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 ( 방영: 2011.01.05 ~ 2011.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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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전부터 한국의 C.S.I로 소개되었던 〈싸인〉이 종영되었다. 다소 급하게 마무리 짓느라 실수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무사히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유명해져서 범죄수사드라마의 고유 대명사가 되어버린 C.S.I의 애청자들이 촉을 세우고 평가한다는 다소 부담스러운 자리였겠지만, 전체적인 인상으로는 수목드라마에 맞추어 평준화되면서도 나름의 개성을 잃지 않은 준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방영기간 동안 ,드라마의 새로운 소재를 찾는 듯한 SBS와 반전의 묘미를 살리는 제작진의 궁합이 보는 이의 흥미를 유지시켰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분명 살인적이라 할 만큼 빠듯한 일정이었을 제작과정을 염두에 두자면 무사히 방영을 마쳤다는 것 자체가 아찔하고 다행일 것이다. 나는 많은 시청자 중의 한명에 불과하지만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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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보며 줄곧 생각한 것은 또 다른 드라마, 장항준 감독과 그와 김은희 작가가 공동집필한 <위기일발 풍년빌라(연출: 조현탁) >이다. 그가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시기는 이 드라마가 나오기 훨씬 이전이었다. 윤종신의 <두 시의 데이트>의 게스트로 나와, 특유의 가볍고 재기넘치는 입담으로 심심찮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영화관련 일화를 이야기하는 코너였고, 개중에 일본의 거장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해 분석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는 무거운 사실에 입각하기 보다, 야사에 가까운 세세한 이야기들을 캐내어 듣는 사람이 속으로 키득거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건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한낱 나불거림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가막히게 숫자를 기억하는 자폐아의 재능처럼 종종 사람을 놀라게 하는 면이 있었다.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2010년 3월부터 5월까지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에 한참 빠져있을 때라,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을 만큼 시끌벅적한 면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드라마에 숨길 수 없는 '싼티'에 이끌려 1화를 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다양한 인물군상이 다소 허황되지만 혹 하지 않을 수 없는 '보물'을 찾는 이야기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반전으로 보는 내내 다음 회를 기대하게 하는 강한 중독성이 있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주요 재미는 캐릭터의 두드러지는 특징과 거기에서 유발되는 우당탕탕식의 갈등이 가진 돌발성이었다. 이런 점은 아직 보다 평준화되고 안온한 노선을 가는 공중파 방송국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풍년빌라는 그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할 수 있겠다. 그런 풍년빌라를 보았기에, 반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마치 불량식품의 뒷맛이 길고 진하듯, 그 드라마의 여운으로 <싸인>을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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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열리고 받은 첫 인상은 <싸인>은 범죄수사 드라마라는 장르가 분명함에도 한국형으로 그 스릴러 장르의 특징이 매우 희석되었다는 것이다. 범죄드라마라기보다 범죄수사에 전력하는 인물들의 드라마라는 정의가 더 적절할 것이다. 고지식하리만큼 원칙주의자인 박신양과 헛점이 많지만 인간적이며 수사에 원동력을 제공하곤 하는 김아중, 과거의 불행이 현재의 범죄로 이어진다는 공식에 충실한 용의자 김성오, 보다 현실 정치를 따르며 주인공의 반대축에 서 갈등을 유도하는 전광렬, 골통 정겨운, 그 골통을 사랑하게 되는 검사 엄지원 등의 인물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촛점이 맞추어졌다. 그래서 사건의 해결보다 인물간의 관계에 줄곧 정체되면서 그 재미를 잃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보다 입체적이지 않은 탓도 재미를 반감시켰다. 하지만, 극의 완성도 대신에 시청자를 선택하는 안전하면서 어찌보면 현명하고, 그러나 내심 시원하지 않으면서 아쉬운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범죄수사'라는 본질적으로 어둡고 탁하며, 그것이 밝혀지는 불편할 수도 있는 과정대신에, 보다 친근한 연예인들이 '수사인'으로 연기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 훨씬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정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혼자 아쉬움을 삼키며, 공중에서 휘발되어버린 <풍년빌라>의 여운과 소소하게 야식거리 라면물만 끓이고 사라진 <싸인>의 잿가루를 지켜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