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 프랑스 회화의 유사성 _ 인터뷰 조 피프 와 그웨나엘 켈리두
1970년대에, 젊은 프랑스 작가들은 어떤 기준으로 미국 추상주의를 지켜봐왔다. 지금은, 새로운 미국 회화세대들이 파리학파에 대안이 되고 있다.
현대주의의 포환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전후 프랑스의 추상주의 회화는 미국 비평가들에 의해 쇠락했다고 오랫동안 평가되어왔다. 실질적으로 느리지만 진보적인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20여년 이후에, 그룹전시와 논문들이 정기적으로 발표되고, 수많은 비평가들, 자울 오스트로우, 로버트 모간, 그리고 라파엘 루빈스타인같 1은 이들이 프랑스 작가군의 작품을 미국 대중에게 소개하곤 하였다. 이 프랑스 작가군은 노엘 달라 2와 Support-Surface 그룹. 마틴 바레, 크리스티앙 보네포아 3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거나 곡해되고 있는 여러 작가들이 속해있다(1) 4. 이런 경향을 최근 반영하듯이 페인팅 작가이자 비평가인 조 피프에 의해 기획으로 그룹전시회가 2010년 6월 24일부터 9월 3일까지 뉴욕에 위치한 쉐임 앤 리드 갤러리galerie Cheim and Read에서 열린다. 이 전시의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다 : 회화, 프랑스 회화의 유사성. 이 전시는 원래 마틴 바레의 논문에서 정의내린《회화》를 직관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논문은 2009년 1월 미국 예술 에 실린 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기치 못하게 시기가 겹치는 것을 피하며, 파리 학파에 충실한 회화작품들을 모았다. 세르주 폴리아코프, 한스 하툰 5, 그리고 현대 뉴욕 작가, 조나단 라스터, 루이스 피쉬먼 6 등을 재발견하려 하고 있다. 선택된 작품을 보면 1956년 장 포트리에의 작품으로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의 최근부상하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끝난다. 예를 들어 휴앙 우슬레, 다니엘 헤시던스(2) 7이다. 이 전시에서 장 뒤뷔페의 회화를 설명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은 1970년대에 위베르 다미쉬가 사용한 페인팅 의 개념에 대조적 의미로 사용한 회화(타블로) 라는 단어이다. 페인팅이란 단어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에 의해 당대에 정의내린 것이다. 이 타블로란 단어는 50여년 동안 프랑스 회화의 비평계에서 사용되며, 역사적, 방법론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인 도구만큼이나 그 목적으로도 사용되어왔다.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기엔 페인팅painting이나 픽쳐picture라는 단어는 부족하다. 픽쳐는 보다 영상을 규정지을 때 보다 정확하게 사용된다. 그것이 표면에 나타난 것이든 그려진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 그리고 페인팅은 무엇보다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런 행위로 인해 생산되는 것의 연장으로 보는 면이 강하다. 이 두 개의 단어 모두 타블로가 함축하고 있는 이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피프에 따르면, 프랑스와 미국이 서로 다른 접근으로 추상회화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각국에서 진행되는 예술적 프로젝트와 정체성의 연구에서 언어의 역활이 가진 중요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3) 8.
현대주의의 포환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전후 프랑스의 추상주의 회화는 미국 비평가들에 의해 쇠락했다고 오랫동안 평가되어왔다. 실질적으로 느리지만 진보적인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20여년 이후에, 그룹전시와 논문들이 정기적으로 발표되고, 수많은 비평가들, 자울 오스트로우, 로버트 모간, 그리고 라파엘 루빈스타인같 1은 이들이 프랑스 작가군의 작품을 미국 대중에게 소개하곤 하였다. 이 프랑스 작가군은 노엘 달라 2와 Support-Surface 그룹. 마틴 바레, 크리스티앙 보네포아 3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거나 곡해되고 있는 여러 작가들이 속해있다(1) 4. 이런 경향을 최근 반영하듯이 페인팅 작가이자 비평가인 조 피프에 의해 기획으로 그룹전시회가 2010년 6월 24일부터 9월 3일까지 뉴욕에 위치한 쉐임 앤 리드 갤러리galerie Cheim and Read에서 열린다. 이 전시의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다 : 회화, 프랑스 회화의 유사성. 이 전시는 원래 마틴 바레의 논문에서 정의내린《회화》를 직관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논문은 2009년 1월 미국 예술 에 실린 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기치 못하게 시기가 겹치는 것을 피하며, 파리 학파에 충실한 회화작품들을 모았다. 세르주 폴리아코프, 한스 하툰 5, 그리고 현대 뉴욕 작가, 조나단 라스터, 루이스 피쉬먼 6 등을 재발견하려 하고 있다. 선택된 작품을 보면 1956년 장 포트리에의 작품으로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의 최근부상하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끝난다. 예를 들어 휴앙 우슬레, 다니엘 헤시던스(2) 7이다. 이 전시에서 장 뒤뷔페의 회화를 설명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은 1970년대에 위베르 다미쉬가 사용한 페인팅 의 개념에 대조적 의미로 사용한 회화(타블로) 라는 단어이다. 페인팅이란 단어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에 의해 당대에 정의내린 것이다. 이 타블로란 단어는 50여년 동안 프랑스 회화의 비평계에서 사용되며, 역사적, 방법론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인 도구만큼이나 그 목적으로도 사용되어왔다.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기엔 페인팅painting이나 픽쳐picture라는 단어는 부족하다. 픽쳐는 보다 영상을 규정지을 때 보다 정확하게 사용된다. 그것이 표면에 나타난 것이든 그려진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 그리고 페인팅은 무엇보다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런 행위로 인해 생산되는 것의 연장으로 보는 면이 강하다. 이 두 개의 단어 모두 타블로가 함축하고 있는 이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피프에 따르면, 프랑스와 미국이 서로 다른 접근으로 추상회화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각국에서 진행되는 예술적 프로젝트와 정체성의 연구에서 언어의 역활이 가진 중요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3) 8.
그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피프는 독일 예술사학자 아킴 호스도르페 Achim Hochdorfer에 의해 시도된 대화의 연장으로써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그의 논문《은폐된 저장고 : 1958년과 1965년 사이의 회화 》은 2009년 2월 아트포럼 지에 실렸었다. 본지는 이 지면을 빌어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말 그대로 이번엔, 조 피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여 뉴욕에서 펼쳐지는 프랑스 회화신을 거론하고자 한다.
GK
타블로/ 페인팅
■ 이 전시의 제목은 현 예술계의 입장으로써 조금 놀라울 수 있는 예측불가능의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전시를 기획하셨나요?
이 전시는 내가 10여년간 꿈꾸어왔던 것입니다. 파리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어떤 작가들에게 자신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도록 일년에 적어도 한번은 요청을 받았었죠. 동시에 난 내가 만나고싶은 작가들을 연구하곤 했습니다. 난 같은 작가들의 집으로 방향을 바꾸곤 했습니다. 또, 수많은 갤러리, 미술관과 대안공간을 찾아가서 미국 출반계에 나타난 파리지역 작가들에 대해 글을 썼었습니다. 이 논평은 이후에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에서 이어졌죠. 난 뉴욕에서 당장 전시를 열고 싶었지만, 내 작업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었죠.
그래서 수많은 갤러리들에 내 제안을 했지만, 어떤 협력자도 없었습니다. 난 파리로 건너오는 미국 작가들에 대한 단순한 선입견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경에, 파리와 브룩클린에 교류가 있었습니다. 많은 갤러리들이 참여했지만 결론적으로 밋밋해져버렸죠. 2003년경에, 놀랍게도, 사람들은 더이상 프랑스 작가전시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 그래서 프랑스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햇습니다.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난 세르주 귀보(4), Jacqueline Chambon, 1996.이 책은 시카고 대학 출판부에서 1983년 영문판으로 먼서 출간되었다."> 9의 도서에 잘 나타나있긴 하지만 협력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복합적 요소들로 설명되었던 이전의 세대들, 추상 표현주의(프랭크 스텔라, 멜 보슈너, 로버트 스미스슨)작가군들은 프랑스 회화를 협력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든 것은 진실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그건 어떠한 추상 회화작가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한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죠.
내가 우연히 아트 인 아메리카 지의 과월호에서 마틴 바레에 대한 이브-알랭 부아의 논평을 보고, 그의 작업에 완전히 매료되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충분히 희소가치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난 큰 소용돌이를 메꿀 만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만 전시라는 것이 뿌리깊은 정신성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어야 했죠.
그러면 페인팅에 대조되는 타블로란 단어의 사용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 대조법은 프랑스에서보다 강조됩니다. 이건 어떤 태도이죠. 난 프랑스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주어진 상황과 그 소유주에 빗대어 작품을 바라봅니다. 미국적 사고방식에서는 그림을 영원한 처녀지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개발하려합니다. 그래서 계속 새로이 바꾸고 탐험할 수 있는 백색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죠(그린버그는 평면성에 대해,[mal] 상상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데에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롤드 블룸[5] 10에게 말했다) . 그건 내게 마치 버려지거나 내던져진 것같은 역사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내가 정신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그림에 대해 말하더라도 그건 단지 개인적 관심사일 뿐이고, 미국과 프랑스의 정치적 성향을 비교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설령 가능하더라도 말입니다. 처음에 파리의 그림 전시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왜냐면 전시가 뉴욕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감각적이면서 주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가치가 함축된 극점으로 비춰졌습니다. 동시에 난 전시에서 미국 작가들이 가진 어떤 완숙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고 느꼈었습니다. 바로 물질주의적 경향이죠. 마치 미국작가들처럼 청교도주의가 표면에서 보이고 그로 인해 물질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린 뎃셍을 숭고하게 생각하며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나라에 있는 거죠.
내재적 경험
왜 당신은 프랑스 회화작가로 돌아왔나요? 어떤 요소들이 추상회화에 대한 현대의 비평을 바꿀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전시 소개문을 보여주면서(6) 11, 나는 회화를 신체적인 목표대상으로써 증명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면에 회화적 공간의 다차원적인 면은 관여하지 않았죠. 마틴 바레와 로버스 라이만 사이의 차이점일 겁니다. 우리가 타블로를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려한다면, 수많은 접근의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베르나르 피파레티나 클로드 비알라 12처럼, 우린 정치적 함의와 형이상학적 의미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림이 역사를 주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비알라와 피파레티는 국제적 위상을 가진 작품을 그리고 거들의 전 시기를 걸쳐 어떠한 작품들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브라이스 마든이나 뤽 튀만 13처럼 말이다).
난 몇년 전에 방글라데시에 다카르 지역의 공공관청으로 루이 칸Louis Kahn(1974)을 보러간 적이 있습니다. 린넨 직물의 생산중심지인 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죠. 그담에 난 회화나 타블로의 역사의 중심에서 여행하는 것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난 타블로 공간의 질적인 면이나 시몽 헨타이나 Support/Surface 그룹이 집중하였던 바를 생각하면서 방글라데시를 분명히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몇 년전에,조 주커Joe Zucker가 면직물 역사를 묘사하는 그림을 능숙하게 그려낸 바 있었죠. 그는 면직물의 일부분과 이미지를 사용하였엇습니다. 내가 미국적 작업에 늘 일부분 기대어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 서술적 특면이나 항상 표면적 효과에 집중되어있는 부분이 그렇죠. 내가 주커의 그림을 몰랐다면, 방글라데시는 그저 여행가적 생각으로나쳤을 테고, 프랑스 회화작품들도 더 이상 내재적 경험으로 보지 않았을 겁니다.
난 대서양의 한 편을 차지하는 이 추상회화를 비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비평이 있고, 광고판처럼 그림에 늘 따라다니지만 그것들은 추상 회화를 주제로 놓지 않습니다. 내게 그림은 여타의 매체들 중에 가장 성공적인 판본인 기억의 저장소로써 작용하며 중요합니다. 마치 리차드 프린스, 제프 쿤스, 제니 홀저, 데미안 허스트처럼 말입니다. 허스트의 나비그림에 매혹되지만, 거기에서 내가 읽고 이해해야 할 것은 없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롭죠.
과거에 회화는 그것이 목판이든 동판이든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같습니다. 난 전후 프랑스 회화에서, 소통적인 회화를 그리기 위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특별한 방법들이 쓰이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난 회화가 너무 분위기를 잡느라고 점점 몰락해져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질문은 이랬습니다 《회화란 무엇인가?》그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 난 어떻게 이 질문이 프랑스 회화계에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니었죠.
파리 학파와 프랑스 회화계란 단어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전시의 주제가 전후 유럽 회화로 이어진 것 같은데요.
그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명확함의 문제입니다. 보다 일반적으로 전후 유럽 추상 회화계의 질적인 문제이죠. 난 한스 하툼(7) 14 의 전시 카달라고를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인물이죠. 파리 학파가 추상을 그리는 방식은 포크Folke나 리히터Richter같은 독일계 회화풍을 재해석하고 재활성시키는 것입니다. 로버트 리만Robert Ryman 15과 블링키 팔레르모Blinky Palermo 16를 보면서 프랑스 회화계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레나, 한타이, 하퉁같은 연속성이 보이기 때문이죠. 내게 있어 뒤로 물러나지 않고도 회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난 추상회화의 주제가 일반적 문화를 암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걸 불러야할 지 모르겠군요. 진지한 회화 라는 단어는 날 즐겁게 하면서도 엄중한 회화 는 그렇지 않죠. 그리고 이미 프랑스 회화계의 절반도 못미치는 비율을 차지하는 퍼포먼스 회화에는 흥미가 없죠. 추상회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 고유의 한계입니다. 많은 프랑스 작가들이 그걸 알고 있고,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문화사에 대한 지식, 감각,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시에 부쳐진 비평구들 중에 내가 가장 정확하다고 보는 형용사는, 바로 이겁니다. 망설임 과 온화함 입니다.
신체성-영성
당신은 뉴욕 현대회화작가들이 파리 학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시나요?
우선 색과 빛의 매개물로써 회화를 인식해야합니다. 그리고 조나단 라스터Jonathan Lasker 17처럼 작업은 매우 지적이어야 합니다. 혹은 샬린 본 헤일Charline Von Heyl (1960, German)이 내면적 대상으로 빛의 요소를 다루고있단 것을 알아야하죠. 하지만, 보통 로우 이트스 사이드에서 부상하는 젊은 작가들을 보면, 이미 파리에서 50년전에 다루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늦게라도 하는 게 아예 안하는 것보단 낫겠죠. 난 20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들이 진정한 회화를 하고 있는 건 기적과 같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뉴욕에서 가능한 모든 최악의 회화들을 거쳐왓습니다 ; 내가 무서웠던 요소들, 업악적이고, 끔찍하고, 답답한 요소들이었습니다. 1990년대 파리에 왔을 때, 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느꼇습니다. 엠마누엘 무니에 18 가 설명한 바처럼, 신체성과 영성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프랑스에 끌리기 시작했죠. 또, 단호하고 결연히 공화정을 지냈던 프랑스답게, 회화 자체의《몸》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리는 행위를 별개로 나누며 항상 영적 단계를 발견하려 했습니다.
GK
타블로/ 페인팅
■ 이 전시의 제목은 현 예술계의 입장으로써 조금 놀라울 수 있는 예측불가능의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전시를 기획하셨나요?
이 전시는 내가 10여년간 꿈꾸어왔던 것입니다. 파리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어떤 작가들에게 자신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도록 일년에 적어도 한번은 요청을 받았었죠. 동시에 난 내가 만나고싶은 작가들을 연구하곤 했습니다. 난 같은 작가들의 집으로 방향을 바꾸곤 했습니다. 또, 수많은 갤러리, 미술관과 대안공간을 찾아가서 미국 출반계에 나타난 파리지역 작가들에 대해 글을 썼었습니다. 이 논평은 이후에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에서 이어졌죠. 난 뉴욕에서 당장 전시를 열고 싶었지만, 내 작업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었죠.
그래서 수많은 갤러리들에 내 제안을 했지만, 어떤 협력자도 없었습니다. 난 파리로 건너오는 미국 작가들에 대한 단순한 선입견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경에, 파리와 브룩클린에 교류가 있었습니다. 많은 갤러리들이 참여했지만 결론적으로 밋밋해져버렸죠. 2003년경에, 놀랍게도, 사람들은 더이상 프랑스 작가전시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 그래서 프랑스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햇습니다.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난 세르주 귀보(4), Jacqueline Chambon, 1996.이 책은 시카고 대학 출판부에서 1983년 영문판으로 먼서 출간되었다."> 9의 도서에 잘 나타나있긴 하지만 협력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복합적 요소들로 설명되었던 이전의 세대들, 추상 표현주의(프랭크 스텔라, 멜 보슈너, 로버트 스미스슨)작가군들은 프랑스 회화를 협력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든 것은 진실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그건 어떠한 추상 회화작가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한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죠.
내가 우연히 아트 인 아메리카 지의 과월호에서 마틴 바레에 대한 이브-알랭 부아의 논평을 보고, 그의 작업에 완전히 매료되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충분히 희소가치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난 큰 소용돌이를 메꿀 만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만 전시라는 것이 뿌리깊은 정신성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어야 했죠.
그러면 페인팅에 대조되는 타블로란 단어의 사용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 대조법은 프랑스에서보다 강조됩니다. 이건 어떤 태도이죠. 난 프랑스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주어진 상황과 그 소유주에 빗대어 작품을 바라봅니다. 미국적 사고방식에서는 그림을 영원한 처녀지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개발하려합니다. 그래서 계속 새로이 바꾸고 탐험할 수 있는 백색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죠(그린버그는 평면성에 대해,[mal] 상상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데에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롤드 블룸[5] 10에게 말했다) . 그건 내게 마치 버려지거나 내던져진 것같은 역사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내가 정신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그림에 대해 말하더라도 그건 단지 개인적 관심사일 뿐이고, 미국과 프랑스의 정치적 성향을 비교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설령 가능하더라도 말입니다. 처음에 파리의 그림 전시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왜냐면 전시가 뉴욕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감각적이면서 주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가치가 함축된 극점으로 비춰졌습니다. 동시에 난 전시에서 미국 작가들이 가진 어떤 완숙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고 느꼈었습니다. 바로 물질주의적 경향이죠. 마치 미국작가들처럼 청교도주의가 표면에서 보이고 그로 인해 물질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린 뎃셍을 숭고하게 생각하며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나라에 있는 거죠.
내재적 경험
왜 당신은 프랑스 회화작가로 돌아왔나요? 어떤 요소들이 추상회화에 대한 현대의 비평을 바꿀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전시 소개문을 보여주면서(6) 11, 나는 회화를 신체적인 목표대상으로써 증명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면에 회화적 공간의 다차원적인 면은 관여하지 않았죠. 마틴 바레와 로버스 라이만 사이의 차이점일 겁니다. 우리가 타블로를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려한다면, 수많은 접근의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베르나르 피파레티나 클로드 비알라 12처럼, 우린 정치적 함의와 형이상학적 의미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림이 역사를 주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비알라와 피파레티는 국제적 위상을 가진 작품을 그리고 거들의 전 시기를 걸쳐 어떠한 작품들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브라이스 마든이나 뤽 튀만 13처럼 말이다).
난 몇년 전에 방글라데시에 다카르 지역의 공공관청으로 루이 칸Louis Kahn(1974)을 보러간 적이 있습니다. 린넨 직물의 생산중심지인 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죠. 그담에 난 회화나 타블로의 역사의 중심에서 여행하는 것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난 타블로 공간의 질적인 면이나 시몽 헨타이나 Support/Surface 그룹이 집중하였던 바를 생각하면서 방글라데시를 분명히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몇 년전에,조 주커Joe Zucker가 면직물 역사를 묘사하는 그림을 능숙하게 그려낸 바 있었죠. 그는 면직물의 일부분과 이미지를 사용하였엇습니다. 내가 미국적 작업에 늘 일부분 기대어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 서술적 특면이나 항상 표면적 효과에 집중되어있는 부분이 그렇죠. 내가 주커의 그림을 몰랐다면, 방글라데시는 그저 여행가적 생각으로나쳤을 테고, 프랑스 회화작품들도 더 이상 내재적 경험으로 보지 않았을 겁니다.
난 대서양의 한 편을 차지하는 이 추상회화를 비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비평이 있고, 광고판처럼 그림에 늘 따라다니지만 그것들은 추상 회화를 주제로 놓지 않습니다. 내게 그림은 여타의 매체들 중에 가장 성공적인 판본인 기억의 저장소로써 작용하며 중요합니다. 마치 리차드 프린스, 제프 쿤스, 제니 홀저, 데미안 허스트처럼 말입니다. 허스트의 나비그림에 매혹되지만, 거기에서 내가 읽고 이해해야 할 것은 없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롭죠.
과거에 회화는 그것이 목판이든 동판이든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같습니다. 난 전후 프랑스 회화에서, 소통적인 회화를 그리기 위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특별한 방법들이 쓰이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난 회화가 너무 분위기를 잡느라고 점점 몰락해져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질문은 이랬습니다 《회화란 무엇인가?》그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 난 어떻게 이 질문이 프랑스 회화계에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니었죠.
파리 학파와 프랑스 회화계란 단어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전시의 주제가 전후 유럽 회화로 이어진 것 같은데요.
그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명확함의 문제입니다. 보다 일반적으로 전후 유럽 추상 회화계의 질적인 문제이죠. 난 한스 하툼(7) 14 의 전시 카달라고를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인물이죠. 파리 학파가 추상을 그리는 방식은 포크Folke나 리히터Richter같은 독일계 회화풍을 재해석하고 재활성시키는 것입니다. 로버트 리만Robert Ryman 15과 블링키 팔레르모Blinky Palermo 16를 보면서 프랑스 회화계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레나, 한타이, 하퉁같은 연속성이 보이기 때문이죠. 내게 있어 뒤로 물러나지 않고도 회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난 추상회화의 주제가 일반적 문화를 암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걸 불러야할 지 모르겠군요. 진지한 회화 라는 단어는 날 즐겁게 하면서도 엄중한 회화 는 그렇지 않죠. 그리고 이미 프랑스 회화계의 절반도 못미치는 비율을 차지하는 퍼포먼스 회화에는 흥미가 없죠. 추상회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 고유의 한계입니다. 많은 프랑스 작가들이 그걸 알고 있고,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문화사에 대한 지식, 감각,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시에 부쳐진 비평구들 중에 내가 가장 정확하다고 보는 형용사는, 바로 이겁니다. 망설임 과 온화함 입니다.
신체성-영성
당신은 뉴욕 현대회화작가들이 파리 학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시나요?
우선 색과 빛의 매개물로써 회화를 인식해야합니다. 그리고 조나단 라스터Jonathan Lasker 17처럼 작업은 매우 지적이어야 합니다. 혹은 샬린 본 헤일Charline Von Heyl (1960, German)이 내면적 대상으로 빛의 요소를 다루고있단 것을 알아야하죠. 하지만, 보통 로우 이트스 사이드에서 부상하는 젊은 작가들을 보면, 이미 파리에서 50년전에 다루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늦게라도 하는 게 아예 안하는 것보단 낫겠죠. 난 20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들이 진정한 회화를 하고 있는 건 기적과 같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뉴욕에서 가능한 모든 최악의 회화들을 거쳐왓습니다 ; 내가 무서웠던 요소들, 업악적이고, 끔찍하고, 답답한 요소들이었습니다. 1990년대 파리에 왔을 때, 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느꼇습니다. 엠마누엘 무니에 18 가 설명한 바처럼, 신체성과 영성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프랑스에 끌리기 시작했죠. 또, 단호하고 결연히 공화정을 지냈던 프랑스답게, 회화 자체의《몸》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리는 행위를 별개로 나누며 항상 영적 단계를 발견하려 했습니다.
프랑스에는 미국작가들에겐 너무 낯선 익명성이 있습니다. 난 자라면서 잊긴 했지만, 유년기에 카톨릭 수업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카톨릭적 철학과 문화적 면에 이끌리곤 합니다. 예를 들어, 시몬 한타이, 올리비에 메시엔 19, 앙드레 바쟁 20같은 거물이 카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물론 미국회화의 도래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회화의 장르 중에서도 특히 추상회화를 말하기 위해 내가 오랜기간 연구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직까지 내 관심사입니다.
이 신체성-영성은 내 작업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전시로 그걸 보여줄 계획이죠. ■
이 신체성-영성은 내 작업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전시로 그걸 보여줄 계획이죠. ■
-64page, artpress #377.
Gwenael Kerlidou (브룩클린 거주. 프랑스 회화작가)
PLONGEUR ( zamsoobu )
- Saul Ostrow,1987년부터 80여개의 전시를 기획. 예술 비평가./Robert Morgan/Raphael Rubinstein [본문으로]
- Noël Dolla 1945니스 출생.조형예술가. [본문으로]
- Martin Barré(1924-1993);Christian Bonnefoi(1948출생) [본문으로]
- 여기에서 작가의 전목록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예술사 속에서 이 재평가를 하고 싶었다. 이른바 '페인팅으로서 : 콜럼버스 웩스너 센터 주관하에 이뤄진 분류와 이동' 전시 기획자의 이름(Armstrong, Lisbon et Melville)을 말할 필요는 있겠다. 또, 뉴욕의 Andrew Kreps갤러리도 2008년 마틴 바레의 작품을 전시하였었다. 그리고. 시몬 헨타이의 작품도 역사학자 Molly Warnock자에 의해 Paul Kasmin갤러리에서 미국대중에게 선보였다. [본문으로]
- Serge Poliakoff;(1906-1969)러시아 출생.신 파리 학파로 불림./Hans Hartung(1904-1989); [본문으로]
- Jonathan Lasker;(1948년 출생)/미국 작가Louise Fishman;(1939년 출생)미국 추상주의 회화작가. [본문으로]
- Juan Uslé;/DanielHesidence(1975년 출생)http://danielhesidence.com(2)전시에 참여한 20여명의 작가들 : Richard Aldrich, Matrin Barre, Jean Fautrier, Louise Fishman, Joe Fyfe, Hans Hartung, Daniel Hesidence, Charline von Heyl, Merlin James, Jonathan Lasker, Katy Moran, Bernard Piffaretti, Serge Poliakoff, Sarah Rapson, Milton Rensnick, Jean-Paul Riopelle, Kimber Smith, Cheyney Thompson, Juan Usle, Claude Viallat, John Zurier. [본문으로]
- (3) 또 다른 예로는, 시선regard이란 단어로 프랑스비평문에 종종 쓰이는데. 이를 대체할 단어가 영어에는 없다. [본문으로]
- "(4)
[본문으로] - (5) Harold Bloom은 미국 비평가였으나, 후에 많은 작품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작품들을 그릇되게 해석하였다. [본문으로]
- (6) www.cheimread.com/exhibitions/2010-06-24_le-tableau/?view-pressreslesase [본문으로]
- Bernard Piffaretti(1955-)Claude Viallat(1936-) [본문으로]
- Brice Marden(1938-U.S.A painting artist)/Luc tuyman (1958.벨기에-) [본문으로]
- (7)Hans Hartung, the last paintings, 1989. Cheim and Read Gallery, New York, 2010 [본문으로]
- Robert Ryman (born May 30, 1930) is an American painter identified with the movements of monochrome painting, minimalism, and conceptual art [본문으로]
- Blinky Palermo, born Peter Schwarze, aka Peter Heisterkamp (June 2, 1943 in Leipzig - February 18, 1977 in Malé), was a German abstract painter [본문으로]
- Jonathan Lasker (born 1948) is an American artist. [본문으로]
- Emmanuel Mounier (May 1st 1905 Grenoble – March 22nd 1950 Châtenay-Malabry) was a French philosopher. [본문으로]
- Olivier Messianen was a French composer, organist and ornithologist, one of the major composers of the 20th century [본문으로]
- André Bazin (18 April 1918 – 11 November 1958) was a renowned and influential French film critic and film theoris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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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