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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2.01 원문 출처;SoFILM [NEWYORK STORY] 2017 edi.capricci; Philip Seymour Hoffman 편.

원문 출처;SoFILM [NEWYORK STORY] 2017 edi.capricci; Philip Seymour Hoffman 편.

 

2014년 2월 2일, 필립 쉐이무어 호프만의 사망이 보도되었다. 사인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알려졌지만, 석연치 않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 같이 신중한 사람이 정키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연기를 잘하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고급스러운 사람이다. 기사가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의심이 쏟아졌다. 바로 줄리아니 재임  이전시기, 실패한 예술가의 비참한 운명, 초라한 아파트, 방황하는 펑크족이 나오는 속보가 이어졌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에 혼자 맨하튼 아파트 욕실에 남은, 팔에 주사바늘이 꽂혀있는 한 남자의 이미지가 보여졌다. 그리고 사망 전날, 그리니치 스트릿에 Agostino 식료품점에 나타나는 감시카메라 영상도. 흐릿한 이 영상에서, 그는 ATM에서 불안한 기색으로 200달러를 인출하는 그가 보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남자에게 그 돈을 전달한다. 빛나는 이 배우의 영상은 마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 중 루 리드가 부은 이 대목, I'm waiting for The Man를 ₩떠올린다. 일렉기타소리 너머로 그는 마약상을 기다린다, 병들고 더러운..., 한 손에 돈뭉치를 들고. 

이후, 호프만과 [연결된] 이 남자의 신분이 밝혀졌다. 로버트 빈버그 Robert Vineberg 일명Robert Aaron 인 이사람은 보헤미안과 맨하탄 언더그라운드의 살아있는 동상같은 사람이다. 40여세의 마약중독자, Afrika Bambaataa ,David Bowie ,Amy Winehouse 와 함께 색서폰을 연주했던, Basquiat 와 가까웠던 사람이다. Antoine Rajon 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많은 젊은 록스타와 배우들이 야생에 가까웠던 과거 뉴욕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기 위해 그와 어울렸다], 많은 증언들에 따르면 호프만은 이 빈버그가 헤로인과 코카인에 둘러싸여 머물던 302 모트스트릿의 무미한 건물 주위를 멤돌고 했다고 한다. 350 그램여의 소량. 마약 소지로 체포된 그는 현재 Riker Island에 수감되어 있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이해가 안된다는 입장이다[만약 호프만이 사망한 날 나와 같이 있었다면, 과다복용을 하지 안했을거예요!]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서부의 헐리우드 영광과 햇빛을 뒤로하고, 그는 동부 뉴욕에서 지냈다. 영화 비평가 Mark Harris 는 확신에 차 말하길 [필립은 우리 사람이었어요. 진정한 뉴요커였죠. 배우란 직업은 제쳐두고서라도, 그의 영혼과 마음이 그랬단 겁니다. 블럭버스터 Twister 에 연기할 때, 모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있거든요; 나는 예술적 가치 제로인 영화를 할 거야, 하지만 그걸로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수가 있어. 내가 원하는 삶이란, 뉴욕의 삶이야.] 그렇다. 결국 호프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다. 맨하튼 웨스트 빌리지 한 가운데에 월세 만달러의 아파트에 살며,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만찬을 즐기며, 저녁나절에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매디슨 스퀘어에서 뉴욕닉스 의 경기를 보고, 매 토요일의 블랙커피와 초콜렛 빛깔의 벽 사이에 그는 익숙했다. 뉴욕의 기억 속에 사는 것은 도시의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과 같았다, 비트족의 글들, Allen Ginsberg와  William Burrough,그리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 곁에 sidemen 재즈, 주사기가 쌓여있는 첼시호텔 외곽계단. 하지만 이 모든 가벼움과 무거움이 뒤섞인 속에서 그의 어렸을 적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담는 사람이었어요. 현재의 사람들, 노래들, 건물 이미지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거울같은사람이었죠. ]  2006년 그는 마약을 끊으면서 CBS 60minuit 에 출연해서 고백을 한 바 있다 [뉴욕대를 졸업하고 나서 브루클린, 맨하튼의 삶으로 떨어졌죠. 당시 20대였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흘러갔죠. 너무나 빨랐어요. 마약,술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지려고 했죠. 여러번 죽을 뻔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난 아직 너무 젊어, 이러다간 인생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돈도 못 벌거야!],그 이후로 마약을 끊었죠.

 

 

호프만은 청소년기가 끝난 1985년 뉴욕에 자리잡았다. 허튼 수작, 말썽, 그리고 열정적인 스포츠 등을 번갈아갔다. 그는 뉴욕 시로부터 몇백킬로미터 떨어진 뉴욕 주내 페어포트 에서 1967년 7월에 태어났다. 늪지대가와 비슷한 촌락은 마치 수감자들 시리즈의 배경같아 보이기도 한다. 포튠 매거딘진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0곳 중 하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유년 시절, 아버지는 제록스의 상점을  운영했으며 프로테스탄 신자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신자에, 적어도 처음엔 가족에 충실한 듯 했다. 나중에 법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고 호프만이 9세일 때 이혼을 한다. 2000년 그녀는 뉴욕시 판사가 된다. 그녀는 아이들을 Arthur Miller연극에 데려가거나, [예술적 가치가 있어 교육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 영화관에 데려가기도 했다. 이혼한 후에 호프만의 어머니는 그녀의 집에 이혼한 여성들을 초대해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긴 오후나절 동안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호프만은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곤 했다. 그에게 중한 일은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 테니스, 야구, 축구 그리고 특히 격투에 특히 몰두했다. 그랬기에 그의 투쟁심이 내재한 거라 할 수 있겠다. David Bar Katz에 따르면 그런 기질이 그의 인생 전반에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는 절대 경기에서 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설령 어른을 상대로 해도, 꼼짝 못하게 한다거나, 떼려 눞히는 일이 다반사였죠.  그는 항상 팔힘이 셌어요.  한번은 웃으면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죠; 필립, 크렘 앙글레즈 를 그렇게 먹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큰  고래가 되는 사람은 너 뿐일거야 ] 하지만 그랬기에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도 남긴다. 그가 13세에 공개 토너먼트전이 열렸는데, 처음으로 참패를 당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관중석에는 그의 엄마도 왔는데, 소리지르기를[알오너! 일어나! ] 그러자 그가[그럴 수 없어!일어날 수가 없어!]답했다. 갈비쪄가 부러진 사고였다. 그 이후에 운동을 계속 하기가 어려워진다. 바로 그 시점부터 마릴린이 그를 극장과. 영화관에 데려가기 시작한 시기이다. 누군가 그에게 왜 연극수업에 등록했는 지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거기 이쁜 여자애들이 많잖아, 맘에 들면 따라갈거야. 연극 배우란 직업이 맘에 들어!] 연극반 교수였던 Midge Marshall 은 뮤지컬 배우보다 세익크피어 학파의 배우들을 선호했다. ,그녀는 이렇게 젊은 시절의 호프만을 기억한다. [그는 재능이 있었어요, 확실한 사실이죠. 어느 누구보다 더 뛰어났죠. 하지만 그보다 더 열심히했어요] 누가 말한 듯 샌드위치에 버터를 바르는 데 열심이 아니라 [한번은 여행 중 객사한 사람의 역을 맡았는데, 600여명의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해야했어요. 그가 너무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계속 이런말을 하더군요. 이 역에 미친듯이 일했기때문에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해! ]그의 연기인생은 이미 뚜려진 듯했다. 이후에 그는 에 섬머아트스쿨에 입학한다. 17살때이다. 그곳에서 그는 Benette Miller와 Dan Futteman를 만난다. 그 이후로 2005년 그는 밀러와 트루먼 카포티 역을 맡아 댄이 각본을 쓴 영화를 찍는다. 18세의 젊은 배우에게 뉴욕을 만만하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로우 앤 오더 시리즈에서 강간범을 맡기도 한다. 

 

[아무도 나를 알 지 못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뉴욕에서 Midge Marshal이 말마따나 그같은 유형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건장하고, 열심히 일하고, 스포츠광인; [아주 작은 디테일에 아주 집착하는 사람이었어요. 완벅할 수 없는 부분에 매달려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였죠] LAByrinth Theater 의 매니저인 Danny Feldman 은 이렇게 그를 기억한다. 1995년부터 호프만과 공동운영했던 연극관련인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가 일할 때 보면 워커홀릭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죠. 농담하면서 담배피면서, 파티에 끝까지 남는 타입이요. 하지만 그건 가짜예요. 극이 오르기 전, 모든 요소들을 확인했죠; 손수건 조각 하나라도, 의상의 단추 하나까지요. 하나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어요. 처녀 공연 저녁이 생각나는데, 모두가 그의 평가에 무사히 통과한 것을 감사했죠. 우리를 한 곳으로 모이도록 하고, 이렇게 말했죠; 지금부터 리허설을 계속 합시다, 계속 일해야 할거예요, 그의 문제는 절대 멈추지를 않는가는 거예요] 보이는 둥그스름한 체형의 외모 이면에 숨어있는 고통받는 배우로서의 자아가 있었다. 그는 점점 헐리우드를 이면에서 취한 사람이기도 하다. 무결점의 솔로연주자이기를 바라며 그의 전문 분야는이러했다; 호모섹슈열 인물에 비틀어진 인간의 형상을 부여하는것[Boogie Nights], 떨리는 입술로 중얼대는 변태[Happiness], 음흉한하층민[The Big Lebowski], 쿨하지 않은 컬트한 평가[Almost amous] , 비열한 배후조종자[Master], 사디즘의 악당[7h 58. Ce samedi la. Impossible 3]...그는 신체를 사용하여 연기하는 데 능했다. 그리고  트루먼 카포티역으로 그는 오스카 최우수배우상을 받을 만하였다. 그는 이 배역을 준비하기 위해 4달 반의 시간이 렸다. 극도의 신체훈련으로 밀어붙이면서 배우의 자질을 달련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 지점에서, 미디오는 자문하기 이르렀다; 어떻게 이 배우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조지 클루니, 혹은 조니 뎁같은 배우를 앞에 두고 오스카 상을 차지아할 수 있었는가? 왜 시드니 루멧같은 올드스쿨 감독들이 확신을 가지고 그를 기용하는가 롤링 스톤지에서 이렇게 그는 이런 말을 한다.[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불평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적응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주변을 잘 이해하게 되기도 하는데, 내 경우는 아니라구요] 

아마도 호프만이 가진 헐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면면들에 매혹되는 지 모르겠다; 절대적 적확성을 겨냥하는 이 배우의 강도와 양날의 검을 활용할 줄 아는 기술이 그렇다. 그의 사후에 실린 롤링 스톤지 기사를  보면, 친한 에단 호크가 이렇게 말한다. [얼굴 예쁜 배우도 많고, 멋진 복근을 가진, 조명을 어떻게 화려하게 받는 지 아는 배우들은 많죠. 하지만 그 중에 필립은 잘난 사람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유일하게 진실을 구현하는 배우일 겁니다. 역에 몰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었어요...]  가끔 그의 완벽주의에 파묻히기 전까지는, 유명한 말 이 있다[당신이 유일하게 삶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일을 잘 했다는 걸 느낀 순간일 겁니다] 하지만 역시;[일을 잘 하는 데 느끼는 고통은 일을 잘 하지 않은 고통에 버금가죠]

 

 

이렇게 쉼없이 정신을 다하는 표현방식은 내면의 악마를  깨웠을 지도 모르겠다. 호프만은 쓰러졌다. 말 그대로, 연극 무대에서 그는 주저앉았다. 체홉 극의 이바노프 역을 맡은 처녀공연에서였다.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반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어두운 극에서 그는 멜랑콜리아와 불안에 잠식당했다. 이후에 아서밀러의 극 을 맡았을 때, [그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로 너무 어두워졌죠] 에단호크의 말이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하던 말을 기억한다. [나는 최악이야, 연기를 너무 못해, 이제 배우를 그만둬야 될 것 같아. 프랑스로 가서 영어 강사라도 해야할 거야. 면피하기 위해서 말야] 지난 5월 호프만이 디톡스 치료소를 출입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서히 시작되었어요. 처음에는 약을 먹었는데, 점점 양이 늘었고, 헤로인에까지 손을 데기 시작했죠...] 연기인생의 단절에 대해 그의 개인비서와의 관계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와 부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가? 10월, 1999년이래 호프만, 세 아이와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에 아파트에 살고 있는  Mimi O'Donnell 은 토요일밤에 의상담당자이기도. 그녀에게 상황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필릅은 점점 바닥을 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본인은 거기에 낙관적이었죠. [팔에 주사 바늘을 꽂은 채 썪어가는 사람을 생각해봐요, 그게 내 팔이 아니어도 말이죠. 그는 그런 삶을 극화하지 않았죠. 용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지인인 극작가 Stephen Aldy Guirgis 은 이렇게 말한다. 맨하탄의 익명으로, 중독치료소에 참가해서 호프만은 자기연민에 빠진 우울한 마약 중독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중저음의 재즈의 베이스같은 목소리로 상황을 가볍게 하도록 하였다[좋은 사람이었어요. 잘 빗어넘긴 머리에, 면도도 깔끔하게 해서 인상도 좋아보였죠. 전혀 불쌍한 중독자처럼 안보였거든요.] 치료소의 익명의 제보자의 말이다. 어느날 한 사람이 호프만에게 물어보았다.[헤이, 필립. 끊은지 얼마나 되었어요] 아마 이런 대답을 듣기를 바랬을 겁니다.[몇달동안 약에 손도 데지 않았어요 ] 하지만 정작 그가 한말은, [28일 째 안하고 있어요., 괜찮아!]. 무개념인가 하나의 방법인가, 호프만의 전 소유였던 극장에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한다 [필립에게 마약이란 그의 청춘시절과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같은 것이였습니다. 그가 영화와 연극계에서 자리잡기 위해 어려울 때에 마약 투여량을 조절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죠. 하지마 어쨌든 그에게는 지인,돈, 명성 등이 있으니 중독되는 것에서 쉽게 피할  수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만 ] 어쨌든 그가 다시 약에 빠져있을 때도 연기는 계속 했다. 헝거게임 이나 텔레비전 시리즈의 주요인물 을 맡아 집중을 했다. 쇼타임 채널에 운영을 맡은 관계자는, [그를 설득하기 까지 너무 많은 노력을 했죠.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어요. 케빈 스페이시가 하우스 오브 카드를 맡은 것처럼 그가 맡을 시리즈 제목은 Happyish 였다.] 적어도 한 시즌 동안 진행될 프로젝트였다. 파일럿 에피소드가 이미 제작되고 방영될 준비가 되어있었다; 호프만은 이 시리즈에서 광고기획사 디렉터역을 맡아 디지털 세대에 sns에뒤떨어진 사람을 맡았다. 그리고 호프만의 첫  연출작 Ezekiel Moss 에서 제이크 질렌할과 에이미 아담스가 주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방랑자의 몸짓

 

첫 위험 신호는 2014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였다. 그 때에 파크시티에 있는 겨울 스포트 경기장을 다녀간다. 압박감을 이겨내기에 그럭저럭 효과가 있었다. 이 영화제에서 장편영화를 확인했는데[John Carre 소설을 각색한 Anton Corbijin 의 스릴러 첩보물 , Mad Man의 배우 John Slattery가 감독으로 데뷔작], 당시 그를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비록 그가 패셔니스트는 아니었어도 깔끔한 편이었는데 그날은 수염도 덥수훅하게 자란, 헝클어진 머리가 평소보다 더 허름했다고 한다. 파크 시티거리를 헐렁한 배기팬츠, 낡은 가죽끝 샌들에 트럭운전수 모자를 쓴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그는 편안하기 그지없어보인다. Roadside Production 의 대표 Haward Cohen 은  뉴욕타임즈에서 은 이렇게 말한다. [뭔가 붕떠있는 것 같았어요. 말도 많아지고 마주치는 모두에게 친근하게 굴더군요. 겨울왕국을 보러갔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디즈니의 최신작이요. 아이들이랑 갔었는데 너무 좋았다구요] 호프만은 현장에 나와있는 기자들과 즐기는 듯했다. 한 Hollywood Reporter 의 기자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기억에 남는 영화제가 있나요] [한 단편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호텔 리셉션 한켠에 잠자면서 밤을 보냈죠. 마치 돈을 낼 비용도 없는 사람처럼요. 배우와 감독 들 사이를 걷는데 왠 거지보듯 하더군요. 하지만 오히려 그 경험때문에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거리를 두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그의 수다스러운 성격이 가끔 문제가 되기도 했다. 워싱턴 라이프의 John Arundel 은 이런 일화를 들려준다. 하루는 우연히 그가 이상한 베레모를 쓴 남자와 마주쳤는데 그가 [헤이 아는 얼굴 같은데, 뭐하는 양반이요] 웃으며 묻자, 그가 말하기를 [나는 중독자일 뿐이요. 헤로인 중독자요. 뭐 쓸말할 만한 것도 없어요] 내가 그 이상한 모자를 벗엊끼자 특유의 웃음을 입가에 지으며 그와 눈이 마주쳤죠. 기자가 결국 아 당신 필립 세어 호프만이네요.

그러자 그가, 빙고 잘 맞췄어요. 방금 중독 치료소에서 나오는 길이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매번 그는 우위에 서지 않았다. 아틀란타에서 헝거게임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찍던 때에밤에 늘 혼자 남는 건 그 혼자였다. 영화스텝들은 알고 있었지만 동요는 없었다. 정해진 시간 없이 홀로였고 팔은 힘없이 늘어져있었다. 종종 관광객들이 찍은 사진에 그는 강가에 축 늘어진 향유고래같았다. 휴스턴 지점의 상업지구에서 일하던 Theresa Fehr 는 아틀란타 공항에서 그를 만난 적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왠 부랑자인 줄 알았어요. 마음이 아팠죠. 길거리 걸인 같아보였어요. 똑바로 걷지도 못했고 경비원들이 그를 검표소까지 부축해서 데리고 갔죠. 신발을 허리띠로 묶고있더라구요. 그래서 바지는 흘러내리구요, 출렁거리는 그의 뱃살이 보였죠] 이상한 일이죠, 이 거지가 배우를 닮았는데 이름까지 비슷하다니 그게, 그사람 맞아요. 이 후 몇주가 지나 치명적인 사건으로 그는 죽음에 이른다. 지금은 이 배우의 다양하고 넓었던 연기폭에 대해 묻기 전에 이런 질문을 가져본다; 주역 캐스팅의 주변에서 머무르며 맡았던 역이 결국 쇼비지니스와 판타지의. 결점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 죽기전 그는 유언을 수정했다. 그의 이미지에 맞게' 나는 내 아들 쿠퍼가 헐리우드에서 멀리 떨어져 살기를 바란다. 맨하튼, 아니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라길 바란다. 어떤 문화, 예술, 도시건축이 되든 상관이 없다. 정 아들이 헐리우드에서 그의 인생을 보내야 한다면  일년에 두번정도 가기를 바란다.  

 

원본출처 : 소필름/ 인터뷰어집

번역; 잠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