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등과장 / 1961, 이봉래

우선 흑백의 화면에 압도당한다. 그 이후엔 낯선 말투가 그 50년의 시간을 느끼게해준다.
그 당시의 대사톤이 그런 이유는 유난히 괜찮아보일려는 의도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일상적인 구어체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때문에 그런 말투가 나타났으리라 추측해본다.

특히 여자 등장인물이 콧소리를 내며 '아이'하는 대사나, 상대방을 탓하거나 진중한 장면을 연출할 때 인위성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와 유사하지만 그 의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브레히트는 일반 통속극에서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는 것에 반하여 오히려 관객과 극과 거리를 두도록 하였다. 그래서 관객의 주관하에 의식작용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 흑백영화는 다른 이유에서 내가 극에서 거리를 두도록 한다. 60년대의 현실과 현재와의 가치관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영화 내적으로, 외적으로

드러난다.


영화 내적가치로 <<삼등과장>>은 '가족'을 그 중심에 둔다. 아버지를 주춧돌로 그 위에 가정이 안정적으로 서기를 바라며
주요신들도 안방의 화로 주변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대화신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다른
가족구성원도 함께 돕는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가장에 집중되어 있다.

외적인 가치로도 현재와 다르게 다소 영화는 교훈조를 띄고 있다. 영화를 통해 잠시 우리는 그 당시를 옛 향수로 기억할 수 있지만
, 거기엔 밑바탕에 짙게 깔린 도덕적인 가치도 함께 포함된 것이다. 외도를 하는 남편과 그를 좇는 아내의 속된 장면도 빠질 수 없는 양념처럼 등장한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님의 뜻을 존중하고 설령 그에 벗어나더라도
가정을 흔들만큼 위협적이진 않다. 그렇게 부모가 귀엽게 핀잔을 주는 듯한 태도로 장면은 훈훈해지고 마는 것이다.

아마 당시 영화는 '그래야 한다'는 주의에 빠져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만큼 영화를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은,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충실했을 지 모르나 그만의 보편적인 미학적 가치를 갖추기에 모자랐다. 이 땅에 사는 아버지, 어머니를 기억하는 현 세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 만약 전후맥락을 모르는 외국인이 보면 어떤 감상을 가질지도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등과장>>은 활발하고 재기롭게 대사를 하는 윤전무나 구영희캐릭터, 혹은
중얼거리며 수줍은 듯한 독특한 대사톤의 아버지 구소장때문에
생생해 진다. 또한 그 당시의 미장센이 마치 연극무대의 그것과 같은 것은 독특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입가에 보이는 하얀 입김을 보면 당시 배우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특히 황정순씨의
옛 모습은 시간을 떠나 있는 한 존재를 느끼게 한다. 하얗게 샌 머리의 사진을 먼저 보았기에 과거의 배우를 보는 것은
배우 당사자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시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