니다.

 

코폴라는 The Yards에서 대부 2편에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아주 만족한다고, 잘 한 것 같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요. 지금도 코폴라 감독님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시나요?

아니요. 코폴라 감독을 잘 알고 좋아하지만, 항상 빚을 진 기분이예요. 그를 방해할 까 조심하면서, 짐을 주고싶지 않아요. 가끔 이메일이나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해 말한 적은 없어요. 너무 두렵거든요.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감독님에게 연락할 때 마다 늘 친절하세요. 한번은, <<감독님, 감독님 영화를 모두 베낀 것 같은데요>>라고 하니까 그가 <<아주 좋아요, 그러라고 만든 겁니다>> 감동적이었어요. 완전히 자유로워짐을 느꼈어요. Roco et ses Frères 을 보면, 그의 방법을 알 수 있어요 : 알랭 들롱이 Michael Corleone 를 연기했는데, Annie Girardot이 죽는 장면과 복싱 시합장면을 교차편집하면서, Nino Rota의 음악을 배경으로, 보여지는데 모두 어디선가 빌려온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어요. 작가로서 더욱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죠.

 

 

감독님 영화를 보면, 철학적 고찰 뿐 아니라 사회 도덕의 정의에 대한 메시지가 두드러지는데요. 하지만 보다 추상적이고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죠.

맞아요. 제가 만든 많은 영화가 관객 스스로 자신의 히스토리를 가져오도록 하고 있어요. 예술은 물론, 영화도 투자가 필요해요. 그렇지 못하면 어느정도의 완성도를 보장할 수 없어요. 예술은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적 참여가 필요하죠. 사실, 추상적 부분이 있는 것은 빈공간을 단지 채우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영화가 페스티발에 상영되는 거에 망설여지는 편이예요. 다른 작품들과 함께 상영될 때, 더 어려워져요. 특별히 용기있거나, 정치적이거나, 감정적인 메시지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고유의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예요. 서술적 측면에서 애매한 게 아니라, 추상성이 나타나도록 모호함을 유지하는 겁니다. 영화 전후로 시간이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에서는 뚜렷하고 강한 메시지를 가진 영화가 잘 되는 이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의미가 희석되기도 하죠. La dolce vita 가 걸작이 아니란 이야기가 아니라, 펠리니 감독의 라스트라다 La strada  카비리아의 밤 Les Nuits de Cabiria 나, 혹은 8과 2분의 1 Huit et demi이 더 인상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펠리니 감독은 라 돌체비타 La dolce vita 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하죠 : 상류층의 허례허식적인 문화와 내면의 공허함. 다시 아포칼립스 나우 로 돌아오자면, 미국 개봉 당시 그 모호함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있죠 : 영화 끝에 관객으로 하여금 응당 느껴야 할 기쁨을 뺏어가 버리거든요. 하지만 이 결말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풍부하게 되죠.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 영화를 보면 코폴라영화와 닮은 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유럽으로부터 온 이민세대의 유산 이랄까, <<이중의 충성심>>이랄까요…

아주 흥미롭네요, 특히 제 츨신인 러시아 전통이 내 작품에 깃들어 있다면 영광이죠. 주로 제 영화에 대한 비판이 유머가 없다거나 느리다거나 하는데, 러시아 적인 면이 강하다 인데, 고의적으로 러시아 문화적 요소를 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아마도 Z의 잃어버린 도시 The Lost of Z 에서는 그런 의도가 덜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회계급에 관한 생각에 더 치우쳤기 때문이죠. Two Lovers 과 The Immigrant 에서는 특히 나의 민족에 관한 생각을 더 많이 반영했죠. 도스토프예스키와 톨스토이의 감수성을 반영하죠. 잘난 척하는 말이 아니라, 창작자로써 하려고 하는 건 ; 작업을 할 것, 어떤 방식으로든 작업 그 자체로 말할 것 입니다.

 

코폴라 감독이 대부에서 하려던 것도 이질적 두 문화를 만나게 하려는 것 아닐까요.

정확히 그래요. 1945년과 1975년 사이 이탈리아 영화 중 좋아하는 작품은, 누벨바그-30년대 프랑스 영화를 특히, 르누아르Renoir, 카르네Carné ; Le jour se lève 등을 특히, 도 좋아하지만, 특히 그레미옹Grémillon을 좋아합니다. 오프닝, 표현성, 계급에 대한 생각, 역사에 대한 인식, 미국적이 아닌 유럽적인 시민 위주의 의식등이 그렇죠. 미국인들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별로예요. 아마 교육 체제 때문이기도 한 것 같은데, 국가에 대한 개념 자체도 거기에 한몫하죠. 윌리암 와일러 William Wyler, 에른스트 루비쉬 Ernst Lubitsch,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같은 감독이 계급에 관한 영화로 그런 인식을 일깨워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도 유럽 이민자 출신이죠. 그들은 역사의 흐름과 경제적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교육을 받았어요. 미국에서는, 존 포드 John Ford 나 하워드 혹스 Haward Hawks 이외에는, 별로 이런 인식을 가진 감독이 드물죠. 코폴라 감독이나 마틴 감독이 의식있다면, 그건 아직 이민의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이죠.  

 

 

 피가로의 결혼식 Les Noces de Figaro 를 위해, 파리에서 촬영한지 일년이 지났는데요; 코폴라 만큼이나 오페라도 어느 정도 안내자역을 했나요?

네, 그도 오페라를 했고, 나도 조언을 부탁한 적이 있죠. 비스콘티 덕분에 오페라를 알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코폴라를 알게됐죠, 그러니까, 18살이었을거예요. Le Guépard 를 봤을때가. 니노 로타 Nino Rota 의 음악보다 베르디의 마주르카가 더 두드러졌거든요.  La traviata 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죠. 이후로 Verdi 에서 Puccini 로, Puccini 에서 Wagner로,  Wagner에서  Mozart로,  Haendel에 이르기까지> 영화 Raging Bull을 보면 그런 맥락이 또 있어요.  Cavalleria rusticana 을 들으면서 알 수 있죠. 그 덕에 Mascagni 을 알게되었고. 다음에는 Francesco Cilea로 넘어갔죠…

 

코폴라 감독의 표현주의적, 고딕적, 환상적 부분, 그런 극단으로 치달아가는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름다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현실주의에 좌우되는게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두개는 분명 다르죠. 그의 영화에서 추상적 의미를 말할 때, 오페라적인 면도 말하죠. 오페라에서는, 사실적이지 않게 얼굴을 표현하죠. 하지만 감정은 진실되게요. 사실주의는 주요하지만, 현실적이지 않게 하는 거와는 달라요.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는 나의 모습은 현실적이지만, 흥미롭지 않죠. 오히려 지겹다랄까요. 나로서는 추상적, 오페라적인게 필요해요. 성난 황소는 아주 오페라적이죠, 이야기의 구축에서요. 한 남자가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에 가는 지 다 보여주지않으면서 압축적으로 보여주죠. 주제와 연관되어서요 ; 잠재정 영광에 반항하며 저항하는 자기파괴적인 반영웅이요. The Lost City of Z 에서 그런 면을 표현하려 했어요. 하지만 아직 중요한 다른 점을 말하지 않았죠…

 

무엇에 대해서인가요?

코폴라 감독과 신화의 관계에 대해서요. Joseph Campbell 이론은 이제 클리세가 되어비긴 했는데, 영웅 신화는 현재 슈퍼히어로와는 달라요. 그에 대해 말할 거리가 다분하죠. 하지만 그게 삶과 연결되어 있을 때, 의미를 가지는 건 분명해요. 아포칼립스 나우 에서 왕을 죽이는 건 내게 큰 영감을 주었어요. Campbell 이론에 따라 이 영화는 관객을 점점 영웅 신화의 구조로 끌어들이죠; 부름을 거절하는 영웅과, 스스로를 부정하다가, 결국 받아들이는 구조이죠. Redux 버전에는 여신을 만나는 신도 있어요. 

 

감독님 영화는 신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The Lost City of Z 의 결말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그렇죠. Two Lovers The Immigrant 에 신화적 생각을 넣고 싶었어요. 변신 La Métamophose 에서 곤충으로 변하지만 여기에서 변화는 상징으로 남겨두죠. 반신화 같아 보이지만, 어쨌든 신화의 하나예요. 이민자 에서는 생존자의 아이디어였는데, 신화와 종교의 연결을 생각했죠. Sixties 년대의 유산이기도 하고 groovy 히피의 전통이기도 하죠. 현재까지 영향을 많이 미치구요. 

 

종교, 의식, 인물의 영적인 면에 대해서 코폴라 감독만큼의 관심이 있으신 것 같군요.

물론이죠.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영화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 소재이기도 하죠. 세상이 점점 세속적이 되어가고 있지만 영화는 서구 예술사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어요! 미국영화는 이런 점을 일부러 멀리하지만, 특히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종교적 이슈를 다루는게 드물죠. 대중과 등을 돌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좋은 게 아니예요. 유대인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정작 종교적 이슈를 다루는 데 아주 조심스러운거죠. Leo McCarey 를 제외하고는요. 상상력이 필요해요. 현재는 과도한 후기구조주의와 컬쳐스터디 때문에 상상력이 제 힘을 발휘하지못하고 있어요. 모두 창작물의 상위에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키는 것들이죠. 바로 그 때문에 예술가들의 위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당신이 바깥과 본질적으로 연결될 필요도 못느끼고, 상상력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야기를 해체하려 할 때 당신의 작품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될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삶은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게 거짓이고, 당신 조차도 돌부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거니까요. 이 모든 이유로 예술가가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것이고, 특히 영화 분야는 더 그렇죠; 지각의 상실입니다. 우리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주요하지 않다고 교육을 잘못하고 있어요. 이부분에 맞서야 해요. 코폴라 감독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는 절대 그렇게 하지도, 말을 내뱉지도 않았죠’ <<내 작업은 내 손바닥 안에 있어>> 오히려 그는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모험을 계속해왔죠. Coup de coeur 를 보면, 그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혁신하려 했는가를 느낄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점을 깎아내리지만요.

 

유선 인터뷰 Fernando Ganzo 2021/01/07

출처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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