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

 

예고 없이 내리는 비를 맞다가, 안 되겠다 싶어,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곳.

갑자기 어둠이 엄습한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바짝 좇아온 무겁고 습한 침묵을 뚫고 앞으로 간다.

돌과 부츠의 뒷굽이 부딪히는 소리.

또각.

또각.

내 한걸음 한걸음을 내 귀는 정확하고 뚜렷하게 듣고 있다.

 

젊은 금발이 출렁이던 거리에서 처음 휩쓸려 들어올 때는 단지 어두움만 있었는데,

차츰 어슴프레하게 내부 윤곽이 들어온다.

천장의 궁륭, 기둥의 장식, 빛 바랜 성화, 섬세하게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

 

이끌리듯 들어간 기도실에는 빈 의자들만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기도'를 하기 위해 '기도할 누군가'를 정해야 할 것만 같다.

미처 '그 누군가'를 찾지 못한다면,

'나 자신'의 지친 다리와 욱신거리는 허리를 쉬며 잠시 눈을 감고 명상한다.

 

그렇게 파동없는 진공 속에 죽은 듯 숨을 고른다.

숨을 쉬며, 축축하게 젖은 돌과 벽냄새를 맡는다.

 

한동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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