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저 집, 그리고 이 집 ⓒ

그 집 저 집, 그리고 이 집 ⓒ

 

 

 

 

<중간 계류지에서 펼친 내 전기 장판 ; 씁쓸하고 서운한 기억. 두냥짜리 집에 닷냥을 내면서도 헛간에 쭈그려 자야만 했던 방랑객 박아무개씨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이런 말이 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

그래, 옛말치고 틀린 것 없다더라. 그렇게 넘겨버리라.

 

하면서도 생각하면 할 수록 열불나는 그런 상황이 이 곳에선 종종 벌어진다.

처음 이 곳에 와서 한달 간 머물렀던 BOURG LA REINE 에서 VILLEJUIF 로 이사 가기 전,

일주일간의 공백기간이 생겼다. 민박집에 머무를 까 하다가, 없는 형편에 부담이 되어서

굳이 한인사이트에서 단기 임대 공고를 찾기 시작했다.

내 잘못은 거기, 궁상을 부리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나라 특유의 '거주'라는 방식에 유학생들이 길들여지면서 가지게 된 숨겨진 면면들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이 잘못이었겠다.

 

단기 임대는 하루당 임대료를 받기 때문에, 나로서는 하루라도 단기 거주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처음에 숙박 기간을 10일이라고 메일을 보냈던 것에서 7일로 변경했다.

이 시점부터 집주인은 빈정이 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체 하였다.

 

이사 비용을 아껴보겠노라고 십여키로 되는 가방과 짐보따리를 여러번 걸쳐서 꾸역꾸역 옮기고 나니, 어느새 20평방 미터즘 되는 원룸 한 켠에 낮은 벽이 만들어졌다.

 

이 집주인은 룸메이트가 여행을 가서 그 동안 숙박객을 찾았노라고 이야기한다. 보아하니, 어느 남자와 동거를 하는 모양이었다.  동거를 한다는 사실보다 굳이 왜 남자와 살고 있는 흔적을 감추려고 한 점이 이상했다.아무튼, 나는 일주일간만 몸을 뉘일 공간이면 족했다.

 

이 집주인인 박 양은 곧 어학 시험이 있다고 한다. 아침 시간이 되어, 나는 배가 고파 사과를 꺼내 깨문다. 한 줌의 음악도 없는 20평방 미터의 공간에서 '사각 사각' '와드득' 소리가 동굴처럼 메아리친다. 150 센티 남짓한 책상을 가운데에 놓고, 한 사람은 책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없이 필기를 하고, 한 사람은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며 사과를 우적거린다.

 

나는 비록 일주일이지만, '사람 사는 훈훈한 분위기'를 위해 하나 마나 한 날씨이야기며, 동네 이야기이며 시시콜콜한 주제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 친한 분위기를 애써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녀는 냉랭한 분위기로 일관했다. 나는 그것을 좋게 넘길 만큼 변죽이 좋거나 능청스럽지 못했다. 한두번의 시도가 땅에 떨어져서 소용이 없어지고, 더불어 내 잠자리가 아직 우풍이 들어 냉랭한 창가로 정해지자, 더 이상의 '가식적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인간적인 대우'는 제쳐두고 어서 시간만 지나가라, 염불 외우듯 바라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VILLEJUIF쪽 집주인과 이야기해서 이사날을 하루 더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일주일치 선불금을 낸 상황이라 하루치를 돌려받을 수 있을 지 물어보았다.

 

 

하루치 숙박비를 돌려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요구가 그렇게 실례가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구두 계약이지만 거창한 문건도 아니고 협상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안되면 할 수 없지만.

이래서 나는 된통 서리를 맞게 되었다.
그 하루치의 환불을 요구하게 되면서, 나는 그녀로부터 '남 사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사람', 그리고 '참 염치도 좋은 사람', 더불어 '이런 생활도 안해보고 개념없이 구는 사람'이라는 욕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참을 수 없었던 말은, 내가 나간 뒤에 자기의 집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말인 즉슨, 내가 무언가 훔쳐갈 수도 있으니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서로 안좋은 감정에서 튀어나온 말이라 넘겨버릴 수 있겠다만, 이미 원룸에 일주일간 머물겠다고 한 순간부터, 숙박 시작일 전에 미리 내 가방들을 옮겨놓은 순간부터 암묵적인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날벼락 같은 말이 내 머릿뚜껑을 가볍게 열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이미 저런 사고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진 그녀에게 내가 말을 보태보았자, 그냥 반사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그 박양 집에 얼마나 귀중품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노트북 및 아이패드, 아이폰 등등 내 짐들도 못지 않게 값비싼 것이 있다고 주장해보았자 유치해졌을 게 분명하다.
 
그것은 나의 착각.
그것은 나의 오류.
그것은 나의 섣부른 믿음.

이 경험 만으로 '집없는 설움'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느냐만은, 그것은 '설움'보다는 깊지 않지만, '설움'에 비견될 만큼 씁쓸하고 화나는 기억이다.

그리고 장담컨데, 융통성이라고는 개미똥만큼도 없는 그 박양은 결코 그녀가 원하는 모 건축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 내가 그녀의 풍경 드로잉을 우연히 보았을 때,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보았던 그 드로잉은 그러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