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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25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 Christoph Hochhäusler ⓑ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 Christoph Hochhäusler ⓑ

디지털로의 새로운 개발의 물결을 타고, 독일 감독인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가 촬영과 후반작업에 대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였다.


                                   영원한 실험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 Christoph Hochhäusler [각주:1]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 Christoph Hochhäusler ⓐ에 이어....


내가 바로 얼마 전 끝낸 픽션 영화, Sous toi, la ville (2010), Eine Minute Dunkel(2011) 에서 나는 연출을 하지 못할 뻔 하였다. 자연 풍광때문이나 예산때문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 매체를 발전시킬 수 있었고, 보다 과감했고, 보다 미니멀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최근에 사티아지트 라이 Satyajit Ray[각주:2] 의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Les Joueurs d'échec 을 보았다. 나는 일부러 그런 척하는 것 없는 영화의 단순함에 매료되었다. 우크람부터 옹졸한 영국인 장교 리차드 아텐부루 Richard Attenborough 까지 아이러니로 가득찬 영화였다- 최근 간디 Gandhi 에서 보이는 영화의 시정도 보였다. 라이는 인물들이 오래된 의상을 걸치고, 인도의 오래된 자유의 역사를 말하기를 원했다. 그는 회화, 조각, 그리고 애니메이션 시퀀스에까지 관여하면서 훈육적인 분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라이의 작업과정은 나를 매료시켰다. 또한 전반적으로 작업에 《유동성》을 보였다. 왜 우리는 런던의 유리궁전 장면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는가?
 나는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Les Joueurs d'échec 가 내가 앞으로 할 영화의 본보기인지는 확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형태를 보다 매끄럽게 하기 보다, 나는 그 반대이다. 내가 최근 연출경험을 되짚어보면서 무엇인가 상실한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모든 영화는 그의 욕망의 폐허이다-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예산이 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다른 범위의 이야기이다. 한정된 수단은 규정을 위반하게 하거나 우선순위를 수정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싶고, 이야기적 구성을 바꾸려 한다- Séance 에서처럼, 후반작업에 적든 많든 참여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예측을 해보면- 배우들과의 보다 깊이가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또, 나는 거기에서 더욱더 구조가 있는 이야기를 하기를 원하며 편집실에서 모두 함께 그것을 보기를 원한다.
 내가 《새로운 것》이란 단어를 쓴다면, 그건 편집실에서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맞는 예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존재했겠지만. 이러한 Pan &Scan 에 의한 대형스크린의 4/3 포맷을 고안한 선구자들이나- 기술적으로 더 복잡한- 모션 캡쳐를 개발한 사람들은 이미 이전부터 있었겠다. 
 저메키스 Zemeckis [각주:3] 와 카메론 James Cameron 이 사용하는 모션 캡쳐 motion capture 라는 말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 두 명의 감독은 서로 다른 결과를 보였지만, 제작에서 혁신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같다. 그의 최근의 시도는 기술적으로 점점 향상되고 있다 : 《타이즈》(케이블 장치가 되어있는 의상)을 입은 배우는 스튜디오에서 장면을 상상하며 움직이고 연기하며, 가상의 존재와 합성된다. 배경의 건축물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이 남는다 : 바로 빛이다. 그리고 포지셔닝과 카메라의 프레이밍 등의  후반과정에서야 결정되는 요소들이다.
 저메키스의 베어올프 La Légend du Beowulf (2007), 폴라 익스프레스 Le Pôle Express(2004), 크리스마스 캐롤 Le Drôle de Noël de Scrooge (2009) 등은 어떤 프레임도 촬영장으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았다 ; 카메론은 그 반대로, Avatar (2009) 에서《카메라가 노출 》되면서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테이크는 각각《스노우 볼》같이 보이도록 했다고 한다 ; 테이크가 촬영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지 프레임의 움직임과 공간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였다.
 구성적으로 매우 새로우며 야심찬 시도였다. 이 《결집 상태》의 일시적 차이인 것이다. 제작에 따라 예전 방식으로 찍는 것은 더 이상《유동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자유롭게 조작이 가능하며 편집실에서 갖다 붙이는 것 이상의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에 필요한 모든 실험은 후반과정에서 이뤄진다.《촬영》은 배우의 연기와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배우들의 상호작용을 이뤄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션 캡쳐 의 불편함은 분명한 일이다. 연기적 상황은 완전히 추상적이다. 장소는 배우의 연기에 따라 거기에 녹아든다. 가상 배우로 이뤄진 장면은 현실의 빛으로 만들어진 복합적인 장면만 못하다. 기술적으로 단절되면서 제작단계의 어떤 저항력을 잃을 수 있다 ; 바로 쉽게 피로해지는《최적의》시야를 고쳐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에 따른 비용이 없이도.
 내가 모션 캡쳐라는 기술에서 바라는 것은 특정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나 나래이션에 의해 보여지던것?- 나중에는 카메라 편집이 없이도 실내 조명이 없이도 보다 배우의 밀도있는 연기에 힘입어 시간을 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전통의 조명-공간에서 사용되는 비용도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내 생각으로, 마스터샷 커버리지 테크닉 mastershot coverage technique (MCT) 을 위해 고해상도의 2개의 마스터샷을 한 영당 예측하여 더 이상의 작은 단위로 재프페이밍하지 않는 것이다. 혹은 《수정하지》않는 것이다.
 이 마스터샷 mastershots 은 아직 영상이 아니지만, 장면의 핵심적인 행동등을 나타낸다.  커버리지 coverage 시스템에서 방향의 한계가 있고 일반적 대칭과 균형(전경-전경과 반대되는 장면 사이의)이 없이 이뤄진다. 또한 특정한 방식으로 보기를 강요하며《편평한》영상으로 남을 수 있다. 카메라 줌의 심미성과는 대조적이지만 카메라를 재구성(내가 전글에 언급했듯이, 조명과 배우들을 재배치하는 작업이 필요함)하면서 시선을 정하고, 사람들은 무대 배경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그림》, 다시 말해 마스터샷 mastershot 의 추출이미지는 다른 질 높은 이미지이다 : 이미지의 캡쳐이상의 것이다. 이런 상이함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영상들은 항상 그의 《기원》 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물론 거기에서 더 요약하고 줄일 수 있다.
 Sous toi, la ville 에서,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첫 시도를 하였다. 일반적으로 촬영된 영상에서 섬광을 발하도록 증강시킨 것이다. 이러한 섬광을 과장하면서, 더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나왔다.
 기초 매체(우리의 경우에는 Red 카메라) 가 디테일을 과잉되게 보여주면서, 400% 까지 요소들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엄한》분위기가 나면서 극도로 폐쇄적인 장면에까지 이어졌다. 장면의 모듈화가 무한대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N.B : 신작 ,Lichtjahre 에서, 이런 실험을 다시 해볼 요량이다.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 

이 텍스트는 동일한 제목으로
parallefilm.blogspot.com/2009/10/permanente-werkstatt.html
 에 실린 글이다.




출처  :  CAHIERS DU CINéMA #672. 2011.11
기사  :  Sophie Herr
번역  :  PLONGEUSE ( 잠수부 ).[작성. 2012.02.07]



  1. Christoph Hochhäusler (born 10 July 1972) is a German film director and screenwriter. His film Falscher Bekenner was screened in the Un Certain Regard section at the 2005 Cannes Film Festival.[1] His film The City Below was screened in the Un Certain Regard section at the 2010 Cannes Film Festival.[2] [본문으로]
  2. 사티아지트라이 [Satyajit Ray, 1922. 5. 2~1992. 4. 23] 요약 인도의 전통문학 속에 나타난 농촌생활을 시적으로 표현한 영화감독이다. '아푸의 3부작' 중 1부인《길의 노래》로 평론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성공에 힘입어 2부《정복되지 않은 사람들》과 3부《아푸의 세계》를 완성했다. 느린 템포의 영화 스타일이 특징이며 리얼리즘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다. 국적 인도 활동분야 영화감독 출생지 인도 캘커타 주요수상 칸영화제 최우수 인간 다큐멘트상(1956),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1957) 주요작품 《파테르 판찰리》(1955),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1956) 본문 1922년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난 레이는 시인이며 화가였던 할아버지와 작가였던 아버지를 본받아 예술적 재능을 타고났다. 프레지던시대학교를 거쳐 과학계통으로 진학할 계획이었던 레이는 어린시절부터 집안과 친분이 있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영향을 받아 예술분야로 진로를 바꾸었다. 1941년 광고회사에 들어가 삽화를 그렸고 미술감독이 되었다. 1949년 《강 The River》을 촬영하기 위해 인도에 온 프랑스 영화감독 르누아르를 만난 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해졌다. 그는 작가 비부티 부산 반디요파디아이의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초보자에게 투자하지 않았고 1952년에야 친구들의 도움으로 제작에 착수했다. 이 작업자 중에는 촬영기사를 제외하고 영화 작업을 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작비가 부족하자 인도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첫작품 《파테르 판찰리 Pather Panchali》(1955)를 완성했다. 가난한 농촌 소년 아푸가 도시로 나와 소설가가 될 때까지 겪는 인간 다큐멘터리인 '아푸의 3부작' 중 1부인《길의 노래》는 평론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인정받았다. 상투적인 영화장면보다 인도 농민의 생활과 관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인간 다큐멘트상을 수상했다. 데뷔작이 성공함으로써 별 어려움 없이 '아푸의 3부작' 중 2부《정복되지 않은 사람들 Aparajito》(1956)과 3부《아푸의 세계 Apu Sansar》(1959)를 완성했다.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은 1957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느린 템포에 음영이 대비되는 흑백촬영과 라비 샹카르의 음악 등으로 꿈과 현실을 오가는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인도의 가난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되 전통과 관습을 살려 리얼리즘 영화에 속한다. 특히 전문배우가 아닌 초보자를 배우로 쓸 때도 거의 연습을 시키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을 좋아했고 재촬영보다는 최초에 찍은 필름을 더 좋아했다. 그후 타고르 탄생 100년을 기념하여 타고르의 소설 3편을 묶어 《세 소녀 Teen Kanya》(1961)를 만들었다. 그 밖에 《우체국장 The Postmaster》 《결론 The Conclusion》 《여신 Devi》(1960) 등이 있고 인도의 대기근을 서사적으로 그린 《먼 우레 Distant Thunder》(1973)와 최초의 힌디어 영화 《장기꾼 The Chess Players》(1977) 이 있다. [출처] 사티아지트라이 [Satyajit Ray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3. [Robert Zemeckis, 1952.5.14~] 요약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감독. 코믹 SF드라마 《백 투 더 퓨처1·2·3》,《죽어야 사는 여자》,《포레스트 검프》등을 감독했다. 국적 미국 활동분야 영화감독 출생지 시카고 주요수상 LA비평가협회 특별공헌상(1988), 아카데미 감독상(1995) 주요작품 《백 투 더 퓨처》 《죽어야 사는 여자》 《포레스트 검프》 본문 1952년 5월 14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머가 조합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할리우드의 앞선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 대중적인 인기와 작품성을 얻고 있는 감독이다. 어려서부터 영화 속 세상에 매료되어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으며 고등학교에 다닐 때 8mm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제작하였다. 노던일리노이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였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Field of Honor》로 학생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봅 게일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그와 함께 쓴 《1941》은 1979년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이 연출을 맡아 영화화되었다. 스필버그의 후원을 받아, 1978년 《네 손을 잡고 싶어 I Wanna Hold Your Hand》를 발표하며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80년의 《중고차 소동》에 이어 1984년 오락영화 《로맨싱 스톤》을 발표, 액션과 유머가 조화를 이룬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흥행면에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이후 코믹 SF드라마 《백 투 더 퓨처》, 실험적 성인 애니메이션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Who Framed Roger Rabbit?》(1988)를 내놓아 다시 전세계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이어 발표한 《백 투 더 퓨처 2·3》(1989, 1990) 역시 1980년대 할리우드영화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1990년대에도 새로운 특수효과 촬영기법으로 연출한 블랙코미디 《죽어야 사는 여자 Death Becomes Her》(1992)를 발표하여 인기를 얻었으며 1994년에는 지능은 낮으나 순수와 열정으로 인생을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 《포레스트 검프》를 내놓아, 미국 전지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밖에도 외계인의 존재를 현실적인 호기심의 눈으로 조명한 《컨택트 Contact》(1997), 한 남자가 외딴 무인도에 표류하여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2000) 등을 발표하여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1988년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상 특별공헌상, 1994년 미국감독조합 영화감독상을 받았다. 1995년에는 《포레스트 검프》로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1995) 등 6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출처] 제멕키스 [Robert Zemeckis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