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위치를 전개시키다_미쉘 프랑수아

브뤼셀 예술계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작가, 미쉘 프랑수아가 그의 독특한 작업을 가지고 벨기에로 다시 돌아왔다.

벨기에인 미쉘 프랑수아(1956년 출생)는  조각, 사진, 그리고 비디오를 여유있게 넘나들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의 회고전 《침략의 도식》이  2010년 빌레르반지역의 현대예술 협회IAC(Institut d'art contemporain )에서 열렸다. 그가 극도로 끌어올리는 다양함 속의 《확장》의 논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점점 작가들과 갤러리들이 브뤼셀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갤러리들과의 관계에 관해서 난 잘 알지 못합니다. 단지 브뤼셀에 대한 수집가들이 많이 있다고 가정할 뿐입니다.  브뤼셀은 파리, 런던, 암스텔담과 퀼른과 가깝게 위치한 유럽의 중심도시입니다. 아틀리에를 찾는 작가들에게 브뤼셀은 상대적으로 낮은 집세로 넓은 공간을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난 아직 브뤼셀에서 살고 있기에, 작가들의 동기가 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곳으로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난 프랑스의 어떤 지역은 벨기에 지역과 독특하게도 닮아있는 것을 기억합니다.  예를 들면, 브뤼셀에는 브르타뉴 출신 작가들이 많습니다. 난 이런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파리의 어떤 부분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브뤼셀은 아마 보다 접근성이 좋고, 쉽게 동화될 수 있는 도시입니다. 파리에 비해서 예술계가 체계화가 덜 되고 아직 포화 상황에 이르지 않았기에, 젊은 예술가들에겐 보다 안착하기 쉬운 곳일 겁니다; 예술가들 사이에 가장 유연성이 강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경합의 논리가 보다 덜 적용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역시 쟁점을 두고 벌이는 논쟁도 덜하다는 것도 말해야 할 겁니다. 벨기에에는 미학적《학파》가 없습니다. 파리에서 전 역사에 《학파적 혈통》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벨기에는 《맞서 투쟁할 문화》가 없는 작은 나라입니다. 벨기에에 어떤 장르라도 그에 전념하며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술가로써, 우리 스스로는 일들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건 보다 많은 자유를 주죠.  보다 독립적으로 표현하고,특한 위치를 전개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개방성을 이용하며 즐기기 위해, 반드시 벨기에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브뤼셀에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죠.

빌스 예술의 중심은 보조기금의 중단으로 폐쇄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럼에도 보자르 미술관은 지난해에, 현대예술에 불리하게 작용할, 19세기 예술의 재정비를 발표했습니다. 벨기에 정부는 현대예술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만약 정부의 정책에 대해 말하려면, 이 질문을 지역의 맥락에서 다시 던져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지역은 자율적으로 운영됩니다. 프랑스어권이 다수를 차지하는 브뤼셀에서는 나뮈 도시를 좋아하는 발론지역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플랑드르 사람들이 주로 풍경화에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브뤼셀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역동적인 요소가 많습니다...빌 지역의 문제는 그 맥락안에서 이해햐아 합니다.  딕 스노워프Dirk Snauwaert[책임자] 는 오직 장소의 생존에 헌신해왔습니다. 공공 기금이 부족하고 독립적 구조가 전무하더라도 브뤼셀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는 없습니다.

브뤼셀로 온 작가들은 전시할 장소를 얻지 못하는 것인가요?
 그래도 분명 구조가 변화하고 있고 흥미로운 요소들이 있습니다.  분명 보다 덜 《체계적인》요소들입니다. 우린 아르고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곳의 아주 유명한 바 아치둑이라고 있는데, 같은 층에 《양말 갤러리》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푼도 들지 않고 굴을 파고, 매우 좋은 전시를 열었습니다. 예술사학자와 전시기획자 장-폴 자케와 함께 말입니다.  또한, 《정면의 건물》처럼 다른 상호협력적인 장소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  작가집단과 전시기획자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죠. 또는 《콩플로Komplot》처럼, 특정한 장소는 아니지만 매우 유동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전력을 다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온 작가들이 때론 회의를 가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봐야 할 다른 것은, 우리들 중 더 많은 작가들이 전시를 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아틀리에도 점점 개방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많은 갤러리들이 젊은 작가들을 지지하고 있고, 널리 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데펑덩스, 리쿠, 비달퀴글리타, 알리스데이, 나딘 플라토...[각주:1])
이 갤러리들은 보다 가벼운 자금으로 운영되고 도시에서 매우 역동적인 곳입니다.

브뤼셀에서 예술적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내가 ERG(école de recherche graphique)수학을 하고 졸업을 할 당시에 아주 협소했습니다. 티에리 뒤브Thierry de Duve(미학과 예술사학부 교수)는 서로 다른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강한 이론이 뒷받침 된 커리큘럼을 진행했었습니다 : 회화, 조각, 멀티미디어, 부차적 예술, 등등에서입니다. 물론 La Cambre(école national supérieure des arts visuels)과 플랑드르 옆의 싱-뤼카스는 리차드 베늘레, 필립 반 닉, 도라 가르시아, 소피 니, 아글라이아 코나 가 교직에 있어 아주 좋은 수업이 진행됩니다.

현재 벨기에에서 당신이 흥미롭게 보는 젊은 작가들이 있습니까?
 난 뉴욕에서 라캉브르를 졸업한 한 젊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해롤드 앙카Harold Ancart로, 양말 갤러리에 그의 뎃셍이나 조각들을 전시하기 위해 벨기에 아트 페어동안 초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다음의 작가들도 예로 들고 싶군요 : 소피 니, 이완 마헤, 이자벨 아르튀스, 존 킬, 알린 보비, 파트리스 가이야르 와 크로드, 베누아 플라테우스, 미쉘 반 덴 아블리, 리 보에...[각주:2]

벨기에 작가들은 해외에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합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나요?

 언제나 그렇듯이 좋은 기회가 있어야 하고,  적재적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고유의 상황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작가들과 닿아있습니다. 이건 전시라기보다 행동에 가깝습니다. 벨기에 예술의 증진에 힘쓰는 제도적 구조가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재활성화시키고 다른 지역들 간의 특징을 구별해야 합니다. 나로선, 20세였을 때에도 그랬지만 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난 벨기에인인 것에 전혀 낙담하지 않습니다...
 브뤼셀이 비록 황무지라 하더라도, 벨기에에서는 아직 로랑 야콥Laurent Jacob같은 개인이 있습니다.  그는 리에주의 Espace 25 Nord를 창설했죠 ; 그 곳은 현 세대의 여러 작가들, 베로니카 얀센, 앙겔 베르가, 요한 뮈일, 자크 리젠 [각주:3]같은 작가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그가, 아웃사이더 이더라도,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벨기에 관의 기획자로 임명이 되었었습니다. 그는를 나를 베로니카 얀센과 함께 초대했었습니다.
 영향력이 있고 두드러진 개인들 중에 로랑 뷔진이 있습니다. 그는 그랑 호뉘 현대미술관MAC[Musee des arts contemporain du Grand-hornu]의 총책임자이고 샤를루아 순수 회화미술관-곳으로 발론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현대예술계에 적극적인 지지를 하는-의전 총책임자입니다.  또는 얀 호센입니다. 그는 강 지역의 SMAK의 창립자이며 도큐멘타 카셀의 총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마리-퓌 브루타에르 를 잊지 말길 바랍니다. 그의 갤러리는 많은 이들의 안식처로 남아있죠... 

출처 : 20page, Le Journal des Arts #346. 2011.4.29-5.12
기사 : Julie Por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Dépendance, Ricou, VidalCugliette, AliceDay, Nadine Plateau [본문으로]
  2. Sophie Nys (1974.벨기에 츨생) Erwan Mahéo (1968년 생) 참조: http://rio.jb-ba.com/ Isabelle Bouvy Patrice Gaillard Claude Benoit Platéus (1972년생) 다양한 활동범주를 가짐. 벨기에 젊은 회화작가 상 수여(2003) 참초: www.benoitplateus.be Michael Van den Abeele Leen Voet [본문으로]
  3. Veronica Janssens Angel Vergar Johan Muyle Jacques Lizène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