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을 잡았구나!



월요일 아침 유난히 찌뿌듯한 몸은 '쉬어라'고 하지만, 

세상 만사 모르고 태평하게 늘어질 '상팔자'는 아닌지라,

일을 나선다.

빨리 먼가를 뱃 속에 넣고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이미 바쁘다.


2존에 살고 있는 지라 한화로 10여만원 충전한 나비고는 5월 처음에 애당초 잃어버리고 13구에 있는 식당까지 요즘은 걸어다니고 있다. 중간 환승역에서 이래저래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하면, 빠른 걸음으로 가는 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후 12시를 찍자마자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쌈밥'을 시키는 사람을 시작으로 점점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장님과 지인인 듯한 마담이 주방 곁에서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내가 하는 모양을 주시하고 있다.

제발, 그냥 가세요. 아니면, 조용히 니 할일을 하세요...

 

월요일은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임군과 함께 일하는 날이다. 임군이 비빔밥을 돌솥에 담아야 그 돌솥을 화덕에 덥히면서, 이후로 고명으로 올라가는 고기를 볶거나 튀김을 하는 데, 이 녀석이 도통 준비가 안되고 있다. 

주문이 밀리는 사이에도 꾸준히 손님은 밀려오기 시작했고, 주문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할 수록 초조함이 극에 달헀다. 화덕 4개의 열기에 목이 바짝바짝 타고, 출근할 때부터 시큰거렸던 눈은 더욱 건조해져서 따끔거린다.

벌개진 두 볼에 번들거리는 개기름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가관일 것이 분명했다. 


아.

한 시간여가 전쟁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사모님이 내가 내보낸 제육돌솥밥을 내 앞에 던지듯 하며, 화를 내신다.

돼지고기가 미처 안 익은 것이다. 나는 눈앞이 깜깜하다. 

이 번이 두번째이다. 나는 왜 안익은 저 고기를 내보낸 것인가.

보통 돼지고기 한 면이 익으면 뒤집으면서 소스를 붓고 익히는 데, 이 뻘건 소스에 묻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댈 주변머리가 내게는 없다.


식당에서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를 내보낸 것은 치명적 실수이니,

사모님이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돼지고기를 익힌다. 내보내려는 찰나, 아뿔싸.

와장창.

돌솥이 바닥에 떨어진다. 밥이 엎어지고 깨진다.

사모님이나 사장님이 보기 전에 얼른 치우려고 집어든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뜨겁다. 손을 데인다. 화끈거림을 찬 물에 잠재울 새도 없이 얼른 치워야 한다. 

돌솥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는 사실을 왜 잊은 것인가.

어느새 나는 정신이 멍해져 있었다.


어려운 게 아닌데, 왜 이런 실수를 두번이나 한 것일까.

몸은 젖은 수건처럼 무겁다. 말을 듣지 않는다.

마음이 너무 슬프다. 우울한 것 그 이상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설움이 나를 덮치려 한다.


사모님이 내게 경고장에 사인을 하란다. 다시 이런 실수를 하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서약을 하라는 말이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두번 같은 실수를 하느냐는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슬픈걸까.

잘못을 해서 질책을 받는 건데 석연치않고 억울하다.

누구를 탓해서도 아닌데, 나는 서럽다.


차하고 아이스크림을 마시고 가라는 사모님의 말에,

그마저도 일종의 명령같아 먹기 싫은 아이스크림을 앞에 펼쳐놓고

점점 녹고 있는 개암나무 아이스크림을 보며

다섯번은 우려먹어 밍밍한 녹차를 마시며 한동안 또 멍하게 바깥을 바라본다. 

문득 아까 데인 손가락이 생각나서 보니 물집이 잡혀있다.


누군가는, 이제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 환경이라면, 이렇게 정신없고 한 치의 틈도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라면,

한 사람이 두 세사람의 몫을 해야 하는 무한한 체력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라면,

그러면서 최저 시급을 받는 환경에서라면,

먹거리란 그저 건강을 유짖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조도구에 지나지 않는 내 상황과는 반대로

요리를 즐겨야 하는 이런 환경에서라면. 

나는 실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말은, 이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순간도 시간문제라는 이야기이다. 

한없는 무력감이 발목을 잡아끈다.


집까지 다시 걸어가다, 중간에 벤치에 앉아 또 멍하니 바라본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보다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다. 위로를 받고 싶다.


어느 이상한 거지같은 놈이 나를 보고 실실 웃으며 머라머라 씨불면서 간다. 개새끼.


멀 쳐다보고 지랄이야. 이 씨발놈아. 한국말로 욕해보았자, 못알아 듣는다.

저 따위 인간도 단지 이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희롱한다.


나는 친구에게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부모님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친구는 그렇게 살아서는 독립적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은 20년 전부터 혼자 살았고, 오히려 더 일찍 떠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한다.

그래, 너 잘났다, 이 에고이스트. 나르시스트.


나는 '독립성'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받고 떠난다.

그러더니, 다시 전화가 오더니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고 바꿔주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더니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상대편도 갑작스런 통화에 당황스러워보였다.

처음에 친구와 수입품을 거래하는 관광객인 줄 알았는데, 지하철에서 갑작스레 말을 걸었던 모양이다.

객지에서 관광을 즐기는 데 불쑥 끼어든 친구 때문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라,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 안심시킨다.

그 후, 그 관광객에게, 오늘 내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한국 가고 싶다, 

힘들다 라고 했더니, '김희선'씨를 바꿔준 모양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나,참. 별 설명을 다 하는 구나.


그렇게 그 '김희선'양은 내게 '힘 내세요'라고 한다.

'타지에서 고생하시면 안되잖아요. 힘내세요.'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힘 내세요.'


'힘 내세요.'


그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내게, 열린 마음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 누구라도. 지독히도.


그 말을 이렇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친구는 내게 그런 식의 위로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까 쏟아내지 못했던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어쩌면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성시경'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이

너무도 지나치게 달콤하면서 부드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닌데,

왜 이미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가.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 해도

하나 하나 방법을 찾아 나아가려 해도

용기나 끈기, 혹은 희망. 그 무엇이라도 잡으려 하지만


자꾸 움츠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