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예술가

■ 점차 사변화와 스펙타클의 사회로 분리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관심이 향해있는 인도. 우리는 그 인도의 현대 예술가들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서양의 미디어매체들이 우리를 믿게하려는 바는 인도가 중국에 이어 《과녁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보도성 짙은 표현은 모든 인도의 문화적 상품(장인, 유행, 발리우드와 현대 예술)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으며 추가로  외국인에게 투자의 좋은 호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한편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을 지나 외부인들은 쉽게 인도의 예술에 스며 들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예술가들에게는 주요 화두이다. 관광상품의 여러 진부하고 통속적 코드들은 작가들에 의해 재사용되어 때로 그들로 하여금 그저《제1급 재봉공》의 생을 살도록 하게 한다. 그러나 잠재적 작품 구매자 목록에서 특정 이름을 확인한다면 적어도 인도의 예술가들의 대부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여타의 인도인처럼 그들은 늘, 파리의 《보수주의자》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위태로운 일상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무모하게 근사치를 셈하려하거나, 혐오스러운 일반화는 엑소시즘의 또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예술애호의 취향을 상기시킨다. 마치《성경》에서《타인》은 단지 풍경이나 볼거리에 불과한 것 처럼 말이다. 이 것은 2006년 가을, 릴에서 열렸던 사육제를 상기시킨다. 여기엔 인도에서 행해지는 신을 향한 모든 찬미가 있기 때문이다 : 대로변의 치장한 코끼리, 미소 궁전, 발리우드의 마지막 상영관에서 들리는 소리와 사리차림을 한 릴주민의 행렬, 인도방식대로 꾸며진 조잡한 판타지 등이 그렇다.  모든 것이《지역색》일 뿐이다! 프랑스는 인도를 겉치레로 소비한다 : 장중한 행렬과 인도 왕후 등등 ; 혹은 발리우드의 키치적 요소로 이뤄진 판타지가 그렇다. 사타이 레이, 리트윗 가탁, 구루 더트[각주:1]의 영화와 프랑스적 시네필 세대와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그렇다면 인도에 문화적 접근을 하면서 어떻게 사금파리나 잡화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랄 수 있을까? 릴 에서 열린 봄베이 : 최대한의 도시  기획전시는 바로 인도의 현대 예술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 것은 인구의 과잉이나 교통 혼잡에 대해 언급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 대신 예술 작업들, 거의 보이지 않아 흘려지나간 것들, 소음에 의해 흡수되거나 사라진 혼란, 《통과의례》로 가정된 모든 방향성의 부재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주제

앙리-클로드 쿠소, 야니 라우가와 나는 파리에서 인도 현대 미술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여(2005년 가을, 보자르 국립예술학교), 인도의 저변에 흐르는 현상들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운 프랑스인들에게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형식상 두드러지는 작품과 오늘날 인도를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복합적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선택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유형의 작품들을 연결한다는 점과 작품들의 의미가 서로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도록 공간을 새로이 창조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방법을 따랐다. 작가군은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나타난 이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비교적 세계화에 가깝도록 했다. 왜냐하면 당시 인도정부는 《자유》통상 정책을 선언한 이후였고, 그때까지 적용되었던 보호주의를 폐기하려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외국인의 투자에 인도를 《개방》시키기 위해, 변화하는 국가의 흐름에 참여하려는 기업체들, 그와 연관된 작가들은 일단 보류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천하는-광경의 모습에서 서양의 미디어들의 관심이 단시 갈수록 벌어지는 인도의 빈부격차에만 쏠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멀리 나아가려는 현대


3여년 간의 준비를 하면서, 우린《세계화에 직면한 지역성》이란 화두로 1990년대에 어떤 작가가 시대의식이 있는 지에 대해 고려하였다. 바로 소외된 듯 방치되어 있는 인도상에 대해서 말이다. 수보다 굽타, 셰일라 고우다, N.S 하샤, 샤밀라 사만[각주:2]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이러한 대비되는 이전의 단계, 그보다 형식적인 대조로 《전통》과 《현대》는 인도예술가들에 의해 오랫동안 주제로 다루어졌다. 그래서 진정으로 후기 식민주의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논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원래, 1930년대의 인도에서 후기식민주의 예술이 태동할 때의 인도는 기존의 토착적 요소와 유입된 요소간의 벌어진 격차를 강하게 보여주며, 그러한 국가정체성이 옛 대영제국의 속국으로서의 딜레마와 연결되어 않았다.(2)[각주:3] 이처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7년부터 1980년까지 인도의 현대 예술사의 방향성과 그 여정은 애초에 전통예술인 연금술의 맹목적 추종을 대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정치적 관점에서 비평하곤 하다가, 영리한 표현주의나 지형학적 추상화, 그래픽적 상징이나 시적인 흥미로 이어진다. 또한 현대예술이 그렇듯이 조각, 페인팅등의 분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여러 기술이 혼합되었고 필연적으로 설치작업을 통해 장르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이런 간략한 요약은 1990년대에 다채롭게 두드러지기 시작한 인도를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서양의 헤게모니의 범주에서 벗어나 다른 현대성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또한 더불어, 전 세계의 도처에 드러나는 다양한 현대성을 재인식하며 그 속에 사람들의 자취를 좇아 보다 한 걸음 나아간 비평을 하고자 함이다 : 우리가 세계화라고 부르는 후기현대주의와 현실의 제국주의에 스며있는 바로 그러한 자취들을 말이다.

예술의 탈 식민화


 1990년대에 드러난 예술가군은 식민지적 유산을 보다 덜 받아들인 듯 보이며, 기념비적 서양 예술에 더 친숙하기에 그 이전의 세대에 비해 보다 누그러진 태도를 가진다. 또, 남인도의 비엔날레의 증가와 기획전시와 예술교류의 기회가 증가하며 《새로운》후원자로서 런던과 뉴욕-이 도시에서의 인도예술관련 전시가 매번 기록을 갱신하 듯-에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여기에 보다 중요한 점이 있다 : 많은 예술가처럼, 쉐바 차치, 아니타 두베, 바시 크에르, 크리쉬나라즈 초나트, 헤마 우파드야이[각주:4], 그들이 설치미술과 미니멀아트, 팝아트같이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경향과 연결되어 온 형식적 과정을 갱신하고 재적용하도록 새롭게 자유로의 가능성을 여는 현실적 실험을 하도록 지지하고 있다. 독특하고 다양한 작품 중 하나는 세계적 lingua franca 이다. 가장 명석한 비평가들 중 어떤 이는 몇몇의 작가들을 주목한다- 아툴 도디야, 푸쉬파말라, 지티쉬 칼라[각주:5]...-그들은 공용어로 여겨온 친숙한 것들이나 이미 《본》듯한 것들을 아우르며 맥락을 뒤흔들고 있다. 여기서 번역이나 번안의 개념은 주요하다. 프레데릭 제임슨[각주:6] 이 정의한 포스트 모더니즘(3)[각주:7]이 그렇듯 그것은 패러디나  모방에의 의지를 가리킨다. 수많은 작품-상징적이거나 암시적인 도상만큼이나 재료의 풍부한 층위-의 이러한 혼성적 특징은 세계화의 새로운 질서와 문화적 유산이 서로 대립되는 상황을 더욱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매체의 특이성을 무시한채 늘어나는 설치작업이나, 양산되는 멀티미디어 작품을 보면 인도의 작가들에게서 미술투자에 힘입어 이러한 《보편적 이미지로 가득한 예술》의 한 경향을 찾을 수 있다. 최근에 로잘린 크라우스[각주:8]>> 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인도 예술가처럼(《서양이 아닌》) 그들은 현대예술을《확장시키며》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결국-! 탈식민화적 예술시도를 거듭하면서 괴리된 두 문화영역사이에서 정치적이자 시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포스트모던 작품》으로 제임슨이 꼽은 주요 특징이 빈번히 나타난다. 《상호관계의 상이한 개념간에 발생하는 긴장감을 대체하는 더욱 긍정적인 개념》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제임슨은 형식의 포스트모던의 경험을 정의하기 위해《다른 이웃》이라는 역설적인 슬로건을 제시한다.[각주:9] 

어떤 지역주의
이러한 지역-세계화의 궤도에 오른 수많은 작품은 관계와 '차이의 유희'를 거듭하며 -《관계의 미학》니콜라 부리오[각주:10]에 의해 정의된 개념으로 이 개념으로《소격화》 로 더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문화적 전통의 시詩정은 마찬가지로 예술을 해석할 수 있다- 섬광을 얻는 것이다. 두 예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수보다 굽타의 스테인레스 집기를 이용한 작품을 피상적으로 해석하자면 중산층 가정의 내부로 침투한, 유명한 포스트팝 작가인 제프 쿤스의 인도버전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호가 상징적 경제체에서 암시하는 바와 그의 역활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호의 사용은 사실 교환의 가치를 가진다. 찻잔이나 물컵, 접시들은 농촌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지참금의 의미도 지니는 것이다. 
 여기에 페티시즘이 있다면 본질적으로 그것은 물질을 기호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굽타의 재능은 예술적 용어에 일상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 집으로 가는 길(1998-99)에서는 인도마을의 오브제-세계는 작가의 내부로 회귀하는 바(인도 농촌 출신의 풍속의 대부분이 보여지는 장소)를 보여주며, 그 중심에는《신성한 소》라는 모순적 마스코트가 있다 ; 소는 크리슈나, 부비에 신의 신화의 결합하여 추앙받는다. 그래서 길위에서 차량이 소떼를 피하기 위해 급정지를 했을 때에도 여유롭게 머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거나, 소 배설물을 모으거나, 길위에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장애요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굽타의 설치물 주면을 선회하며 관람객은 그의 정신에 준거하는 요소들과 존재감을 느낄 것이다. 부엌의 집기들, 시골풍의 물뿌리개의 복제품을 이용해서 바히르지방의 폭력을 퍼뜨리면서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굽타의 작품에서 독특한 것은 작가가 그 지역(지형학적으로)을 떠났더라도복잡하지 않게 지역성을 밝힌다는 것이다. 바히르Bihar(1999)란 제목을 붙인 그의 자화상은 명확하게 말한다 : 그림에서 작은 전구에 의존했다는 표현은 바히르에서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러한 면을 더욱 잘 표현하고자 인도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집의 건축 재료에 사용되는 소똥을 사용한 배경도 있다. 치장된 코끼리를 도상으로 페인팅하는 작가 크리스 오필리와는 달리 굽타는 materia prima에서 그의 유년기의 상징을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매체에의 충실
 Sheila Gowda는 지역성을 암시하는 매체를 사용하며 비평적 해석에 보다 관심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재활용(경제적 의미에서)은 문화적 기호를 굽타의 유희와는 달리 보다 정신적으로 사용한다. 그가 선호하는 보잘 것 없는 매체는 경제적이며 페미니스트적 참여를 반영한다. 그녀는 또한 건조된 소똥을 사용한다. 소똥은 농촌지방에서 연소재로 쓰이기도 하며, 의식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런 수집작업, 건조작업과 납작하게 다지는 작업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여기 작품에서 이러한 평범한 할일은 보다 신성화되기에 이른다. Gowda는 폐지의 뭉치에, 벽 표면에 남아있는 적색 안료에 덧붙여 직사각형으로 재단하며 단단한 흑색 안료를 칠하고 작가의 흔적을 남긴다. 이런 색깔의 부스러기는 물론 여성이 결혼하였다는 표식으로 이마에 남기기 위해 사용한 재료이다. 고다는 그의 열등한 지위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매체는 일상적 업무가 이어지는 고단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 또한 담요와 하늘(2004)에서 타르길을 지나가는 2륜 마차 구조를 강조하며 - 매일을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노동자의 거주지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굽타가 보여주는 매체의 간소함은 《매체에의 충실성》으로 해석된다. 이것은《매체의 진정성》이란 현대성의 원칙에 충실한 이해와 매우 동떨어진 미적 바탕인 것이다. 동시에 이런 밧줄, 목탄, 가는끈, 조각이나 얇은 천등의 조악한 재료들을 사용하는 것은 그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미국의 미니멀리즘이나 기술적 바탕에 반대하여 일어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운동과는 무관하다.[각주:11]  
 
  


 수보다 굽타의 스테인레스의 반짝임, 가우다의 2륜 마차의 불투명한 물질성 사이에서 광채와 안개 사이에 인도 현대미술의 각각의 층위를 밝히는 파노라마가 있다. 이해와 해석에 있어 미묘한 차이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발터 벤야민의 훌륭한 에세이 번역의 오류[각주:12]>' valign="top">의 한 구절을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번역은 언어의 낯설음이란 결론에 이르기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 것은 분명 번역에 바치는 찬사가 아니다. 오늘날 같은 원본의 시대에 말이다. 원본이 한 언어로 쓰여진 것처럼 그것은 한 언어로 읽히는 것이다. 》 차이과 관계의 문제다. 번역은 외국인에게, 또는 언어를 말하지 않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출처:  art press #336 
기사:  Deepak Ananth [각주:13] (프랑스어 )
번역:  zamsoobu ( plongeur )
  1. Satyajit Ray,Ritwik Ghatak,Guru Dutt.; 인도 영화감독 [본문으로]
  2. Subodh Gupta(1964년 출생), 인도 작가 Sheila Gowda 인도의 바로다와 산티니케찬 미술학교와 런던의 왕립미술학교에서 수학. 설치미술과 회화 작가, N.S Harsha(1969년 생), Sharmila Samant(1967년 생, 인도 뭄바이 출생) [본문으로]
  3. 인도-헝가리 출신의 화가 Amrita SherGil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ㅇ;디/ 1930년대 초에 파리의 고등예술학교에서 수학한 후, 예술가로써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인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가 인도 전통예술과 만난 순간, 회화의 방향을 완전하게 재정비하게 되었다. 그녀는 인도 현대예술의 진정한 선구자로 섰지만, 1941년 겨우 28세에 단명하였다. 인도가 독립을 쟁취하기 6년 남짓한 시기였다. 뮌헨의 쿤스트 하우스에서 열린 전시와 2007년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An Indian Artist Family of the Twentieth Century 에서 Amrita Sher-Gil의 전시 도록을 참고할 것. [본문으로]
  4. Sheba Chhachhi(1958-) 에티오피아 작가, Anita Dube(1958-). Barthi Kher(1969-), Krishnaraj Chonat(1973-), Hema Upadhyay(1972-), [본문으로]
  5. Atul Dodiya(1959-) , Pushpamala N.(1956-). Jitich Kallat(1974-) [본문으로]
  6. Frederic Jamson [본문으로]
  7. Frederic Jameson, Postmodernisme, or The Cultural Logic od Late Capitalism, Londre : Verso, 1991 [본문으로]
  8. "56p. [본문으로]
  9. Jameson, op. cit. [본문으로]
  10. Nicolas Bourriaud(1965년 생)프랑스 비평가이자 큐레이터,팔레 드 도쿄의 공동창립자. [본문으로]
  11. Sheila Gowda 는 도큐멘타에 이번해 전시가 되며, Suboth Gupta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되었다.나의 에세이 《Changin Planes》에서 밝힌 현대인도 예술에 대한 분석의 일부분을 차용하였다. 2005년, 파리 고등예술학교, in Indian Summer, La jeune scene artistique indienne, contempory [본문으로]
  12. 'Walter [본문으로]
  13. 독립 큐레이터이자 예술사학자(Indian Summer (2005)전시의 공동기획자),칸 예술학교에서 교수로 재임 중이며, 인도와 유럽예술을 주제로 여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본문으로]