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나는 벌써부터 안방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졌다.
파리행,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홍콩 경유할 파리행 비행기에 앉자마자,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공항 검색대에서 배낭의 컷터칼을 꺼내느라 꼬깃꼬깃 쑤셔넣어놓았던 짐들이 '헤벌레'가 되었고, 밑이 터져버린 20여키로 배낭을 메고, 어깨에는 10키로 노트북 및 아이패드 기기들을 징여메고 겨우 보딩시간에 맞추느라 뜀박질을 한 탓에 한 겨울인데도 땀이 한여름 처럼 흘렀다. 게다가, 수하물 무게를 맞추느라 옷을 껴입은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기내에 들어서자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민망했고, 어서 자리를 찾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애써 피했다. 혼자서 비행기내 짐칸에 올리지도 못할 배낭 때문에 이륙 준비에 바쁜 승무원에게 애써 도움을 요청했고, 그녀도 나와 함께 낑낑대다가, 보다못한 옆좌석의 한 남자승객이 도와주었다.
나는 겨우 끼인 좌석 한가운에 착석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짧은 고생이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걸까.
작년 한해에 대한 미련이 전부였는가, 한국에 삶에 대한 불만족 때문인가.
지난 한 해의 미련이 이 길에 다시 발을 들일 정도로 깊고 진한 것이었나.
작년 한 해는 어땠는가.
2013년 2월...은 타지에 도착 후 으레 하는 것처럼 거주지를 찾아 헤메기를 반복했다.
부르 라 헨느, Bourg la reine 여행의 낭만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낯설었던 추위와 허기가 늘 가까이 있었고, 그때마다 집벽에서 베어나오는 물비린내가 더욱 기분을 바닥으로 내몰았다.
3월에 임시 민박을 벗어나 장기간 살 집을 찾기도 하고,
간간히 시내를 둘러보며 거부할 수 없는 파리의 매력에 취해
마취약으로 삼고는 했다.
4월...도 역시 새로운 거처를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행정 처리상 순서로 우선 집을 구하고, 집계약서와 거주증명으로 은행계좌를 열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르 라 헨느에 가기 위해, 혹은 파리로 가기 위해 RER B선을 타고 앉으면, 맞은 편에 굳은 표정의 주민들과 순간 순간 눈이 마주쳤다. 관광객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아니 느끼려고도 하지 않았을 생활인으로서의 감정이 언뜻 느껴졌다.
그런 파리의 남서쪽 3존인 부르 라 헨느에서 벗어나 파리 외곽의 남동쪽 빌 쥬이프 Villejuif 로 가기전에, 일주일 동안의 공백기를 한 유학생의 집에서 있기로 하였다.
숙박비를 일별 계산하기로 하였는데, 하루 일찍 나가게 되어 하루치 숙박비를 빼달라는 말이 발단이 되어서 그 유학생과 심한 말로 다투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아이였는데, 한화로 치면 몇만원 때문에 '뻔뻔하다', '비위좋다'라는 말까지 들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이런 게 타지에서 사람을 대하다보면 없다가도 만들어지는 태도가 되는 것인가라는 회의감때문에 한동안 기분이 우울했다.
그렇게 이사하고 난 후, 더러운 나무 바닥을 내집인 마냥 닦으며 이 곳에서 체류하는 동안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날 지, 겪게 될 어려움들에 대한 염려는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 당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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