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의 정글의 법칙_한 방울의 눈물
김병만과 정글, 왠지 안어울릴 듯하면서 어울리는 조합이다. 개그맨 김병만은 '달인'캐릭터로 일반인이 쉽게 따라하기 힘든 기능이나 적응하기 힘든 환경을 헤쳐나가는 시츄에이션 코미디언이다. 그가 정글에 실제로 가서 일주일간 생활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다니, 분명히 재미가 있을 것이었다. 어떤 상황들이 벌어질지 호기심으로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동료이자 후배인 류담, 모델 겸 배우 리키 김, 아이돌 황광희이 함께 한다. 이들은 처음 무인도 악어섬에 도착하여 집을 짓는다. 이 무리의 리더로 주도적으로 지휘하려는 일원론적 체제의 김병만과 합리적으로 더 나은 방편을 찾으려는 다원론적 체제의 리키김이 충돌한다. 김병만은 하나의 목표, 단일한 지도자 아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를 원하고, 리키 김은 문제가 난관에 부딪히면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유형이다. 이둘은 육체적 한계와 정신적 피로감으로 예민해진 가운 데 감정적으로 충돌한다...
내가 금요일 저녁, 토요일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과 해방감으로 밤잠을 미루면서 생방송을 사수하며 보는 프로그램이 이 '정글의 법칙'이다. 저번주 11월 18일 방송에서 그들은 일주일간의 사투를 뒤로 하고, 직접 만든 침몰직전의 뗏목을 타고 악어섬을 탈출했다. 그들의 목숨줄을 조여오며 시험에 빠뜨렸던 그곳을 막상 떠나려니, 아쉬움과 정이 발끝에 채이는 일행들의 모습이다. 그 위험천만한 탈출(어떻게보면 뒤따르는 안전요원도 있고, 생각보다 유속이 느리거나, 제작진의 사전 모의탈출로 안전이 검증이 되어 있겄겠지만)을 나는 단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야심차게 뗏목을 만들어, 탈출할 때의 안도감은 잠시, 곧이어 점점 물이 차오르는 것과 난생처음 뗏목을 끄는 경험이 하필이면 악어가 득실대는 낯선 공포의 강 한복판이라는 것, 그리고 어물거리다가 물살에 휩쓸리면 여지없이 폭포로 떨어지게 될 거라는 불안감으로 한걸음도 옮기기 힘든 공포에 휩싸였을 지 모른다. 사지가 후들거리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아랫배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나는 단지 이국적인 풍경처럼, 여름특집에서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는 선남선녀 연예인들의 물장구쯤으로 보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들을 그런 처지로 내몬 제작진이 한편으론 야속하게 느껴지면서도, 결국은 그것을 즐기는 나 자신이 일면 가소로워졌다.
그건 바로 김병만의 눈물때문이었다.
"건너와서 말하지만...나 힘들었다.."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토해내는 그 말 속에 묻어나는 진심이 내게도 전해져 목구멍을 뜨겁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을 예능인으로, 그들의 상황을 예능처럼 연출가에 의해 불편하지 않게 볼 수 있도록 잘 다듬어진 편집본을 보았지만, 그들은 그 상황 속에서 실제적인 고통을 느끼며 24시간*7의 물리적인 시간을 분분히 견디어낸 것이었다.
더구나 악어섬에서 꿋꿋하게 일거리를 찾아서 해나가고 동생들을 챙기며, 또 감정적으로 제작진에게 강하게 항의하던 그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처럼 억척스럽고 종종 농담이나 개그를 하면서 능청맞도록 태연했던 그도 속으로 울음을 그렇게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체 하고 있었다는 거다.
나는 그의 마음 속 한결한결을 다 벗겨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 처한, 그리고 이겨내고 난 이후의 한 인간의 상반된 면모를 보는 순간, 알 수 없게도 눈물이 났다. 나는 김병만, 그 처럼 이타적이지도, 책임감있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큼 강한 아버지의 유형이 아니다. 혹은 강한 어머니이거나.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나라면...만약 내가 장군이라면, 만약 내가 여배우라면, 만약 내가 남자라면, 하다못해 만약 내가 투명인간이라면 이라는 가정...뭐, 이런 가정은 부질없다.
어쩌면, 포기하고 백기를 들지도 모르겠다. 비록 일주일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느낀 시간은 몇곱절이었을 것. 문득 채플린의 말.
가까이 보면 비극인 것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나는 어느 희극에서 살고있나.
가까이 보면 비극인 것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나는 어느 희극에서 살고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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