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의 본질과 건축물의 창조 : ⓐ영화에서 가상세계까지

어떻게 현대 건축가들(렘 쿨하스, 장 누벨)은 그들의 작업환경 속에서 건축적 상상을 하는가? 렘 쿨하스가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반면, 아피찻퐁 위타세라쿨의 영화 엉클 분미는 지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가족이 아바타로 연이어 등장하는 이 영화로 말이다. 쿨하스는 르 몽드 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자연과 연관하여 새로운 상상력의 도래를 언급한 바 있다.

전시와-선언 《크로노카오스(정밀한 혼돈상황)》

《멈춰진 시간의 흐름에서 어떻게 존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그것은 쿨하스만큼이나 OMA가 던진 물음이다. 바로 그들의 전시《크로노카오스》가 베니스에서 열렸던 것이다. 오늘날 1978년의 프로젝트로 묘사되기도 하는 그것이다. 《생의 연장선》에서 역사 유적을 보여주며-13세기의 라  예 의회건물(네덜란드), 16세기 베니스 상업지구-해체하고, 다시 재건축한다. 역사적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건물에 존재하는 심연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총합을 되풀이한다. 당시 여러 프로젝트는 현실의 부분을 새로이 포장하거나 그 내부에 현실이 내포되기를 바랬다. 과거는 그만의 독자성이 있는 현실로써 간주되었다. 대상과 주변 환경의 공간성을 전체적으로 아루으며 개입이 이뤄진 것이었다. 복합단지를 구성하며 엣것과 새로운 것은 함께 어우러졌다. 현대의 기술로 과거의 건물은 되살아나며, 《그만의 육체와 신체》로 현현한 것이다.
 뉴욕의 몽상은 무한 궤도에 위치한 각각의 도시의 섬에 환상적 자유를 부여한 프로젝트이자 그에 대한 예찬이다. 《크로노카오스》는 《환상의 이론》에 새로운 단계로 접근한 프로젝트이다. 쿨하스는 고맙게도 더욱 막연해졌지만, 동시에 완전히 허구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 : 바로 공상이다. 옛 건물은 현재 주거민과 함께 삶을 공유한다. 마치 엉클 분미 에서 현실과 유령이 삶을 공유하듯이 말이다.

엉클 분미와 현대의 유령


 

 이 태국 영화는 죽음에 이른 분미 유령의 존재(여성과 아들)를 상세히 이야기한다. 이 유령은 가족(조카와 누나)의 일상  앞에 친숙하게 나타난다. 유령이 가족의 집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생활공간은 풍부하게 자연을 담고 있다. 이 관조적인 영화는 오늘날 태국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태국의 대중 문화 코드(전통적이거나 텔레비전의)를 매우 완만하게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자연과 인간과 동물의 영역구분은 폐지되었다.
 구조적으로 연출방식에 있어서 《현실》의 두 영역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도록 신체적 세계와 영계를 긴밀하게 뒤섞고 있다. 영화는 1990년대의 데이비드 린치[각주:1]와 유사하게 현대 영화 창조 계보를 다시 되찾는다. 이렇게 현실의 두 영역의 혼합은 유명한 티비시리즈인 LOST(2005-2010)에서도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제어불가능한 신체적 힘을 가진 마술적인 섬에 조난당하고, 자연보다 유령의 존재를 강하기 느꼈던 60년대의 전자기적-생태계적 유토피아를 재발견하게 된다. 위타세라쿨은 이러한 계보를 유령의 출현과 영화적 현실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전통 문화의 영적 세계와 연결시킨다. 그렇게 반투명 이미지의 연출은 일상에 사라진 존재에 대한 감각을 부여한다. 이러한 유령의 미학은 동시에 현재 넘치도록 증식하고 있는 가상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영화는 도시가 아니라 자연으로 회기한다. 바로 육체적 현실의 장소로써의 자연 말이다 : 유사하게 트윈픽스의 숲, 엉클분미의 정글, 로스트의 마술적 섬 들이 그렇다. 이렇게 현대적 상상력의 계보만큼 유령과 영계의 계보는 환경적 요소와 연관하고 있다.

 허구적 환경의 단계로써의 유령

 환경적 측면에서, 그것은 결국 미래 세대를 위한 지구의 생태계를 균등하게 보존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더이상 자원은 무한정의 것이 아니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생은 소멸의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자연재해의 과학적 분석이 과거에서부터가 아니라 미래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이것은 시간의 논리를 뒤엎는다. 이러한 소급적 미래주의는 현실을 판타지로 변이시킨다.
 우리가 현대 창조작품을 관통하는 직관이나 방법론에서 발견하듯이, 이렇게  시간에 대한 방향을 새롭게 재조정하는 것은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보란듯이 유령을 현실에 위치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현대의 화두인 육체의 현실에 대해 위타세라쿨이 그의 방식대로 변이를 일으키며 합성한 것이다 :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사후를 준비하는 것, 분미에서는 그 이전의 생을 기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인물은 뒷걸음치며 나아가는 관찰자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와닿는 감정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 영화는 미래에 의해 왜곡되고 과거로 회귀한다 : 그리고 여기 현재의 소중한 순간이 있다[각주:2]》 
 쿨하스는 건축을 실현할 때 처음에 개인의 자유와 현재의 현 정세를 나타내도록 꾀하였다. 현재《엉클 쿨하스》는 거의 종교적 설교에 가까울 정도로 과거의 환생과 개개인을 넘어 초월의 경지로 향하고 있다. 그러기에 소비에 좌우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적 건축적 이론가로써, 그가 직관적으로 환경에 허구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놀랍지 않다.


유령의 나선형 구조

 60년대의 정신에 입각하여 쿨하스가 개인의 즉각적인 욕망과 관련한다면, 위태로운 미래에 보다 관련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경험은 소급력을 얻는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가 되고, 판타지가 된다. 유령은 이렇게 동시에 판타지에 연관한다. 그러나 이미 건축에서 잘 알려진 흔적의 미학과 유령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흔적은 단지 사라진 과거의 단편이다. 시간은 점차 흐르면서 현재와 멀어지며 과거로 남는다. 그래서 판타지는 현재만큼이나 과거에 대해 재발견하도록 한다. 단,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그것과 다르다. 판타지는 곧 사라질 미래를 표현하면서 과거의 변형과 환생을 가로지른다.
 그가 베니스에서 실현한 OMA 프로젝트는 건축에 있어 급변의 방식을 보여준다. 나선형의 구조는 열차선로가 겹치는 것 뿐 아니라 건물의 도포에서 사용된 주조물과 덧붙인 자재 간 가까이 겹치는 것을 보여준다 : 14세기의 베니스 공공 장소의 건축물의 천장은 덧붙임방식으로 시공되었다 ; 19세기의 뮌헨의 Hypobank 건축의 표면은 도포의 방식으로 시공되었다 ; 1959년의 중국 국립 미술관 대형광장을 이룬 주조물; 1962년 커먼웰스 협회 주변의 건축물 이전이 그의 행보이다. 가까운 과거는 확신을 주며 현재를 보장하며 수용케 한다. 그와 동시에 평행하며 존재하는 가상 현실은 현재의 생을 소멸하도록 부추긴다. 
 새롭게 등장한 환경의 순간성과 판타지의 그것사이에서 이 두개의 반反-프로젝트에 의해《생의 연장선》프로젝트는 대중에게 공개되어 알려진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닫히기에 이른다. 전자는 리비아의 와핫 알의 사하라 지역 보존과 관련하고 있다. 그는 마치 모든 도시의 지층에 관련한 전시를 열려는 듯 보였다. 한편, 그는 그곳의 수감소에 부속된 면회 공간을 추가로 건축하면서 태양열 판을 이용하여 《거의 아무것도 아닌》것인 현실의 삶을 제공한다. 그렇게 그곳에 지면에 태고의 아무도 범접하지 않은 건물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이 최근의 OMA프로젝트와 관련한 이미지는 메종 드 보르도 프로젝트에서 다시 나타난다. 역사 유적지로써 더이상 변형할 수 없는 그곳에서 그는 자연 속으로 침잠하도록 한다. 에스컬레이터(이동식 사무실)의 플랫폼 주변을 숙고한 끝에, 그리고 현재는 작고한 소유주와 협의 끝에 그는 그곳에 움직이는 의자를 놓는다. 쿨하스는 이렇게 기억한다 : 《 뒷편으로 제쳐놓은 빈 그릇은 나의 환경이 가진 엄격함- 부성, 고통, 호전성, 사랑-으로 가득 찼다. 그것들은 내가 가족에게서 늘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다. 》붉은 색의 거대한 털이불이 점령한 판은 고인을 상기시킨다. 이 털이불은 전시의 중심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 비관주의자이자 영리한 건축가는 그곳에서 영계의 또다른 면을 보여준다. 보다 비극적이면서, 보다 현대적으로 말이다.
 그의 전시《Cronocaos》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결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현재로 재편입시키며 18세기 말의 건축을 중첩시킨다. 물론 이런 작업은 소규모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러한《문화 유산》의 삽입은 아마 하나의 방식으로 견고해지고 있거나 적어도 자연의 순간성에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생이나 존재의 순환주기처럼 말이다.

현대 건축 계보로써의 영계
 
 영계는 확실히 현대 건축계에 창조물들을 차지하는 주요한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쿨하스가 역사적 차원을 탐험하고 있다면, 그는 동시에 다른 면을, 예를 들어 반투명자재도 다루고 있다. 영계는 그래서 에너지의 유동적이며 비가시적인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 필립 람[각주:3]이 말하듯, 드뤼오나 재건축에 새로운 무책임한 골조만이 남아있는 라카통-바셀[각주:4]이 보여주듯 말이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는 《메트로폴리스》전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곳에서 도미니크 페로에 의해 조직된 프랑스관 전담반은 관람객을 가상의 존재로 변형시킨다. 설치물은 도시의 공허함을 주는 역사적 유적지의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여 벽에 투영시킨다. 역설적으로 이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영상 속 인물들은 현존하는 듯 보이며, 방문객들은 오히려 부유하는 그림자로 보인다. 피와 살을 가진 유령처럼 말이다...■ 

출처 : D'ARCHITECTURES N˚196. 2010.12
번역 : zamsoobu (Plongeur)
  1. David Lynch (1946-) 미국의 영화감독. 1977년 《이레이저 헤드》를 개봉하여 컬트영화로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엘리펀트 맨》, 《블루 벨벳》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컬트의 왕'이라 불리며 사회의 변두리를 돌면서 악취미로 대중을 공격하는 컬트 감독으로 유명하다. [출처]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2. 감독 위타세라쿨과 까이에 뒤 시네마 紙의 인터뷰 中 [본문으로]
  3. Philippe Rahm(1967-)건축가 [본문으로]
  4. Frédéric Druot Lacaton-Vassa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