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컷 젬스 Uncut Gems 기사번역,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762 (2020.01.)
비등점
기사 뱅상 말로사 Vincent Malausa
사프디 형제는 굿 타임 Good Time 로부터 시작된 지점에서, 새로운 지평선을 열기보다 보다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즐거움을 선사-불행히도 극장의 대형스크린이 아닌,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공개-한다. 굿 타임 Good Time 에서 그러했듯이, 언컷 젬스Uncut Gems 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다. 이국풍의 장면에서(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하여 70년대의 부흥기의 마피아 여담과 로버트 패틴슨 Robert Pattinson 이후의 새로운 무비 스타; 아담 샌들러Adam Sandler) 감독의 모든 필름에서 유래하는 감정적인, 가족간의, 내밀한 이야기들. 에티오피아의 오팔 광산 오프닝은 서사의 스펙트럼을 가늠하기에 다소 부족하다, 단지 이후에 가정으로 방향을 돌리는 급격한 선회도 그러하다 : 여기에서 보석은 단지 여행을 위한 구실이며, 언컷 젬스란 소재는 역설적으로 사프디 형제의 영화가 얼마나 동심의 영화인지,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보물을 찾는 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뉴욕의 클리닉 의료장치(인물이 전립선 검사를 위해 찾는)와 아프리카 광산의 보석의 우주적 광채를 중첩시키는 시퀀스 장면은 시작으로 하여, 상반되는 두 요소간의 거리, 일상적 범속함과 경이로운 풍경, 또는 지옥같은 일상 등은 끊임없이 맞부딪힌다.
언컷 젬스Uncut Gems 는 트래픽, 교환과 순환의 화두(암석, 인력, 그리고 감정들)를 던진다. 출발점과 이어지는 시적 분투, 뉴욕의 골목길들을 가로지르는 미로와 추격전. 하워드 라트너, 보석상이자, 살찐 운동선수, 가족에 절절 매는 아빠, 바람피는 남편, 구석진 지역측량사 이 모든 측면이 하나의 영화를 여러 지점으로 나누며 결말을 미룬다. 굿 타임즈의가 강탈 후 도망하는 아스팔트의 이야기라면(리부진의 좌석에 대비되는 택시, 신흥부자의 아파트, 빌라, 호텔방, 벙커 스타일의 상점), 이 영화는 부르주아의 VIP의 특권이나 누리는 진동이 약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마도 그 전작들보다 감정적으로 더욱 도취시키는 부분이 있다. 그건 이 영화 자체의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마틴 스코세지 의 에프터 아워즈의 완벽에 가까운 기술, 단독적으로만 보면 별다른 가치가 없는, 을 비틀면서 차용하기 때문이다. 현기증의 모티브와 나선형의 광기가 형태와 구조에서 드러난다.
굿 타임 Good Time 에서의 광대한 도시 풍경을 놓쳤다면, 대신 언컷 젬스Uncut Gems 에는 보다 날카로운 광기와 집중이 있다. 공포에 질린 유피이자 서투른 동물이면서 몽상가를 동시에 보여주는 아담 샌들러는 아마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땀방울이 흐르는 얼굴, 떨리는 눈, 배우는 여기에서 서투름과 기폭성의 (80년대의 골든 보이와 미친개, 그리고 먼 사촌이 동시에 일으키는 분쟁)게임에 있다. 이러한 강도가 평행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작은 조각들에 활력을 주는 것이다. 고독으로 인해 무너지는 이러한 배우의 고립은 작가가 속한 단체나 성가대에서는 의외이긴 하다. 샌들러의 기나긴 주행 동안 마주치거나 복합적으로 겹치는 사람들은 하찮은 부분이 아니다. 이러한 에피소드가 스토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근거가 아예 없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라트너의 보석가게에 들어닥친 농구 올스타 케빈 가르넷이나, 그가 에티오피아에서부터 건너온 오팔의 반향에 취한다던가,NBA 에서. 마치 마법에 걸린 듯 활약하는 순간, 거의 히티콕 수준의 클라이막으로 치달아가는 (라트너가 뽑아든 칼에 경기시간이. 오버랩 되는 )ㅡ 오팔이 손에서 경기선수에게로 넘어가는-게임에 이긴 승리감에 도취된 보석상인-타인에게로- 212년도 이전 경기를 재편집하여 되살아난 챔피언-은. 이러한 열기, 끈질긴 집 그리고 매혹이 뒤죽박죽 섞인 상징이며, 바로이러한 점이 실종 후 되찾은 아이와 짓궂은 장난에 얽힌 두 인물을 하나로 합치는 힘인거다.
이러한 점에서 이 커다란 조약돌은 마피아, 스포츠, 뮤지컬 시리즈의 불가피한 미끼, 맥거핀MacGuffin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기극을 촉발시켰다가 가족 코미디로 후퇴하는 일종의 핑계, 속임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사프디형제가 매 영화마다 지니는 일종의 부적처럼 단순한 수평선을 뒤흔들며 신비로운 잔상을 남긴다. 이 최면효과를 가진 오팔은 감독이 사이키델린한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을 돕는 효과 뿐 아니라, 우주적이면서 범속한 시선의 흐름( 더할 수 없는 극치이자 정점 : 샌들러의 항문 초음파검사와 광산이 겹쳐지는 오프닝 시퀀스)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한다 : 진동하며 빛을 반사하는 심장이 언컷 젬스에 마술같은 연료를 부어주며 사프디의 연출에 몽상을 하게 한다.
이러한 과도하게 넘치는 열기 뿐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화함이 아마도 감독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미스테리한 부분이 아닐까. 언컷 젬스는 이러한 부분을 촉발시키면서 익살스러운 정도로 유도(라트너가 불한당무리에게서 벗어나서 그의 가족 중 한 명에게 도리어 협박을 당하는 말도 안되는 장면)하며 이러한 시적 파편(광기어린 사랑고백이 충격에 빠진 인물로 이어지는)은 이 영화가 단지 스릴러가 아니라 감정의 푸가가 되도롣 선회한다.
제정신이 아닌 작은 로봇에서 풍겨나오는 현실적 감정은 라트너의 그것과 급격히 상반되며 절제의 범위를 벗어나는 라트너의 감정적 요동과 상응한다. 광란의 탈주와 맹목적인 질주를 하며 인물은 그의 아이러니한 껍질(클리세로 가득찬, 명상의 구 )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사프디 형제는 그들이 항상 잊지 않는 길을 잃은 아이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순수하고 로맨스에 가득찬 변주곡을 비밀스럽게 연주한다.
여기에는 더이상 어떠한 섬세한 방법도 있을 수 없다. 샌들러의 쓰러진 개나 반짝이는 악마, 나쁜 아이의 눈길에서 도취감이나 어떤 후퇴하는 감정, 멜랑콜리나, 공포를 잡아내는 데 있어서 사프디 형제는 섬광을 포착한다. 그리고 언컷 젬스가 어린아이의 유치한 고독감(욕실의 그림자로 그의 연인을 엿보는)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인물을 보여주는, 악의없는 행위에 있다면, 혹은 무너지는 것을 보여준다면(최후에 흘리는 눈물 앞에서 약혼자의 메마른 얼굴), 혹은 티비에 생방으로 중계되는 경기나 그의 아들에 키스하기 위해 추격을 미룬다면, 그것은 단지 사프디 형제가 늘 그러했듯이, 감정과 몸, 그리고 내면성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비등점에 다다른 몸의 내면에서 나온 어두운 범죄성으로부터 시작된 치명적 아이러니, 폭력이 상징하는 무게를 지닌 이 영화, 언컷 젬스는 감독이 지속적으로 물음표를 던지는 존재론적 퍼즐의 한 파편에 불과하다 : 도덕적 구조와, 시적 매력, 자유로운 기획으로 이루어진 인생이란 작품의 완벽한 가설과도 같다.
불한 번역: 잠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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