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저 집, 그리고 이 집 ⓐ
그 집, 저 집, 그리고 이 집 ⓐ
한국에서부터 떠나기 전 걱정거리야 많았지만, 그 중에 제일을 꼽자면
그 중에 하나가 집 문제였다. '파리'는 집 혹은 방을 구하기가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도시로 알려져있는 터라, 미리 걱정해봐야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고생길에 대한 예감에 계속 골머리가 아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막연했지만 그 예상대로 이 곳에 온 후로 한달여간 집 문제로 씨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으로서, 여기 이 집에 들어온 지 4일째, 이 곳이 내 집이다, 라는 생각때문인지, 만족스럽다. 이 집을 처음 들어오고 나서, 장갑으로 무장하고 화장실 변기, 욕조, 바닥, 세면대를 왁스로 닦고, 여기에 이어 냉장고를 공략했다. 채소칸에 100여년은 된 듯한 정체모를 찌꺼기를 뜨거운 왁스물을 적신 수건으로 불려서 수세미로 박박 닦았다. 처음에 느꼈던 더럽다는 생각도 청소를 하는 순간 만큼은 한낱 일거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청소하니, 오물을 뒤집어쓴듯했던 냉장고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모름지기 냉장고란 '얼룩 송아지'가 아닌 '흰 토끼'일 때가 아름답다...
그 다음은, 냉장고에 이어, 싱크대, 부엌 바닥, 그리고, 내가 들어가게 될 방을 닦았다. 왁스, 고무 장갑, 그리고 청소용 휴지로 세상만사 모두 잊고 오로지 '청소'에 매달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얼마 살지도 않을 지도 모르는 이 집을 왜 이렇게 청소하고 있지?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국의 정돈된 생활에 익숙했던 내 신경세포가 시키는 대로 내 손과 발, 허리는 군말없이 청소하나?'.
마트 영수증을 정리하던 중에 알게된 사실은 청소용품 구매비용이 식료품 비용보다 1.5배 더 많다는 것이다. 속으로 '참, 나도 나다.'하며 웃었다. 어쨌든 청소를 하는 순간은 힘들겠지만, 끝나고나서의 개운함, 비록 배는 고프지만 마음은 내 주변을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다보니 이런 주장이 '청소 예찬론자' 혹은, '프랑스 하녀 협회(그런게 있을 법도 하다) 임원'의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엄마로부터 '더럽다', '네 방 더러우니 치워라'라는 말을 밥먹듯이 들었던 나이다.
# Devant une amboulant a Séoul, l'année précéd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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