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라는 괴물의 힘.

 

< 파리 카톨릭 어학원 (Institut Catholique de Paris ) 앞 ; 비가 꽤 많이 오는 날 ; 한 소녀의 눈길이 향한 곳은, 정장을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오피스걸. 이 여자의 우산은 아쉽게도 반토막나있다.

그래도 비를 피하려면 어쩌겠나. 그거라도 붙잡고 있는 수 밖에...>

 

결국 외로움이라는 괴물은 나를 엉뚱한 지경으로 몰고왔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에서 '길을 잃었다'

 

금요일, 주말을 기대하는 순간에, 일이 끝나고 제이와 엠, 그리고 나는 샹젤리제로 갔다. 제이가 여행사를 예약하려고 가는 길에  따라간 것이었다. 제이가 볼일을 보는 사이에 엠과 나는 주변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시간을 떼웠다.

 

한참 붐비는 대로변에서 모퉁이를 돌아 카페에 앉았다. 옆골목으로 왔을 뿐인데, 다른 외곽지역으로 온 것 정적이 갑자기 덮치며 마냥 조용하다. 변화무쌍한 이 곳.

그리고 내 작은 바람. 거리를 홀로 지나가면서 가졌었던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가졌던 작은 바람.

카페 테라스에서 햇빛을 맞으며 친구이든 가족이든, 비지니스 파트너이든, 그 누구이든지 간에 '무리' 속에 섞여 수다를 하염없이 즐겨보는 것.

그것이 내 작은 바람. 그게 이루어지는 순간, 감개무량하다.

 

엠이 사주는 맥주를 앞에 놓고, 엠은 카페 쇼콜라, 제이는 카페 글라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부질없는 짓인줄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달리 무엇을 하겠냐.

 

이야기를 나눈다. 가게 이야기, 일 이야기, 사장님 이야기.

주제는 어느새 '나'로 돌려졌다. 다들 나보고 한결같이 말한다.

'특이한 아이'. 하지만 나는 그 수식어가 달갑지 않다.

사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특이하지 않은 사람'이란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굳이 감추려고 애쓰거나 평범한 척'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BRUT

이 것이 나의 전제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제이의 애인이 합석하였다. 그녀는 샐러드를 시켰다. 도시공학으로 이번에 파리 대학에 합격한 차에, 등록처에 들렀다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뭐하다 오셨어요?'

이 질문에 나는 '번역'을 했었던 과거 7개월의 이력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장황하게 늘어놓고 보니, 필요이상으로 이야기한 느낌이다. 어떻게든 작아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빨간 서류철을 악세서리 삼아 당당했던 그녀 앞에서, 그저 '식당 부엌데기'라는 인상을 주기는 '죽기보다 싫었던 모양'이다. 내 자존심이 그랬다.

 

 

결국, 이야기는 '내 실수담'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제이는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일을 해왔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하지만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재차 듣고 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그 참에 그 제이의 애인이 내게 말했다.

"지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이렇게 빠져나가고 있죠?"

 

나는 대뜸 이야기 했다.

"아뇨, 짜증이 나요." 그리고 이어서, 나는 그렇게 이야기해야 했다.

제이는 일 적인 부분에서 충고를 했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차분하게 수긍을 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양해를 구해야 했다. 나는 조금도 감정적으로 흥분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짜증'이 난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순간만의 '짜증'을 넘어서 그 간 눌러왔던 '감정'이 스멀스멀 밀려오더니 터져버렸다.

 

그렇게 나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햇살 좋은 한 낮, 일이 끝나고 한가로이 카페와 맥주를 즐기는 이 순간.

일행 중의 한 명은 원하던 학교에 합격한 즐거운 이 자리에

주책없이 때를 모르는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 제이는 당황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그를 배려할 만큼 나는 흐르는 눈물을 조절할 여력이 없었다.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줄줄. 줄줄.

 

카페에 직원이 흘끔거리며 신기한 구경마냥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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