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메취 Gabriel Metsu : 2류 작가 인가 아니면 베르메르보다 위대한가?
암스텔담에 리직미술관에서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전성기의 한 작가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바로 가브리엘 메취이다. 보자르 매거진은 금기시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화가는 베르메르와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솔 직히 이 가브리엘 메취란 이름을 들어봤는가? 프랑스 대중은 루브르 미술관(예수, 그리고 간통한 죄를 지은 여인; Le Christ et la Femme adultere, 폭음하는 여인; la Riboteuse)이나 스트라스부르 미술관에 소장 중인 그의 작품을 알고 있는가? 사실은 아닐 것이다. 예술사에서 가브리엘은 빛난 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겠다. 베르메르는 이미 그 완벽한 예이다. 하지만 거기에 메취를 빠뜨린다는 것은 큰 실수가 될것이다. 그는 화가인 아버지 슬하에 1629년에 레이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훌륭한 기술자이자 완숙함을 보였다. 메취는 제라드 두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15세에 그의 고향에서 예술가를 위한 길드에 참여했고, 19세에 얀 스틴 1의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붓질에 능수능란하기도 했지만 식당의...그리고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메취는 얀 스틴처럼,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경제적 어려움(1652년과 1654년 사이에 영국과의 전쟁으로 인한 경제침체 )을 해결하기 위해 동시에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였다. 우트레에서 몇일 묵은 후, 메취는 암스텔담에서 닭을 사육하였다. 사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의 그림은 부유한 부르주아지들(특히 직조물의 거상인 Jan Jacobszoom Hinlopen )에게 점점 알려졌지만, 메취는 그가 교류하는 세계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주의 깊은 관찰자로 남기를 바랬다. 그는 종교화로 데뷔 때부터 알려졌지만, 두드러지는 점은 일상성이다 : 길 위의 장면, 시장, 내면적 성찰, 정물 등...렘브란트 2나 피터르 더 호흐 3 의 주변에서 현대성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보다 높이 조형적 실험을 하였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 그의 스타일이 다 피어나기도 전에, 1667년 너무도 일찍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이다. 방광염은...이게 모두 빌어먹을 네덜란드 맥주때문 인 것을! T.S
메취는 베르메르보다 위대한가?
그렇다.
토마스 슈레저Thomas Schlesser, 예술사학
자
베르메르, 방해가 되는 신화
난 예술사가 종종 그의 신화 속에 갇히곤 한다고 생각한다. 베르메르가 그 예이다 : 그 때문에 이렇게 메취가 19세기 까지도-비평가 테오필 소레(1807-1869)가 그를 재발견함- 잊혀졌던 게 아닌가. 그의 작품은 또, 프루스트의 혜택을 받기도 하였다. 그 다음은 1930년대 박물관 소장품 연구에서, 그리고 출판물 등에서도 종종 등장하였다. 베르메르가 대중에게 전면으로 나서는 동안, 당대 다른 화가들은 완벽히 뒤로 물러나게 잊혀져갔다. 아! 메취의 눈으로 18세기를 다시 볼 수도 있었는데! 문화 산업과 상인의 자유로운 시선으로, 역사 속에 갇힌다는 어떠한 불안함 없이도 말이다...
동일한 주제에서 메취는 베르메르보다 낫다
편지 쓰는 남자 에서 메취는 이미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와 지리학자의 구성과 상징적인 미학을 성취하였다고 생각한다. Leyde출신의 이 작가가 별세한 이후 일년 여 지나, 복잡함과 단순함 사이의 드라마틱한 긴장감, 심오함, 빛의 유희, 신비로운 의미가 드러난 것이다 : 이미 모두, 그의 그림에 존재하였었다! 오히려 더 낫다 : 베르메르의 소년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
생각하는 늙은 여인 에서는 17세기의 보다 심오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 베르메르가 그랬듯이, 메취도 인간을 표현하느 데 열정적이었다 : 걱정스런 주름에서 보이는 아이러니, 명상을 하는 인물의 신중함이 종종 주름으로 나타났다. 또,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깊은 어둠에는 기쁨과 눈물이 교차하고 있다.
메취, 그가 가진 유머와 사회 참여적 시선
메취는 베르메르보다 유머러스하다. 얀 스틴처럼 원색적이지 않지만, 풍경화가 주는 무거움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대중의 삶을 바라본다( 그리고 존엄성을 뺀, 어떠한 편견도 없는). 조그만 카페에서, 시장에서, 길 위의 서 있는 행색이 초라한 남자에게서 생과 사의 비장감을 찾아낸다. 메취는 낯섬과 온화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베르메르보다 훨씬 《사회 참여적》이라고 맹세할 수도 있다. 시대착오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좌파》적인 시선이 있다. 나는 베르메르가 부각되는 당시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에서 메취가 순수한 민주성으로 완벽함 미학을 구사하였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피에르 스텍스Pierre Sterckx,
예술비평가, 베르메르의 세계 (PUF출판사, 공동협력. Ligne d'art 2009)
의 저자
메취에게는 사고가 결핍되어있다
우선 보복적인 이원주이를 피할 필요가 있다: 왜 메소니에가 세잔보다 중요한가? 베르메르는 메취 앞을 막아선 인물이 아니다. 피터 드 호흐와 마찬가지로, 모든 다른 작가들이 그랬듯, 그는 2류 작가이다. 그리고 어떻게 서양 예술사에서 2세기 동안 잊혀졌던 화가가 갑자기 주요 거장으로 부각될 수 있겠는가? 이는 위대한 예술가가 가진 세대의 초월성에 관한 문제이며 그에게서 앗아간 신화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는 우리가 멈추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는 그 함정에 종종 빠지고 만다. 베르메르는 단지 역사에 부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그는 현재를 계속해서 다시 보여준다. 그래서 메취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가 과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확실히, 메취는 재능이 있다. 하지만 그가 천재적이기엔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바로 사고의 그것, 형이상학적 인 것을 가시화하는 능력이다... 4
메취는 지역적이고, 베르메르는 세계적이다
베르메르나 메취는 모두 독특하다. 하지만 역사학적인 사실여부가 아니라 현대적 풍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들은 극적으로 다르다. 메취는 세부적 요소들을 다양한 공간에 한꺼번에 배치시킨다. 베르메르는 그 반대로 복합적이다 : 그림 속에는 인물이 거의 최소한으로 나오며, 행동이 적고, 고요한 빛을 전한다...그는 스피노자가 신을 생각하듯 작업한다 : 《모든 특징을 나타내는 유일한 소재》로써 말이다. 메취는 공간을 《만드는》그런 강력한 도상을 배치하지 않는다. 베르메르가 여인의 머리에서 지도에 이르기까지 진주빛이 퍼지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 반면에, 그는 일상적 풍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메취는 지역적이고, 베르메르는 세계적이다. 진주는 사실 동양에서 소행성으로 여겨지는 보석이며, 생동감을 보여주는 구체이다. 그 안에 빛과 광물의 태양이 음악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메취의 민중선동적인 풍경
베르메르는 11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의 가족의 행복은 의붓어머니로 인해 방해받곤 했다. 그는 빚을 진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그는 그렇기때문에 인간이 가진 거침을 증명해보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추상적 요소를 구축하기 위해 그것을 고립시키곤 하였다. 몬드리안처럼! 그는 생을 기록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메취는 게으른 풍경을 강조할 뿐이었다...감정(욕망, 슬픔, 고독, 음악 등)은 베르메르를 통해 기하학적 풍경으로 드러나곤 하였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바가 베르메르의 숭고한 아름다움이냐 메취의 민중 선동적인 풍경이냐에 달려있다...■
베르메르나 메취는 모두 독특하다. 하지만 역사학적인 사실여부가 아니라 현대적 풍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들은 극적으로 다르다. 메취는 세부적 요소들을 다양한 공간에 한꺼번에 배치시킨다. 베르메르는 그 반대로 복합적이다 : 그림 속에는 인물이 거의 최소한으로 나오며, 행동이 적고, 고요한 빛을 전한다...그는 스피노자가 신을 생각하듯 작업한다 : 《모든 특징을 나타내는 유일한 소재》로써 말이다. 메취는 공간을 《만드는》그런 강력한 도상을 배치하지 않는다. 베르메르가 여인의 머리에서 지도에 이르기까지 진주빛이 퍼지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 반면에, 그는 일상적 풍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메취는 지역적이고, 베르메르는 세계적이다. 진주는 사실 동양에서 소행성으로 여겨지는 보석이며, 생동감을 보여주는 구체이다. 그 안에 빛과 광물의 태양이 음악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메취의 민중선동적인 풍경
베르메르는 11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의 가족의 행복은 의붓어머니로 인해 방해받곤 했다. 그는 빚을 진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그는 그렇기때문에 인간이 가진 거침을 증명해보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추상적 요소를 구축하기 위해 그것을 고립시키곤 하였다. 몬드리안처럼! 그는 생을 기록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메취는 게으른 풍경을 강조할 뿐이었다...감정(욕망, 슬픔, 고독, 음악 등)은 베르메르를 통해 기하학적 풍경으로 드러나곤 하였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바가 베르메르의 숭고한 아름다움이냐 메취의 민중 선동적인 풍경이냐에 달려있다...■
출처 : 102-105page, beauxarts magazine, 2011.
기사 : Thomas Schlesser & Pierre Sterckx
번역 : PLONGEUR ( zamsoobu )
기사 : Thomas Schlesser & Pierre Sterckx
번역 : PLONGEUR ( zamsoobu )
- Jan Havicksz. Steen (Leyde, 1625 ou 1626 – enterré à Leyde, le 23 février 1679) est un peintre néerlandais (Provinces-Unies) du siècle d’or. Représentant du baroque, il figure parmi les peintres de genre néerlandais les plus importants de son époque. Il a peint quelques centaines de tableaux, de qualités inégales, mais caractérisés, surtout, par la connaissance du cœur humain, l’humour, et une utilisation exubérante de la couleur. Il représente fréquemment des valeurs morales dans des scènes du quotidien, en recourant à des images la plupart du temps symboliques. [본문으로]
- Rembrandt(15 juillet 1606 - 4 octobre 1669) 유럽 바로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주요한 거장. [본문으로]
- [Pieter de Hooch, 1629. 12. 20~1684. 3. 24]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페르메이르와 함께 델프트 화파를 대표하며, 중산층 가정의 고요한 실내와 정원 풍경을 평온하고 정갈하게 그렸다. 소박한 그의 그림 속에는 일상이 가진 꾸밈없는 진정성을 느끼게 해준다. [출처] 피터르 더 호흐 [Pieter de Hooch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 Meissonier Jean-Louis-Ernest [본문으로]
'★자료.번역(;Recherche > 예술가(;les artist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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