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기 전 짐을 줄이기 위해 버린 물건 #8 벨크로 스니커즈

 

너를 인터넷으로 처음 봤을 때 선뜻 결제를 하지 않았지.

한동안 장바구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너는

같은 스니커즈라도 벨크로는 뭔가 딱 맞는 느낌을 주고

끈 으로 묶는 타입은 느슨한 느낌을 준다.

각각 신고 적응이 되다보면 그다지 차이는 못 느낄테지만

너는 결국 택배상자를 타고 우리집 현관을 넘어오게 되었어.

오커색 하이탑 벨크로 스니커즈

아니나다를까 싼 가격 때문인지

마지막 벨크로가 길이가 짧아 여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강력본드로 마지막 벨크로를 붙여버렸지.

강력본드는 재질을 녹여서 경화시키기 때문에 그 발등 부분이 딱딱하게...

너의 피부는 그렇게 굳어버렸다.

나를 원망해서는 안되었다.

네가 먼저 그렇게 입을 닫지 않고 칠칠치 못하게 떠벌거렸기 때문이야.

그렇게 몇년여간 함께 지냈던 우리는

비오던 어느날 내게 너는 크나큰 미끄러짐을 선사하고

아픔을 주었어.

나는 가차없이 너를 버려야겠다고 했지만, 맑은 날만 너를 데리고 나와 숨을 쉬게 했었지.

 하지만 역시

세월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깔딱거리는 너를 나는 버리려 한다.

발등의 까끌거리는 느낌을 주며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너는 이제 내게 없는 존재이다.

결국 상대의 존재감도

아픔보다

열락일 때 반겨줄 수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