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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2 그 집 저 집, 그리고 이 집 ⓑ

그 집 저 집, 그리고 이 집 ⓑ

그 집 저 집, 그리고 이집

 

 

 

#RER B선의 Gentilly  역.

어느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민박집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트럭에는 바나나, 열대 과일, 아보카도 모양의 과일을 파는 젊은 아랍인 상인이 좌판을 펼치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냄새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쓰는 터이라 집안문을 열자마자 후덥지근하며 텁텁한, 그리고 여러 향신료가 뒤섞여 기름에 찌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미 나는 그 냄새에 압도당하여, 어질어질하 주인장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째서 나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민감한 코를 가졌을까. 처지에 맞게 둔감하고 수더분한 코를 가졌으면 좀 좋으랴...아무튼 주인장이 방을 보여주는 데, 2층 침대이라, 곧 2인실임을 알아챘다. 여러모로 모든 살림살이, 가제도구등이 즐비하여 만, 집세라는 비용으로 이름만 '가정집'인 모텔에 들어와서 몇달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역시 가까운 사람이 더 지각하는 법인가보다. 집앞 5분거리인 곳이면서, 약속시간보다 20분을 늦은 주인이, 너무 야속하였었다. 이 때는 전화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RER A선 Chatou-Croissy.

 

한 프랑스 싱글맘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는 집이었다. 가기 전에, 가는 경로 찾아보면서 간단한 구글링으로 근처에 '경관이 아주 수려한' 강이 있으며, Renoir 가 이 강변에서 유람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려서 '인상주의 화가의 마을'이라고 가이드에까지 올라와있다. 내심 기대를 하고, RER를 탔는데, 한정없이 멀리가는 기분이다. 마치, 서울 종로에서 출발해서 파주까지 가는 체감거리이다. 게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그 '경관이 아주 수려한' 강은 내 마음이 한껏 어두워서인지, 스산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을 뿐이었다. '르누아르 Renoir'는 아마 햇살이 충만한 여름때 강변을 그린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런 데까지 와보겠나'라면서 위안을 해본다. 역에 내리고나서, 한참 주변을 '나 관광객이오''여기가 어딘지 대체 모르겠소'라는 티를 팍팍 내며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돌아보니, 흰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아주머니이다. 마치 아줌마의 흰색 바람막이가 나를 구원해 주는 천사의 백색 도포자락 같이 느껴진다. 그날은 손이 곱을 정도로 엄청 추운 날이었고, 아줌마도 어제 눈이 왔었다고 한다.

 역에서 집까지 차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아줌마의 옆좌석에 앉았고, 뒤에는 아들이 앉았다. 모자간의 피부색이 다른데, 이 곳에서는 흔한 일이라 그러려니 했더니, 알고보니 남편이 하이티 출신이며, 지금은 '나 파리 싫어, 하이티로 돌아갈래'라고 하며 떠나갔다고 한다. 그 남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왠지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하이티'와 '파리'...고갱.

 

아무튼, 아주머니는 내 서투른 불어를 침착하게 들으시고는 매우 친절하게 집 구석구석 소개해주셨다. 정말 아늑하고 깨끗하며 조용하고 쾌적하고 게다가 전망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실 한 가운에 움푹 파인 공간에 아들을 위한 놀이 공간인 듯, 작은 어린이 쇼파가 사랑스럽다. 그런데, 내가 다닐 어학원에서 1시간, 여기에서 기차며 버스 대기시간까지 하면 1시간 반은 훌쩍 넘을 것이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한낮에도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니, 어둑해지면 개미 새끼 한마리도 안 보일 것이 안봐도 비디오였다.  

 이 곳도 나와 인연이 닿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사람 냄새나는 아주머니가 베푼 호의에 훈훈한 온기를 느꼈다. 한편으로, 여자 혼자 애 키우면서 살림을 꾸리려고 이렇게 낯선 외국인을 들이려고 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왠지 아줌마에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곧 내 처지에 아줌마 걱정을 하다니,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꼴 아닌가. 집안에는 곳곳에 그림이 걸려있는데, 알고보니 아이 아버지가 하이티인이면서 화가였었다! 아줌마는 엔지니어라는 데 대체 하이티 화가인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뜬금없이 궁금했다, '엔지니어'라는 아줌마의 말을 들어서인지 몰라도, 굳이 살갑게 하지 않으면서도 태도에서 합리적이며 배려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집구경을 하고 나중에 메일로 연락하겠다는 말미를 전한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모피코트에 허리를 바짝 졸라매고, 머리에 포마드기름을 칠한 듯 반짝반짝 윤을 낸, 검은 마스카라의 여인이 'Bonjour'한다. 나도 'Bonjour'.

속으로는 '안 Bonjour' 인데, 그래도 옛다, 내 인사다. 미소만큼은, 'Bonjour.'

 

그 뒤로도 내가 답변을 미루는 사이, 다른 이탈리아여자애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친절히 알려주신다. 그러면서 그 이탈리아 여자애가 그 전에 살던 집에서 여럿이 합숙을 하며 술.담배에 찌든 게 안쓰러워서 들이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내가 느낀 대로 속정이 깊은 사람인 게 짐작이 갔다. 그리고 끝으로 이 아이도 곧 이탈리아로 돌아갈 것 같다고, 아직 집을 못구했으면 연락하라고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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