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정신, 왜 프랑스인가

 

 

 

미약한 정신, 왜 프랑스인가.

금요일 이지만, 8월 바캉스 기간이라 7시에 가게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다. 나는 쇼파에 앉아 낙서장을 끄적인다. 의자를 그릴까, 물컵이 놓인 냅킨을 그릴까. 가게에서 쓰는 볼펜 중, 가장 부드럽게 쓰여서 손에 잡게 되는 노란 볼펜을 집는다. 아시아나 에어라인.  ASIANA AIRLINE.
뎃셍 한 편을 다 그려놓고 문 밖의 풍경을 창틀까지 그리던 참이다.
문을 연지 한 시간이 넘어서 한 커플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 20분이 지나 한 중년이 혼자서 느긋하게 들어온다. 아직은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겹쳐지는 모습이다.
먼저 들어온 커플은 바베큐 세트 메뉴를 시키고, 홀로 온 중년은 소불고기 바베큐와 소주 한병을 시킨다. 주문한 소주를 가져다주니, 으레 대포집에서 하는 것처럼 팔꿈치로 툭툭 밑둥을 치고는 조용히 뚜껑을 딴다. 수돗물이며, 반찬이며, 공기밥이며 하는 것들을 서빙하고 나는 손바닥만한 노트를 펴놓고, 이 세명의 손님들이 바베큐를 먹는 동안 주변을 그리기 시작한다.
개수대와 수세미. 주방세제.

고기타는 냄새가 난다. 커플 테이블에서 아마 불판을 태우고 있나보다. 새로 종이를 가지고 가서 갈아준다. 문득, 그러고보니 혼자 온 중년남이 예전에 마누라와 같이 왔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 단골손님인 듯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옆에서 보며,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구나 어림짐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젓가락을 접시위에 내려놓는다. 아직 양념 소불고기는 5분의 1정도 남아 있다. 그냥 지나칠 까 하다가, 말을 걸어본다. 저번에 부인이랑 2번 테이블에 앉지 않았었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아저씨는 부인이 바캉스 갔다며, 너무 힘들다며 푸념을 한다. 그렇게, 아저씨와 몇마디 나누며 결국 소주 한잔 얻어마셨다.
이야기는 '바캉스'주제로 흘러갔고, 듣다보니 이 아저씨는 섬유수입 쪽 일을 하는데, 한국하고도 연줄이 닿아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24시간 일을 하는 것 같다며, 언제든지 이쪽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이메일이나 전화로 문의하면 즉각 대답을 한다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우리한테는 '빠르고 신속한 일처리'가 당연한 데, 바캉스를 한달에서 두달여간 떠나는 이 나라는 놀랄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바캉스로 인한 '공백'은 행정처리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관공서, 학교, 일부 은행, 식당, 점포, 심지어 이들의 주식을 책임지는 빵집도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 

그래서 파리는 주머니 털린 것 처럼 텅텅 비어버리게 된다.

아무튼 아저씨가 아까 뭘 그렸냐면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고 한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 했다. 왜냐하면 아저씨 테이블과 내가 서있는 바 테이블 쪽은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내가 있는 쪽이 더 높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만약, 뎃셍을 할 때 나오는 특유의 손짓을 미리 알지 못한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그에게 뎃셍노트를 보여주었고, 우연히 그날 그린 '아시아나 에어라인' 볼펜에 여물지 않은 향수를 멋적게 적어놓은 터라 나는 더더욱 쑥스러워졌다.
순간, 문득 나는 '고향을 그리워 하는 순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 그렇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미 그는 '아내가 떠난 빈자리'에 대한 향수를 내 가벼운 뎃셍에서 발견하고, 공감을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의 아내가 바캉스를 간 지는 이틀이 지났다.
내가 한국을 떠난 지는 6개월, 아니 작년 부터 셈으로 치면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나는 그에게 '당신의 부인이 떠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처럼 느껴지듯이, 나도 6개월간 한국에 떨어져있었지만 마치 몇년이 지난 듯하다' 라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그와 나는 잠깐의 묘한 동질감을, 물론 그 종류와 질량과 농도는 다르지만, 서로의 것을 각자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팁으로 5유로를 남기고 갔다. 나는 순간 또 기분이 좋으면서 마냥 좋지는 않은, 슬프면서 또 마냥 슬프지많은 않은 애매모호한 감정이 들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수줍게 놓인 5유로. 
그리고 그가 내게 화두처럼, 한숨처럼 툭 하고 내뱉은 질문,
왜 프랑스인가. Pourqoui la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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