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한국에서 산 방문 판매 전문 화장품, 코리아나 진주 앰플.

나는 10만원에 호가하는 화장품을 '연애'를 위해 샀었다. 상대방에게 진주같이 뽀얗고 맑은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거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 20병의 앰플 중 3개를 마저 다 쓰기 전, 나는 그 짝사랑을 접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미 '좋은 직장'의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나는 그 짝사랑이 무색해진 이후에 한동안 이 화장품을 아껴놓았다. 더이상 누군가에게 잘보일 이유가 없다는 허무감때문에 서랍에 쳐박아놓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유통기한이 걱정되어 마지못해 쓰다가 결국 이 먼 타국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여느 화장품같이 무심하게 쓰레기통으로 날리기 전에, 마지막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내 짝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허무한 장롱 구석 먼지덩어리같이 볼품없어보이지만,

감정이란게 사물에 한번 깃들기 시작하면, 이렇게 빈 케이스를 붙잡고 '그림이나 그리고 앉아있는 한심한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젠장. >

 

 

나는 요즘 걸어다니고 있다.

나가면 걷는 게 당연한데, 굳이 '걸어다닌다'라고 말한 이유는

집에서 일터까지, 일터에서 집까지, 혹은 일터에서 파리 곳곳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기 때문이다.

 

나비고를 잃어버리고 난 후, 몇번의 무임승차 후에, 결국 나는 뚜벅이로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벨리브'라는 파리시청에서 운영하는 '공용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아마 저저번주가 '벨리브'를 처음 타기 시작한 날이었다. 반갑게도 빗방울이 귀찮게 굴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자전거 정차를 잘못 해서 11유로 벌금을 낸 일 빼고는, 믿음직한 내 두발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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