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의 본질과 건축물의 창조 ; ⓓ 텔레비전과 자연의 실종

 전자 이미지의 발명은 이미지의 위상을 바꿔놓았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미지는 재현의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이미지를 의식과 시선이 순간적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또한 텔레비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순간성이나 즉각성은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즉각성은 또한 사라질 때도 작용한다. 50년대 후반에 텔레비전 이미지는 어떤 직접적인 각인이 없이 쉽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미지의 새로운 형식은 자연과 이데아의 세계에서 그것이 적응을 하도록 스스로 변형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적어도 자연이 비슷하게 모사되는 한에서 말이다. 텔레비전의 권력은 동시에 자연을 제2의 형상으로 머무르게 하고 있다. 이데아의 세계로의 회귀인 것이다. 바로 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탓이다.  


풀러, 콘스탄트, 프리드만, 아키그램[각주:1] :
공동체에 살다

텔레비전의 순간성으로 현실과 삶을 구성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50-60년대 말에 건축적 유토피아의 핵심이었다. 이 한가운데에 풀러, 콘스탄트, 프리드만과 아키그램이 있다. 텔레비전 상상은 전적으로 탈지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텔레비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세계화된 도시, 행성의 무한함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 혹은 공기 중에 메세지를 발신하는 주파수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지속 가능한》유토피아는 이제 주요 단어가 되었다. 이 말은 전적으로 단어에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실제 장소란 없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행성에서, 아연실색한 진공은 이제 사건의 장이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사라져버리고 마는 텔레비전 이미지만큼이나 불명확한 주거민들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상호작용하도록 계속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과 상관이 있다. 건축은 이제 소통을 활성화하려한다. 이런 현상은 교통수단, 이동수간과 모든 통신수단(라디오, 전화, 텔레비전) 네트워크들에 의해 더욱 굳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항상 이동 중이며 이 거대 구조에 편입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화와 자동화, 그리고 첨단기술의 위상에 의해 달라진 신체적 현실에 대해 우리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네트워크 세계에서 사람은 항상 이동 중이기 때문에 한 곳에 존재할 수도 혹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 신新 바빌론 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공간에서 무한히 뻗쳐나가는 거대 구조이다. 이 구조는 일종의 전차처럼 삶과 직접적으로 항상 연결되어 닿을 수 있도록 연속적이다. 대지의 표면 위에 위치하며, 이 환경적 구조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우선 텔레비전에 의해 라디오주파수는 시각적으로 보이며, 텔레비전에 의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순간마다 가정에서는 그 이미지가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그 여정은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의 새로운 신화는 요나 프리드만[각주:2]이 구상한 메가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기존의 도시 위에 다른 조밀한 구조를 구상하였다. 런던에서 아키그램 그룹은 황량한 지역이나 농촌지역을 방랑하는 거대한 괴물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자동차는 현실과 이미지가 뒤섞이는 장소가 되며,  앞 유리창으로 바깥이 풍경처럼 보이는 개인적 공간으로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전자기술적 접근을 하면서 한변 로버트 벤츄리[각주:3]    는 라스베이거스를 해석하려 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간에 드러나는 특별함은 자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는 것이다. 현실은 더 이상 자연의 세계가 아니며 우리를 둘러싼 것은 다른 곳으로 곧 사라져버릴 순간에 다름아니라는 인식이다. 순간적 현실은 곧 초월적 현실로, 가상의 현실이 된다. 신체적 현실은 의식 속에만 존재하며, 이제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 순간적 세계에만 몰두하는 동시에 변천하며 역동적인 세계를 주저앉게 한다. 실현시키 위해 필요한 첨단기술에만 빠져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처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우리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 
 




출처:  D'ARCHITECTURES N˚ 196,  2010.12, 43-45page.
번역:  Plongeur ( zamsoobu )


  1. Archigram 1960년대 런던에서 구성된 아방가르드 건축집단 [본문으로]
  2. Yona Friedman (1923,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본문으로]
  3. Robert Venturi (1925-) 미국의 건축가. 필라델피아의 길드하우스 요양소, 프랭클린재판소 등을 건축했다.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을 통해 유럽 건축역사를 고찰해 주목받았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으로 미국 건축현실에 대안을 제시했다. [출처] 로버트 벤투리 [Robert Venturi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