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와 연애의 상관관계




연애를 하려면 애교가 필요한가. 지금 그 '애교'에 대해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다. 외동딸이 애교가 많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나는 거의 외동아들에 가깝다. 

사람과의 사귐에서 이 '애교'라는 게 서로의 거리를 가깝게 할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강사장이  내게 자신이 시범으로 보인 '애교'를 내게 해보라고 했을 때, 난 뿌리깊게 내려박힌 '애교 거부증'을 새삼 느낀다. 어떻게든 그 거부감을 이겨보려고 했지만, 비슷한게 콧소리를 내며 따라하는 순간, 귀 뒷쪽에서부터 소름이 쫙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그 사장은 이런 애교를 아무나에게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에 들거나, 마음을 끌어야 하는 상대에게만 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애교'가 없는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아버지가 군인이다, 부모님 모두 경상도 분이시다, 하루에 집에 하루종일 같이 있어도 세마디 정도 한다, 밥먹을래? 청소해라, 빨래있냐. 물론 세 마디가 열마디가 될 때도, 폭풍 싸움으로 인해 셀 수 없이 말을 많이 할 때도 있다.

아무튼 그런 말들로 나의 '무애교'를 정당화하려 했지만, 사장님은 끊임없이 '애교 시범'을 보이며 내게 따라하도록 하였다. 문득 우리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어딜 가서 싸워도 '남편 있는 여자'는 먼가 당당하다고. 그러했다. '남편 없는 여자'인 나는 한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애교 강연'을 고스란히 받아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이래로, 나는 다음 만날 때까지 남겨진 숙제를 곱씹으며 생각하였다. 내가 애교가 없는 건, 절간같이 조용한 집안 분위기 때문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서투르다는 건, 그만큼 그 감정표현에 대한 부분을 무시해왔다는 것이며, 그런 태도를 고치려는 필요성이나 동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 애교라는 건 '가식'이라고 생각해왔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데 그런 척, 있는 감정보다 더 부풀려서 표현하는 건 '거짓'이라고, 나는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계속 되뇌었다. 그래서 마음에 없는 소리는 하지 않으려 했고, 정말 불가피하게 그런 '착한 거짓말'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아, 이 사람이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구나'라고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이런 '영혼 없는 말'은 정말 '영혼 없이 하는 말'처럼 내뱉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려 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어느 경우에서는 '결벽증' 처럼 내비친다. 초등학교 때, 학원 선생님과 학원애들끼리 간 떡볶이 집에서, 내 앞접시에 있는 라면사리를 먹으려는 순간,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넌 결벽증이 있어, 그것만 좀 고치면 좋을 텐데."


그렇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람 결벽증'이 있다. 본질적으로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상대와 무조건적으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고, 내 감정을 무의미하게 지어내고 싶지 않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유레카! 나의 '무애교'의 뿌리를 찾아나선 지, 몇일 만에 마치 깨달음을 얻듯이,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 내 은밀하게 깊은 그 곳에서 고이 잠자고 있었다.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몰랐어? 왜 몰랐어, 내가 있는지? "

 사람이라면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이 단점을 나는 잘 포용하지 못한다.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도, 저런 점이 싫고, 그런 점은 괜찮은데, 이런 점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사귀다가도, 어떤 점이 거슬리거나 삐걱거리면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다. 대화로 풀거나 어떤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채, 귀찮다거나 시간 낭비라는 핑계를 대며 쉽게 '사람을 정리'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애교의 기술'을 부질 없는 것, 아니면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요구할 때 쓰는 간교한 기술 즈음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흔히, 여자들이 남자친구 앞에서 가방을 사달라고 하고 싶은데, 직접 말하기 자존심 상하니까 그런 교태로 주머니 털어내려는 수작 즈음 말이다. 하지만, 뭘 그리 비꼴 필요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 애교스러운 몸짓이 자연스러운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삶의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 가식적 행위로만 볼 건 아니라고 본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되는 거다. 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